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image

이서영

SF 작가

여성의 신체는 권력이 될 수 있는가

물론 어떤 여성들이 실제로 남성/사회에서 욕망받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소위 말하는 '여왕벌'의 스탠스에 서서 가부장주의의 꿀을 빨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살면서 만날 때가 있고, 때로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여성들에게 그것이 권력일 수 있을까.
2017년 12월 04일 16시 35분 KST

나라도, 베트남 정부를 지지한다

논평을 냈을 법한 당이나 단체를 떠오르는 대로 서너 개 정도를 검색해 보았는데, 내가 생각한 범주 안에는 관련한 논평을 낸 곳이 없었다.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곳, 전쟁에 대한 반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곳, 인권에 대한 입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곳이 모두 문재인의 발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베트남 외교부의 입장은 굉장히 부드럽다. "한국 정부가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 잘못을 질책하는 뉘앙스조차 아니다. 이렇게 말하기까지 베트남인들이 삼키고 삼켰을 수많은 말들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2017년 06월 14일 12시 26분 KST

욕망을 관용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우리의 '빻은' 욕망은 원한다면 용인되어야 한다. 욕망을 검열할 수는 없다. 그것이 심지어는 자기 자신의 신체를 수동적으로 전시하고 싶은 마조히즘적 욕망이라고 해도, 그곳에서는 자기결정을 반드시 찾아낼 수 있다. 검열과 배제에서는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페미니즘에서 더 많은 욕망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관용은 폭력과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2017년 03월 28일 10시 42분 KST

'김치녀'와 '한남'

이랑의 건과 관련하여 '김치녀'는 '일부 한국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쓰인 말이므로 일반 남성을 비난하는 '한남'과 같지 않다는 항변을 여기저기서 본다. 거의 모든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보는 듯하다. 이랑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적이냐와는 별개로 '일부 한국 여성'과 '일반 한국 남성'의 비교를 볼 때마다 갑갑하다. '한남'은 '김치녀'와 대응하는 항으로 서 있다. 왜 '성매매하는 일부 한국 남성, 여성 비하하는 일부 한국 남성, 여자를 때리는 일부 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만들지 않고, 굳이 '한남'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2017년 03월 03일 18시 03분 KST

신카이 마코토가 '모에'를 극복해가는 방식

재패니메이션의 "모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서비스 연출"은 길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판치라, 바스트 모핑으로 대표되는 이 연출에 대해서는, 안노 히데아키가 《에반게리온 파》에 새로운 캐릭터 마리를 등장시키면서 콘티에 썼다던 "야하게, 피규어 많이 팔리게"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존재를 상품화해서 내놓고, 그것으로 하나의 코드를 만들어 나간다. 거기에 덧붙인 재패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연출은 이 장르의 일정한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너의 이름은》 역시 이 공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는 이 영화에서 아주 재미있는 방식으로 "모에"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젠더의 두 사람을 연대하게 하는 방식이다.
2017년 01월 25일 14시 38분 KST

'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리고 '정중식, 보통 사람'

'소외된 남성' '빈곤층' '젠더 의식 부재'. 여기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이 유영철까지 나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이 맞다. 남성 혐오도 아니다. 저 글을 읽었을 때 내가 떠올렸던 건, 중학생 때 오빠가 컴퓨터 안에 숨겨두었던 [유출] 꺾쇠가 달린 동영상, 성매매를 했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바람에 나랑 엄청나게 싸웠던 내 친구, 아는 형이 자기 너무 힘들다면서 노래방 데려가더니 노래방 도우미 불러서 떨떠름하게 있다가 나왔다던 내 친구. 그 사람들은 유영철이 아니다.
2016년 12월 12일 13시 48분 KST

로리타 패션은 그런 게 아니다

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로리타 아가씨'로 살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서 말하자면 로리타 패션에 가장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건 남성들입니다. 남성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대체 왜 저런 해괴망측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심지어는 자신이 '대상화'하기도 어려운 옷을 입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는 거죠. 로리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녀들의 전투복"이라는 경구가 있죠. 왜 이 옷을 "전투복"이라고 지칭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로리타 패션이 성애화되기 어려운 이유는 말 그대로 시대와 불화하는 패션이기 때문입니다.
2016년 09월 25일 12시 54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