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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 평론가. 홍익대 산업디자인과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하고 <월간 디자인> 편집장을 역임했다. 여러 대학에서 디자인 이론을 강의하는 한편 출판, 전시, 공공 부문 등에서 활동해왔다.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 디자인인문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평론집으로 <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한국 디자인 어디로 가는가>, <한국 디자인 신화를 넘어서>, <공예문화 비평>이 있다.

명절 민족주의

문제는 한국의 민족 형성이, 특권 계급의 해체가 아니라 이른바 '전 국민 양반되기'라는 형태의 신분 상승 욕구로 뒷받침된 것에 있다. 이점이 한국의 민족주의를 서유럽의 민족주의와 구별되게 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전통 신분사회가 식민지가 되면서 붕괴하는 과정에서 배태된 이른바 피해자 민족주의로서 서유럽 민족주의에서 볼 수 있는 공화주의적인 가치를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민족주의는 오로지 핏줄에만 매달리는 배타적 민족주의이며, 물질적인 욕구와 신분상승의 차원에서만 평등한 민족주의이다.
2017년 10월 10일 13시 55분 KST

한국적 남성성 또는 그 찌질함의 본성에 대하여

멀리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민중을 지켜주지 못했으며, 평소에 큰소리치던 지배층은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도망을 갔다. 그래서 관군은 달아나고 백성이 맨몸으로 자신을 지켜내어야 했던 의병은 자랑스럽기는커녕 부끄러워 해야 할 역사인 것이다. 서양의 귀족계급은 호전적인 기사집단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들은 비록 무식했지만 집단을 지배하는 대신에 보호했다. 일본의 사무라이들도 민중을 지배하면서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2017년 09월 01일 10시 29분 KST

우리가 버린 소녀, 위안부 소녀상이라는 토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소녀상은 일종의 토템이다. 그것은 우리가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팔아버린 소녀들이며, 그 소녀들에 대한 죄책감을 씻기 위해 세운 우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우상에 대한 어떠한 의심이나 문제 제기도 터부시된다.
2017년 08월 22일 15시 57분 KST

'식민지 주체성'이란 불가능한가

나는 식민지 주체성이 제국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반제 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제국으로부터의 분리와 '우리끼리'의 논리는 주체적이기는커녕, 우리를 특수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북한이 바로 그렇다. 물론 제국에의 참여는 곧바로 사대주의, 매판, 민족 반역자, 친일파, 친미파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하지만 제국에의 투항이나 협력과 주체적 참여는 구분되어야 한다.
2017년 08월 10일 15시 22분 KST

〈엘르〉의 근대적 주체, 그들은 누구인가

나는 이 영화를 근대적 주체에 관한 텍스트로 받아들인다. 근대적 주체들도 다양한 삶을 경험하며 불행하거나 또는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그들이 하지 않은 행위로 인해 구속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그들이 한 행위로 인해서만 불행하거나 행복해진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근대적 주체의 요체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서사가 아니라 주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영화를 가리켜 사이코, 변태 영화라고 말한다. 서사를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코, 변태들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야말로 집단주의적 주체인 한국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기 힘든 영화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2017년 07월 11일 17시 16분 KST

종군 위안부, 지금 바로 여기의 문제

이것이 순장을 대체한 부장이나 전장 약탈을 대신한 훈장과 달리 문제가 되는 것은 현실의 지배적인 제도를 전쟁의 상황에 되먹임하여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찰의 핵심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일반화된 문제(여성 착취)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것은 결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오로지 일본의 야만적인 행위로 비난하는 방식 이외에, 자신의 현재적 모순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사태의 원인도 근본적으로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2017년 07월 08일 12시 05분 KST

〈슈즈 트리〉 위반의 미학

아방가르드는 현실과 예술의 분리라는 질서를 뒤흔들고자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러한 기획은 미술관이라는 금 그어진 공간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가 미술관 바깥을 나가면 그것은 폭동 아니면 혁명이 된다. 최소한 교통위반이라도 걸리게 된다. 반대로 아방가르드가 미술관에 갇히면 그것은 얌전하게 길들여진 짐승이 된다. 그것은 전복의 이빨이 빠진 채 던져주는 먹이를 삼키며 살아가는 동물원 동물 신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제아무리 강력한 언어를 내보이더라도 미술관 미술에서 좀처럼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동물원 동물에게서 야성의 매력을 느낄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2017년 05월 29일 11시 40분 KST

〈슈즈 트리〉는 흉물인가

먼저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쓰레기를 투척할 수 있는 작가의 배포 또는 만용(?)에 경의를 표한다. 시민들이 이것을 쓰레기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굳이 이 작업을 대단한 현대미술로 찬양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나 미술관에 출품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공공장소에 전시된 것이기 때문에 공공미술이다. 그리고 공공미술의 주인은 시민이다. 시민이 싫다고 하면 철거하는 것이 맞다. 이것을 님비(NIMBY)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에 대해 변호를 좀 하고 싶다. 그것은 이 작품이 여느 평범한 흉물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괴물이라는 것이다.
2017년 05월 23일 15시 46분 KST

'일본 표준'과 동아시아의 근대화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되고 서구 근대문명을 동아시아 문어로 번역함으로써, 동아시아 근대문명의 저작권을 선취한 일본이 동아시아 근대성의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확실히 '일본 표준(Japanese Standard)'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결국 일본 표준에의 거리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아시아 근대 갈등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먼저 근대화된 일본이 제국주의가 되어 다른 지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대만, 조선, 중국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 확실히 동아시아 근대 갈등의 주된 장면을 연출한 것은 일본의 침략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의 영향, 즉 '일본 표준'을 어떻게 수용하고 내재화하는가의 차이가 갈등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04월 30일 13시 07분 KST

누드와 나체

최근 국회에서의 박근혜 풍자 누드화 소동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뭔가 빗나간 문화적 이해의 문제로 보인다. 말하자면 서구 미술사에서 누드는 오늘날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 평가하든 간에 나름 역사적으로 축적된 표현의 문법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한국 미술에서 누드라는 것은 좀 생뚱맞게 차용된 형식일 수밖에 없다. 서구의 경우 전통적인 방식이든 아니면 현대적인 재해석이든 간에, 거기에는 일정한 의미의 고정과 재해석에 대한 규칙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 풍자 누드화에서는 전혀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정치적 충돌 이전에 시각적 문법의 부재가 불러일으킨 좌충우돌의 하나로 보인다.
2017년 01월 30일 11시 51분 KST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었다

일본에 저항하다가 귀향을 간 최익현이 중국을 기리는 글씨를 새겨놓은 것을 두고 오늘날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은 역사 의식의 결여라고 본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모두 이중국적자들이다. 그들은 중국인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이었다. 중국 황제의 신하이면서 동시에 조선왕의 신하였다. 이는 전혀 모순되는 일이 아니었다.
2016년 12월 29일 17시 31분 KST

조상 만들기

민족이라는 개념이 발명되었고, 우리는 이제 효용가치가 사라진 중국발(發) 기자(箕子)를 대신할 시조로서 단군을 발견하게 되었다. 단군은 중국적인 커넥션이 없는 존재로서, 신채호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추존된 민족의 새 시조였던 것이다. 단군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그리고 기자보다 훨씬 오래된 유일한 인물이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단군을 자신의 시조로 생각하는 것은, 이처럼 불과 백여 년 전 일군의 지식인들에 의한 창조의 결과일 뿐이다.
2016년 08월 08일 10시 21분 KST

양민(養民)인가, 기민(棄民)인가?

99퍼센트는 개돼지라는 발언을 유교적인 양민사상의 타락한 버전으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유교 국가는 백성을 먹여살리는 것, 즉 양민(養民)을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산의 <목민심서>도 목민관(牧民官), 즉 백성을 소처럼 기르는 관리를 위한 지침서가 아니던가. 이는 물론 지배층과 백성의 엄격한 신분 차별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나는 우리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이러한 질서가 바뀐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2016년 07월 13일 14시 41분 KST

우리 안의 성곽국가

나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도 일종의 성곽국가 또는 성곽사회라고 생각한다. 성곽을 견고하게 쌓아 외적을 막아야 한다는 사고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의식 속에 뿌리내렸고, 그러한 망탈리테가 다시 우리 안에 수많은 성곽을 쌓아왔던 것이 아닐까. 성곽국가적인 사고는 한국 사회를 폐쇄적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음이 분명하다. 그런 속에서도 소수의 지배층은 암문(暗門)을 통해 서로 교통하며 이익을 교환하고 있고, 민중들은 저주받은 성곽 안에 갇힌 채 어쩔 수 없이 방수(防守)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지금 우리 사회의 풍경 아닌가.
2016년 03월 14일 12시 21분 KST

강화도조약 140년의 의미

강화도조약 140년을 맞는 올해는, 이 사건을 단지 한국과 일본의 관계, 일본의 한국 침략의 원년으로만 보지 말고, 봉건과 근대의 조우, 동양과 서양의 조우, 대륙과 해양의 조우라는 문명사적 차원에서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지난 140년 간 한국의 가장 중요한 관계국은 이전의 중국을 대신한 일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일본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일국적 관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바로 저 세 가지 차원의 문명적 조우에 모두 일본이 긴밀하게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03월 05일 19시 09분 KST

좋은 한국인이 되는 법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적 타결은 매우 제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문제는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많은 시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의 방향을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2016년 01월 03일 13시 02분 KST

문명과 야만

올해는 한국이 근대화의 길로 접어든 지 140년 되는 해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기점으로 한국은 근대문명과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었다. 한국의 근대는 63빌딩, 자동차, 휴대폰, K-2 전차를 만들어낸 것보다도 더 결정적으로 그것이 만들어낸 인간의 품질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문명의 품질은 인간의 품질이다. 근대 한국인은 어떤 인간인가? 전근대의 한국인과 어떻게 다르고 얼마만큼 문명적이거나 또는 야만적인가.
2016년 01월 01일 14시 33분 KST

어른이 되는 법

사실 이번 정부의 위안부 협상은 한국 민족주의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역설적으로 민족주의라는 자원이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하고 있다. 사실 민족주의는 아직 힘이 세다. 지난 백여년 간 민족주의는 한국의 거의 유일한 정신적 자원으로서, 키다리 아저씨(미국)와 키작은 아저씨(일본)에게는 가장 신경 쓰이는 요소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우리가 민족주의라는 투정의 피해자 모드로만 나아갈 수는 없다.
2015년 12월 29일 13시 49분 KST

'제국의 위안부', 절대악과 절대선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그동안 우리는 위안부를 동원한 일본 제국주의를 절대적인 악으로 간주하고, 그에 반해 피해자인 우리 민족을 절대적인 선으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는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위안부 동원에 조선인들의 협력과 자발성이 있었음을 지적함으로써 기존의 일본 제국주의=절대악, 조선=절대선이라는 등식을 깨뜨린다. 박유하 교수에 대한 비난과 분노는 이러한 등식이 깨어짐에 대한 당혹감과 혼란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5년 12월 21일 13시 53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