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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게이

게이, 유부남, 회사원

소띠.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주변에 제한적으로 커밍아웃을 해왔다. 동성 연인과 5년의 연애 끝에 2013년 가족과 친구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대학 때 문학을 공부했지만 현재 그와는 관련 없는 회사에서 밥벌이를 위해 일하고 있다. 시문학동인에서 시를 쓰고 있으며 단편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게이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한 번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형이 워낙 좋아하는 밴드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콘서트를 열었었는데, 형 몰래 티켓을 예매해 깜짝 선물한 적이 있다. 1부 무대가 끝나고 밴드가 옷을 갈아 입는 동안 빈 무대를 대신 채워줄 초대 가수가 나왔는데, 시간을 더 때워야 했는지 관객들을 대상으로 말을 걸다 우리를 발견하고선, 아, 여기 또 불쌍한 분들이 계시네요, 이런 날 남자 둘이 콘서트장까지 오시고, 이 불쌍한 두 남성분께 위로의 박수 부탁 드립니다, 라고 말하며 친히 우리를 손가락으로 콕 콕 찍어 주었다. 당연히 그 조롱의 대상은 게이 커플이 아니라 솔로인 두 이성애자 남자였겠지만, 그래서 더 슬프고도 분한 2부 공연이었다.
2016년 12월 23일 17시 03분 KST

남편이 나의 위로인 만큼, 나도 형의 위로가 되길

사실 난 하는 꼴만 봐선 꼴등 남편이다. 결혼 3주년 기념일이 다가오지만, 결혼한 후 뿐만 아니라 같이 산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일 저녁 쓰레기 분리수거도 거의 매주 형이 혼자 하게 되고, 술에 정신을 잃고 새벽에 들어온 날이면 내 옷을 갈아 입히고 침대에 눕히는 것도 형이다. 그런 형에 비하면 난 정말 빵점짜리 남편이다. 내가 형에게 남편 노릇을 잘 못해줘서 미안한 건 단순히 집안일을 형이 더 많이 감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게 부부 생활에 얼마나 큰 부분인지는 누군가와 동거를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형에게 미안한 부분이 있다.
2016년 05월 30일 14시 36분 KST

이번 설도 우리 엄마는 아들의 남편과

모두들처럼, 게이들도 참 전형적인 제 몫의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내 나이 또래나 나보다 조금 더 형님인 게이들이라면 넌 여자친구 안 사귀냐? 형은 여자친구 안 사귀어? 오빠는 여자친구 안 사귀어요? 라는 식으로 거의 모든 친척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기 십상이다. 실제로 주변에 보면 이런 오지랖을 피해 일부러 고향에 안 내려가는 게이들도 참 많다. 한국에서 태어난 게이 주제에 양가의 축복을 받고 결혼식을 올린 우리는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일이 없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쳐도, 일가 친척이 모인 남편의 큰집에 함께 찾아가 차례상에 절을 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2016년 02월 06일 14시 01분 KST

형 같은 소파를 사야지

한 달 전부터 이사 갈 집을 찾아 다녔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형도 같은 생각이어서, 틈이 날 때마다 밖에 나가 이 동네 저 동네 부동산을 부부구경단처럼 들쑤시고 다녔다. 물론 다닐 때마다 저희는 일심동체이다 못해 일심동성까지 된 부부입니다, 라고 하지는 못하고, 방을 나눠 쓸 선후배 사이라고 설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되도 않는 거짓말을 누가 믿었을까 싶기도 하다. 형은 날 쳐다만 봐도 눈에서 파블로프의 하트가 뿅뿅 나오는데.
2016년 01월 06일 18시 10분 KST

사소한 삶에 죄책감 가지지 말자

회사 일이 삶의 전부인 부장님들 팀장님들, 임원이 된 선배들이 보기에 이런 내 삶의 관(觀)은 남자답지 못한 걸로 보일 수도, 비전이 없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다. 누군가는 나를 참 사소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하겠지. 하지만 나는 사소하게 살고 싶다. 내 몫이 아닌 욕망을 가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가지기 싫다. 청운의 꿈도 없고 부귀영화도 필요 없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만큼 회사에 기여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사소한 소비와 사소한 여가의 행복을 즐기며 살고 싶다. 출근은 하지만 출근하기를 계속 싫어하면서, 회사에 없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계속 고민하면서, 오순도순 내 깜냥대로 과장이나 거짓 없이.
2015년 07월 23일 13시 56분 KST

어메이징 퀴어,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것은 단순히 서울의 한복판 밝은 거리에 남자끼리 손 잡고 걸을 수 있는 자유의 만끽 수준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버스에서, 주변 건물에서, 길거리에서 우리의 행진을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우리도 더 반갑게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 우리 스스로를 인정하고 거리로 나서자 우리를 인정하고 반겨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청부터 명동까지 거대한 무지개 띠를 만들며 걷는 건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한 시간을 위해 짧게는 몇 달 동안 혐오 세력에 맞서 싸울 힘이 필요했고, 길게는 지난 열다섯 번의 축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한 시간은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2015년 07월 01일 10시 38분 KST

사랑만 하기에도 우리 게이들의 젊은 오늘은

입소하기 전 굳이 우리 집 주소를 물어 가더니, 누가 게이 아니랄까봐 전투화 뒤꿈치에 주름이 잡히기도 전에 편지를 써 보냈다. 4주 훈련 받으면서 애인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니고, 나한테까지 이렇게 손편지를 써서 보내다니... 이렇게 게이게이한 동생에게 또 이름부터 게이인 내가 어찌 답장을 써주지 않을 수가 있나. 회사 근처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 사와 가지고, 바로 쓰면 수정을 못하니 아웃룩에 업무 메일 쓰는 척 초안까지 써가지고, 피씨로 쓴 걸 또 손으로 옮겨 써 장장 세 장에 걸친 위문 편지를 보내줬다. 뭐, 게이끼리 주고 받는 위문편지라 해서 별다른 건 없다. 뭐 대충 이런 편지랄까...
2015년 05월 20일 11시 20분 KST

한국에 태어난 게이 주제에

여자 남자가 결혼해도 시댁 처갓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파혼 이혼도 한다는데, 난 한국에 태어난 게이 주제에 무슨 복을 타고 나서 이렇게 좋은 가족들을 만났는지 모르겠다. 지난주 시골에 내려가기 전, 커밍아웃을 한 대학생이 가족에게 끝내 이해 받지 못하고 한강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었는데,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온전히 내 운이 좋아서라는 생각에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괜스레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내가 천의 하나로 복 받은 게이라면, 이 복 많은 게이가 차츰 백의 하나, 열의 하나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2015년 04월 09일 17시 33분 KST

파란색 게이

20대 초반 한창 연애에 목말라 있을 때에는 뜬금 없이 램프의 요정에게라도 빌고 싶은 소원이 한 가지 있었다. 팔 다리 굵고 등이 운동장처럼 넓은 램프의 요정 지니가 나타나 김게이야 김게이야, 그 동안 게이로 살기 난이도 나이트메어 급인 한국 사회에서 음으로 양으로 호모 포비아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왔으니 내가 업적 보상으로 네 소원 하나 들어줄게, 원하는 게 뭐니? 라고 묻는다면 이 초능력을 달라고 꼭 말하고 싶었다.
2015년 03월 20일 11시 45분 KST

게이 삼촌, 그저 조금 더 모던한

형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 첫 조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 있다. 내 조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삼촌은 게이야" 라고 별 일 아닌 듯 말하고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님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해서 부부가 되는 게 결혼이라고 가르쳐 줄 때, 남자와 남자도, 여자와 여자도 결혼할 수 있다고 손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불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과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풍부히 가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5년 전에는 그저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했던 건데, 이제 막상 3년만 더 있으면 첫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거라고 생각하니 참 삼촌으로서 내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다.
2015년 03월 05일 16시 03분 KST

신혼여행, 언젠가 한 번 더

노트북 앞에 앉아 한창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메일 쓰고 있는데 형에게서 카톡이 왔다. 우리 회사 임직원들 대상으로 하와이 항공권 엄청 할인해서 나온대! 우리 갈까? 알아볼까? 우와, 대박이네 올 여름 휴가 하와이 가면 되겠다. 빨리 예매 알아봐! 하와이는 우리가 신혼여행지로도 고민했던 곳인데, 비행기표까지 싸게 살 수 있다면 웬 떡이냐 하면서 질러야지. 그런데 잠시 후에 형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가족만 동반 가능하네... 가족관계 증명 서류가 필요하대...
2015년 01월 20일 16시 38분 KST

종로의 기적

정말 별 게 아니다. 술 냄새 풍기면서 수다를 떨고 싶으면 종로가 좋겠고, 관절 빠지게 춤을 추고 싶으면 이태원이 좋겠다. 사진을 좋아하면 사진 동호회를, 탁구를 좋아하면 탁구 동호회를 찾아보면 된다. 그냥 게이들이 많은 곳에만 가도 스스로가 편해진다. 내 삶은 이게 전부라고, 내 운명의 데스티니는 어둠의 다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이들이 있다면, 절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모르는 행복한 당신이, 당신이 문을 열면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라고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은데 이놈의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타이핑을 마무리할 수가 없.......
2015년 01월 06일 15시 52분 KST

굳이 올린 결혼식

내가 쭉 가지고 있었던 '결혼하고 싶은 욕구'는 사실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욕구'였던 것 같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관계를 큰 소리로 말하고 싶은 욕구'. 서른 즈음을 살아오는 동안 나를 드러내는 것에 언제나 검열이 있었고, 그나마 커밍아웃이라는 형식으로 제한된 사람들에게 내 게이로서의 모습을 밝히기 시작한 건 해 봤자 십 년이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를 조용히 버텨내는 선택지는 결국 감추기나 속이기, 이 둘밖에 없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입을 닫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입을 닫는 순간 나의 세계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2014년 12월 17일 13시 22분 KST

김게이 대리는 결혼 안 해?

사실은 사람들이 내가 결혼을 하든 말든 별 관심 없다는 거 잘 알고 있다. 그나마 사막 같은 회사 생활 서로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는 동기 형들은 정말 내 독신 생활이 걱정돼서 그러는 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주변 사람들은 그냥 별로 할 말도 없고 공통의 관심사도 없으니 옳지! 이럴 때는 오지랖이 제 맛이지! 하며 내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는 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심심풀이로 꺼내는 이야기가 내겐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모른다.
2014년 11월 28일 10시 13분 KST

형이랑 아버지 산소에 갔다

아버지는 느는 식구들이 외손주들일 거라는 생각은 하셨겠지만, 아들의 남편일 거라는 생각도 해보셨을까. 형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장례직장을 끝내 못 들어와 보고 그냥 다시 서울로 올라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아직 연애 초기라 친척들이 북적북적하는 곳에 들어오기가 형도 나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형과 함께 아버지 산소를 찾은 건 작년 결혼식 이후였으니 이번이 두 번째다. 커밍아웃을 한 뒤 다른 것보다 내가 훗날 가정 없이 외로워질까봐 걱정이셨던 아빠였는데, 손잡고 인사 온 우리를 보고 이제 그런 걱정 좀 더셨을까.
2014년 10월 16일 17시 34분 KST

사위인 듯 며느리인 듯 아들 같은 나

추석 같은 큰 명절이면 물론 찾아 뵙는 게 도리겠지만, 큰집 작은집 이 친척 저 친척 다 모이는 자리에 한 집 아들의 동성 파트너로서 같이 있기란 사실 아무리 간 큰 게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간 사이즈의 문제는 둘째 치고, 형과 어머니가 다른 친척들에게 나의 존재를 설명하거나 설득하기란 한 20년 정도 뒤에나 가능하리라 싶다.
2014년 10월 02일 18시 16분 KST

김게이씨 보호자 되시나요?

결혼할 때 회사에서 축하금 못 받고 축의금 못 받고 휴가도 못 받고 이런 건 그냥 좀 손해 보는 느낌 뿐이었는데, 둘 중 하나가 아파 보니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회라면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드는 경험이었다. 형과도 한 이야기지만, 10년은 좀 부족할 것 같고, 20년 안에는 그래도 동성 커플을 인정해주는 법적인 장치가 우리나라에도 생기기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럼 적어도 쉰 살이 될 때까진 병원도 덜 가야 할 테니, 몸에 좋은 거 먹으면서 운동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우리 게이들에겐 또 한 가지 더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09월 19일 11시 28분 KST

개봉박두 : 게이봉박두

같이 한 7명의 게이 감독 모두 우리의 영화가 대단히 잘 갖춰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흔히 책이나 방송에서 노출되어온 판에 박힌 게이의 모습보다, 진짜 누군가의 옆에 있을 진짜 게이의 모습을 담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딱 이만큼만 느껴줬으면 좋겠다. 아, 내 옆의 내가 잘 아는 사람들 중에도 게이가 있을 수 있겠구나. 우리가 실제로 그렇듯, 우리는 어디에나 있는 보통 사람들이니까.
2014년 09월 04일 17시 11분 KST

나와 당신의 커밍아웃을 위해

사실 퀴어가 커밍아웃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답답하기' 때문이다. 어디 말할 데가 없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 아끼고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당당하게 할 수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퀴어가 커밍아웃을 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는 말하게 해주는 것이다.
2014년 08월 19일 17시 25분 KST

당신 회사에도 있을 게이 이야기

소수의 게느님들을 제외하면, 가장 보통의 게이들은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속사정을 숨기고 산다. 나만 해도 내가 게이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중학교 때부터 교회,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회사 등등에서 열심히 안 게이인 척 하며 살았다. 어쨌거나 퀴어들은 이런 식의 후천적 연기력을 주구장창 강요당하므로, 세기의 명배우들 중에 퀴어가 많다는 건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결과이다. 물론 뻥이니까 괜히 네이버에 "스티븐 시걸 게이" 이런 거 검색하지 말자. 안타까운 건 내가 조직원들을 감쪽같이 속이듯이, 조직 속의 다른 게이들도 나를 감쪽같이 속인다는 사실이다.
2014년 08월 01일 15시 04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