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대표는 청와대 출입증을 패용할까?

필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여야영수회담은 1987년 6월 항쟁 중에 역시 제1야당인 통일민주당의 총재 김영삼이 신군부의 독재자 전두환과 가졌던 회담. 예전에 박정희랑 회담을 하다 털린 기억 때문인지(쿨럭;) 김영삼은 전두환을 만나러 갈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한 듯 싶었다. 특히 청와대에 오는 이들은 모두 신분증을 맡기고 청와대 출입증으로 바꾸고 그걸 패용해야 했는데 김영삼은 아마도 "'대한민국에 나 김영삼 모르는 이가 있느냐"라며 출입증 안 달겠다고 땡깡(응?) 부린 모양. 그래서 이튿날 신문엔 전두환 치하에선 거의 처음으로 출입증 안 단 제1야당 총재가 등장. 지금 돌이켜 보면 민주화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 아닌가 싶은 느낌적 느낌^^이다.
2016년 11월 14일 16시 30분 KST

그들이 "마지못해" 트럼프를 미는 이유는?

단 한 번도 공직에 있어 본 경험도 없으며, 국제 정세에 대한 이해가 손톱만큼도 없음은 물론이고,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돈을 찍어서 빚을 갚겠다는 식의 아연한 주장을 거듭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이를, 뭐라도 씐 듯이, 저명한 공화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심지어는 개인적인 모욕을 트럼프에게 당하고 나서도, 자당의 대선 후보로 지지하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필자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유력한, 멀쩡해 보였던 정치인들이,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해서, 파멸과 실패가 또렷이 보이는 지도자를, 이렇게 지지한 예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필자는 그런 역사적 사례가 하나 있었음이 떠올라서 소름이 쫘악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2016년 05월 16일 15시 05분 KST

누가 국회의원 후보들을 처음 공천했을까?

62년이나 계속된 낡은 제도이고, 무엇보다도 독재자가 권력 연장을 위하여 만들어 낸 구리기 이를 데 없는 출현 배경을 가진 이 국회의원 공천 제도에 의해 이번 총선도 결국 치러야 하는 모양이다. 지난 62년 간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이나 국제적 위상의 상승에 걸맞지 않는 낡은 제도라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무엇보다도 1987년 6월 항쟁 이후 되찾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에 과연 적합한 제도인가 하는 의심마저 드는 이러한 국회의원 공천 제도는 적어도 다음 21대 국회의원 선거 전에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2016년 03월 16일 17시 34분 KST

시간을 달리는 김종필과 기자들

김종필과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모의한 것이, 1960년 6월이라는 것은, 장면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그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이유로(응?) 무너뜨릴 작당을 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짓거리인데, 한겨레신문 한승동 선임기자의 이런 어이없는 서평 덕에 장면 정권은 모든 절차를 뛰어넘고(!) 4.19 혁명 직후에 바로 들어서는 신공을 발휘하여, 두 달 간 부패와 무능을 시전한 후(쿨럭;) "청렴하고 강직한"(우웩-) 박정희와 김종필 같은 장교단에 의해 쿠데타 모의의 대상이 된 것으로 둔갑한 것이다-_-;
2016년 03월 07일 16시 52분 KST

시진핑이 박근혜 전화 안받는 진짜(?) 이유

중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그간의 노오오오력에도 불구하고, 초기에는 북한의 도발을 비난하는 듯하였으나 오히려 도발을 일으킨 북한뿐만 아니라 그러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미국이나 우리나라 등 주변국들도 함께 싸잡아 비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 외교장관은 중국 외교부장과의 전화통화조차도 (다른 한반도 주변국들 외무장관과는 달리) 상당히 늦게 하였으며, 한-중 국방장관 간의 핫라인도 불통인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조차 못하고 있다. 필자는 네 가지 이유로 중국이 북한을 절대로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남북한 간의 갈등 상황에서 중국이 남한 편에 서는 일은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있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2016년 01월 14일 11시 04분 KST

안철수에 앞선 어느 중도파의 꿈과 좌절

지금부터 70년 전, 즉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에, 좌우 양극단의 세력을 배제하고 분단과, 필연적으로 분단이 불러 올 전쟁을, 막고자 노력했던, 중도파 정치인 몽양 여운형 선생님의 꿈과 좌절의 과정을 살펴 봄으로써, 안철수 의원의 위와 같은 정치적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지 한 번 짚어 보고자 한다.
2016년 01월 08일 10시 33분 KST

79년 전의 중국 국공(國共)회담(?)

서안사변의 관련자들은 진실로 대륙의 대인 같은 풍모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담판이 이루어진 후에 아무런 조건 없이 장개석은 풀려 나서 부인과 함께 남경으로 돌아왔고, 심지어 장학량은 윗사람을 감금했다는 책임을 지겠다며 장개석을 따라 나서기까지 한다. 그쯤 되었으면 공산당의 사주로 겁박당해서 이룬 합의 따위 무시하겠다고 할 수도 있을 법한데 장개석은 약속한 대로 공산당과의 항일 통일전선을 이행하고 공산당에 대한 토벌전을 중단했으며, 공산당의 군대를 팔로군과 신사군으로 하여 자신의 중국 국부군의 일부에 편입시킨다.
2015년 11월 06일 11시 40분 KST

시간을 달리는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의 엄마인 육영수 여사님이 1974년 8월 15일에 암살되지 않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에서 학업을 중단할 필요가 없이 계속해서 공부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엄마의 죽음을 기화로 하여 접근하였던 최태민 목사나 나아가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하고도 얽힐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었다면 육영수 여사님의 소망대로 공부를 마치고(학부를 마친 다음에 유학을 간 것이니 석사와 박사과정을 하였을 것이니 최소한 4-5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배필을 골라 결혼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계속 퍼스트 레이디 역을 하셨을 터이니 정치에 들어오고 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2015년 10월 29일 18시 41분 KST

국군 수뇌부에서 암약(暗躍)한 북한 간첩?

6.25 개전 초기 국군의 모든 삽질(쿨럭;)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즉 전 장병의 절반을 휴가 보내어 전선을 텅 비게 하고, 북한의 남침이 임박했다는 보고를 묵살하고, 남침 전야를 만취하여 댄스파티로 지새워 6.25 당일 늦잠을 잤으며, 대통령에게 초기 전황을 거짓 보고하고 국군과 국민을 버리고 한강인도교를 끊은 자는, 이 모든 일에 명령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할 군 수뇌부 인사는 단.한.사.람.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2015년 10월 26일 15시 34분 KST

자위대는 가도 박근혜는 못 가는(?) '나라'

이 글에서 살펴 보려고 하는 것은 1950년 10월 30일에 있었던 당시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승만이 평양을 방문했던 에피소드이다. 북한에 급변 사태가 벌어져 북한 정권이 무너졌을 때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한을 찾았던 일이니, 대한민국 헌법상 당연히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전체를 다스리는 대통령이 국토의 일부를 찾은 일이고, 당시 이승만은 평양에서 그를 맞으러 구름 같이 몰려 왔다는 평양시민들 앞에서 감격적인 연설을 하였다고 하니, 앞으로 만들어질 대한민국 국정 국사교과서(쿨럭;)에도 어쩌면 관련된 내용들이 자랑스럽게 실려야 할 것 같은 사건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평양 방문의 진실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라고 할 만하다.
2015년 10월 22일 16시 57분 KST

아베처럼 공물 봉납 좋아하다 망한 어느 정치인 이야기

일본 수상 아베가 우리 광복절에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대신에 집권여당인 자민당의 총재 특보를 보내어 공물료를 봉납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베의 이런 행태를 보니 신전에 공물 바치는 것을 좋아하다가 나라까지 들어 먹기에 이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나오는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의 이야기가 생각 나서 한 번 썰을 풀어 보기로 한다.
2015년 08월 18일 11시 02분 KST

LG 트윈스 양상문 감독을 위한 변명

특히 프로야구의 역사에 남을 만한 대기록을 세운 선수의 상대방이 되는 일은 앞에서 얘기했듯이 해당 선수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 선수가 나중에 암만 훌륭한 업적을 남기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은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고 대기록이나 역사적 게임의 패자였다는 것만 남게 되기도 하고, 짓궂은 팬들에 의해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LG트윈스 신승현 투수가 야구 규칙상 명백히 허용된 고의사구로 이승엽 선수를 거른 것에 대해 그나 양상문 감독님에게 쏟아진 비난은 특히나 신승현 선수가 400호 홈런을 헌납했을 때 겪었을지 모를 이러한 트라우마를 생각했을 때 정당한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2015년 06월 01일 17시 30분 KST

국가원수 방미 중에 귀국해야 했던 어느 수행원 이야기

재작년(!)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후 첫번째 미국 방문 중에 웃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으로 창중간 아니 창졸간에 귀국했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근황이 최근 그의 형사 사건을 변호하고 있는 변호사를 통해서 알려졌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가원수의 미국 순방 중에 수행원이 중도에 귀국한 사례로는 이 사건 외에도 1961년 11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헥헥;)이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던 무렵에 비공식 수행원인 기자단의 일원이었던 당시 합동통신 리영희(李泳禧,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이른바 남한 민주개혁/진보진영에게 '사상의 스승'이라고도 불렸던 그 리영희 교수 맞다) 기자 사건이 있는데 아래에서 그 사건에 관하여 한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15년 01월 20일 15시 46분 KST

대통령께서 진노하셨어야 할(?) 잘 빠진 상업영화 [국제시장]

글쎄 내가 보기에는 독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남편이 다시 돈에 팔려 외국 전쟁터로 나가는 상황에 몰리게 된 부인이 국가 당신들은 도대체 해준 게 뭐냐고 항변하는 장면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그 장면을 보고 애국심이 샘솟기는 개뿔;;이고 허약하며 국민에게 희생만 강요한 정부에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또한 이거 뭐 북한도 아니고 모두 숨 막힐 만한 분위기 속에서 국기에 대해 배례^^하며 안 하면 눈치 주는; 상황이라니 도대체 그 국기배례(한숨) 장면을 박근혜 대통령께 그렇게 왜곡하여 전달한 자가 누구인지 하루빨리 색출해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2015년 01월 15일 14시 46분 KST

프라이버시 출생의 비밀? | '다카오' 사장님을 위한 변명

흔히들 프라이버시라는 권리는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브랜다이스라는 법률가와 결부되고 "흠,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을 지낸 법률가라니 대단한 경륜과 지혜를 가진 이가 역시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군"하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은 이 브랜다이스 대법관이 완전 초짜 법률가 시절에 굳이 문학작품 같은 걸로 비유하자면 습작 같이 고안해 낸 개념이라고.
2014년 10월 14일 17시 10분 KST

피케티 '논쟁'을 보며 떠오르는 그 사람 | 故정운영 선생님

다시는 폭넓은 인문적, 사회과학적 교양에 바탕을 둔 재치있는 그의 새로운 글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도 안타깝고, 현대의학이 발달한 시대에 불과 61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게 하였던 그를 괴롭혔던 질병이 무엇이었는지 솔직히 원망스럽기만 하다. 특히 요새 같이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같은 책이 논란이 되는 시기에는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 경제학을 넘나 들며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특히 불어권인 벨기에 루뱅 대학 박사 출신이신지라) 정운영 선생님이 피케티의 책을 우리 현실에 접목시켜 통찰력 있는 견해를 들려 주셨을 텐데 싶어 더욱 아쉬운 느낌이다.
2014년 09월 29일 17시 38분 KST

한민족에게 벼락 같이 내려졌던 축복 |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

매번 승진인사에서 물을 먹던 이순신이 유성룡의 눈에 들고부터는 어떤 때는 새 임지에 부임하기 전에 그보다 윗자리로 다시 발령이 나는-_-; 초고속 승진을 이 무렵에는 거듭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유쾌(?)한 건 한양의 실력자가 이걸 도와줬다고 언관(言官)이라 불리던 사간원 같은 감찰기관(요새 언론;이 해.야.할. 기능도 맡고 있었던)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이순신 장군님께서 너무 고속승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었다는 점. 보면 볼수록 조선의 관료제란 게 보통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4년 09월 26일 14시 45분 KST

불행한 나라에서 쫓겨난 어리석은 여왕의 이야기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 일보직전 상황까지 갔었던 작금의 상황에서 스코틀랜드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한 메리 스튜어트 여왕과 그녀의 비극에 대해서도 한 번 되짚어 볼만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생애야말로 스코틀랜드가 영국(잉글랜드)과 맺었던 애증의 관계가 뿌리깊은 것임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4년 09월 22일 17시 31분 KST

충만한 개인적 선의와 빈곤한 정치력의 공존 - 문재인 의원님의 경우

문재인 의원님을 만나 보신 분들에 의하면 매우 인격적으로 훌륭하시고, 정치적으론 반대 성향을 가진 분들조차 감화시킬 수 있는 분이던데 도대체 왜 때문인지 최근의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 사태가 다시 한 번 보여주듯이 이렇게 정계에 들어 오셔서는 손 대시는 일마다 삽질(그 전에도 2012년 4월 총선에서의 통진당과의 연대, 그 해 대선에서의 패배, NLL대화록 정국에서 스텝이 꼬이셨던 일, 그리고 최근 머쓱하게 끝난 단식 등의 일들이 있었다)-_-;이신 불행의 아이콘이 되신 것일까?ㅠㅠ
2014년 09월 15일 17시 18분 KST

제1차 세계대전을 다시 생각하며

기이했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 개전 무렵에 이렇게 유럽대륙과 러시아를 휩쓴 민족주의적 열풍 속에 역시 양진영 모두에 전쟁은 신속히 끝날 것이고 자기네 편이 이길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틀.렸.다. 전쟁은 일단 터지고 나자 당대의 유럽인들을 모두 집어 삼켰다. 가장 전쟁에 열광하고 애국심으로 충만한 젊은이들부터 희생의 제물로 바쳐졌다.
2014년 09월 11일 16시 00분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