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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후 캔 스피크

이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 사회를 아주 리얼하게 그려냈다. 구청 공무원들에게 늘 기피 대상이었던 '도깨비 할매'가 '위안부' 생존자였다는 것이 알려지고 그가 미국에서 증언을 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자 그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가 증언할 수 있도록 돕는 장면은, 이 사회에서 '말할 권리'가 어디에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7년 10월 16일 14시 36분 KST

민주주의의 국경

민주화의 결과로 탄생한 대통령이 현충일에 베트남전을 '참전용사' 입장에서만 평가해 베트남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은 일이 생각난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가운데 조선족이 태반인 중국을 빼면 베트남에서 온 이들이 가장 많다. 이제 15만명이나 되는 이들에게, 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한국은 어떤 존재일까. 내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50주년을 앞두고 현재 시민법정이 준비 중이라고 한다. 민주화를 가능케 한 우리의 경험과 감수성은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
2017년 09월 18일 10시 45분 KST

차별금지법과 촛불민주주의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차별금지법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부터 당시 문재인 후보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미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빠진 이유를 보니 우려가 된다. 이는 단순히 법 하나를 제정하느냐 마느냐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100대 과제를 선정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선정 과정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졌으나 "그 내용 중에 사회적 논쟁을 유발할 내용이 있어서" 빠졌다고 한다. 대선 당시에도 문재인 후보는 차별금지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그때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2017년 07월 24일 11시 13분 KST

"안보입니다"

사드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가정보원이 아무 감시도 받지 않고 특정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데도 안보라는 장막이 절대적인 구실을 했다. 안보만 들이대면 어떤 비밀도 어떤 독재도 정당화할 수 있기에, 과거 군사독재 시절부터 안보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것이었다. 남북한이 여전히 전쟁 상태에 있다고만 하면,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대체로 입을 다물었다. 홉스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고 싶다면 자연권의 일부를 양도해야 한다며 국가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했듯이, 전쟁에 대한 공포는 국가권력에 대한 판단을 정지시키며 자신과 국가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2017년 06월 26일 11시 18분 KST

'유희'를 떠올리며

한국에 와서 무시당하거나 소외감을 느꼈다는 재일조선인들은 많다. 이양지도 그랬지만, 일본에서 차별에 맞서기 위해서는 민족 정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이 품게 되는 '조국'에 대한 마음은 '본국인', 즉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활씬 강하다. 그런데 막상 '조국'에 와보면, 왜 말도 못하냐는 핀잔을 듣고, 또 '일본인' 취급을 받아 상처를 받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 특히 이양지가 한국에서 지냈던 80년대에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 훨씬 부족해서 그는 '조국'에서도 이방인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17년 05월 29일 11시 24분 KST

선거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성소수자들의 행동에 대한 비난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한마디로 '오냐오냐하니까 기어오른다'는 의식이다. '불쌍한 약자'로서 '훌륭한 지도자'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렸어야 할 존재가, 자신들도 오르지 않는 정치 무대에 등장한 것이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이 지닌 위계의식은, 성소수자들이 홍준표가 아니라 문재인을 '공격'한 이유가 그가 만만해 보여서였다는 인식에서 잘 드러난다. 물론 이런 가정 자체가 망상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의식은 더 잘 보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누군가 만만하게 봤다고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이 만만해 보이는 게 그렇게 나쁜 것일까?
2017년 05월 01일 10시 35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