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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AWARE)’ Headshot

안락사를 기다리는 폐업 동물원의 멧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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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웨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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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국립수목원은 1468년 조선 제7대왕 세조의 능림으로 지정된 이래 540여년 이상 자연 그대로 보전되어 오고 있는 숲이다. 국립수목원은 지구상에서 한반도 중부지역에만 생존하고 있으며 현재는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크낙새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세조와 왕비 윤씨가 묻힌 곳이기도 한 이 곳은 '풀 한포기도 함부로 뽑지 마라'는 세조의 뜻에 따라 조선시대 440여 년 동안 엄격히 보호되었으며, 현재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적인 희귀종인 크낙새, 하늘다람쥐, 장수하늘소, 원앙새 등 20여 종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던 국립수목원은 1991년 낯선 손님들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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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목원 동물원의 동물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1991년 개원한 산림동물보전원(이하 산림동물원)은 백두산호랑이, 반달가슴곰, 늑대, 수리부엉이 등의 야생동물들을 종 보존과 번식 등의 연구라는 목적 아래 전시하기 시작했다. 국립수목원은 산림동물원 개장 당시 16종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92년까지 45종의 동물을 사육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월 24일 16년간 운영해 온 산림동물원을 돌연 폐쇄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당시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산림동물원이 제 역할을 다했고 더는 종 보존과 번식 등 연구 가치가 없어 폐쇄를 결정했다"이라고 밝혔다.

국립수목원이 지난 16년간 보유 동물들을 동물복지수준에 적합하게 관리하였는지 혹은 종 보존과 번식 등의 연구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국립수목원은 폐쇄를 결정함과 동시에 보유동물의 거취문제라는 시급한 당면과제를 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국립수목원의 담당자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산림동물원 폐쇄결정 당시 보유 동물들의 사후처리 계획조차 수립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국립수목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너구리·고라니·독수리·수리부엉이·참매·말똥가리 등은 방사완료 및 방사예정이며, 늑대 3마리는 전주동물원에 양도, 오소리 2마리는 경기도의 모 동물원에 양도하였다. 반달가슴곰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아직까지 국립수목원 내에서 관리 중에 있으며, 멧돼지 3마리는 전문가 의견 수렴 후 안락사할 예정이다. 풀 한포기도 함부로 뽑지 말라던 세조의 능림에서 동물들은 그렇게 쫓겨났다.

동물원 폐업 후, 남겨진 동물은 어디로?

지난 7월 서울대공원의 시베리아호랑이 크레인이 죽었다.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나 원주 드림랜드로 이송된 크레인은 몇 년 후 그곳의 심각한 경영난 탓에 최소한의 영양관리와 수의학적 처치도 받을 수가 없었다. 폐업을 앞둔 30여 종 200여 마리를 관리하는 사육사는 단 한명이었으며, 동물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크레인은 고향인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나, 기력이 다해 사람들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죽었다. 크레인의 기구한 삶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동물원에 관한 허술한 제도적·법적장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크레인의 경우를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원주 드림랜드 폐업 후 유럽불곰은 곰 사육업자에게 넘겨진 뒤 죽은 채 발견되었으며,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는 부산 기장군의 한정식 식당으로 팔려가 전시되었다. 그동안 동물원에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과 잊지 못할 추억을 주었던 동물들의 은퇴식은 그렇게 초라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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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동물들이 멍들고 있다

2016년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물원법)이 극적으로 통과됐고 이듬해인 2017년 5월부터 시행중이다. 그러나 동물원의 실질적인 관리기준과 동물복지를 고려한 내용들이 생략된 동물원법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동물원법 제3조(등록)1항 8조에는 '보유생물의 질병 및 인수공통 질병 관리계획, 적정한 서식환경 제공계획, 안전관리계획, 휴·폐원 시의 보유생물관리계획'의 요건을 갖추어 관할 지자체에 동물원 등록을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휴·폐원시 보유 생물 관리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휴·폐원시 각각의 동물원 형편에 맞게 동물 관리 계획이 수립될 수밖에 없게 된다.

2015년 EU가 발표한 동물원 지침은 폐업한 동물원이 이행해야할 것들에 대해서 세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동물원이 폐업하는 여러 상황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정부가 규정한 동물원 허가조건 불이행, 동물원 미허가 운영, 동물원 재정악화 등의 경우이다. 또한 일시적인 휴업, 영구적인 폐업, 일부 시설 부분적 통제 등 동물원을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동물원이 필수적으로 지켜야할 것들을 정해준다. 동물은 사육사의 적절한 돌봄과 종별 생태적 특성을 충족시키는 시설 하에 있어야하며, 안락사가 필요 할 시 정부에서 정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정부는 △동물복지의 수준을 폐업 이전의 수준과 비슷하게 유지 의무 △즉각적인 수의학적 처지 가능 △동물을 다른 기관에 양도하기전까지 관리할 재정 확보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기준마련 △장기간 실내에서 살아온 동물의 야생방사 성공 가능성 등에 관한 세부적인 동물원 폐업 계획을 수립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현행 동물원법은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의 복지에 대한 내용이 전무하다시피한다. 동물원법을 개정하여 동물원 복지기준 세부화 및 관리감독의 강화를 꾀하고, 동물원 폐업 후의 대처방안에 대하여 논의해 나가야한다.

식당, 카페, 옷가게와 같은 업장은 폐업 이후 집기류나 시설만 처분하고 철거하면 된다. 하지만 동물원에는 야생의 동물과 달리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동물이 살고 있다. 폐업 이후에도 살아있는 생명이 일시적으로라도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작성자: 장인영 어웨어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