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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박' 하면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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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받아들인다. 다 자라면 길이 24mm 정도다. 각막, 포도막, 망막으로 나뉜다. 외막인 각막의 투명도가 떨어지면 빛이 들어갈 수 없게 돼 실명한다. 심리 상태가 잘 드러나는 기관이기에, '마음의 창'이라고도 불린다.

눈 얘기다. 탁구공보다 작은 이 좁은 공간을 놓고 '눈을 사로잡는' 영토 싸움이 본격화됐다. 안경과 시계, 팔찌와 신발로 이어진 '스마트' 기기 전쟁이 이번엔 눈으로 옮겨왔다. 이른바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선점하려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경쟁이 불붙는 모양새다.

가장 눈길을 붙드는 기업은 역시 구글이다. 구글은 4월28일, 눈에 집어넣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특허를 신청했다. 기본 기능은 말 그대로 콘택트렌즈다. 시력을 교정해주는 역할 말이다.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저장장치와 센서, 배터리를 내장하고 있다. 외부 기기와 무선으로 통신하는 기능도 갖췄다. 구글표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전원을 따로 공급할 필요도 없다. '에너지 생산 안테나'라 부르는 장치로 자체 전력을 조달하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스마트 콘택트렌즈 안쪽 면은 안구에 착 달라붙는 부드러운 폴리머 재질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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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와 결합하는 스마트 기기 전쟁이 이번에는 눈으로 옮겨왔다. 2년 전 구글이 발표한 스마트 콘택트렌즈. 구글 제공

구글은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의료용 기기에 초점을 맞췄다. 내장된 센서가 안구 조절력을 조정하며 시력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외부 의료기기나 휴대장비와 통신하며 의료정보를 주고받거나 기능을 판올림(업그레이드)할 수도 있겠다. 나중에는 외과수술이나 기존 콘택트렌즈를 대체하는 것이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목표다.

구글은 2014년에도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선보인 바 있다. 그것은 눈물 속 혈당을 측정하는 초소형 센서를 내장하고 햇빛으로 전원을 충당하는 제품이었다. 당시 개발 책임자였던 앤디 콘라드는 이번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 소속 '베럴리' 사업부를 이끌고 있다. 베럴리는 삶을 혁신하는 기술을 집중 연구하는 팀이다.

'렌즈 컴퓨터'에 눈독 들이는 곳이 구글뿐만은 아니다. 소니와 삼성도 스마트 콘택트렌즈 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삼성은 콘택트렌즈를 미니 카메라로 활용할 심산이다. 아직은 특허를 출원한 수준이지만, 구상이 실현되면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삼성표 콘택트렌즈를 눈에 끼고 눈만 깜박이면 사진을 찍어 곧바로 스마트폰에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첩보영화 속 장면이 현실로 바뀌는 것이다. 삼성은 카메라 모듈과 안테나, 동작 감지 센서 등을 우리 망막에 덧씌울 예정이다. 결국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가상현실(VR) 기기를 대체하는 것이 삼성 스마트 콘택트렌즈의 바람이다.

소니는 삼성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청사진을 그린다. 동영상을 찍고 재생할 수 있는 콘택트렌즈를 구상 중이다. 카메라와 저장장치, 전송장치 등을 내장하고 자동초점, 줌, 조리개, 흔들림 방지 기능 등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소니표 콘택트렌즈는 유기전계발광패널(ELD)로 제작되며 자체 동영상 녹화 기능을 갖출 전망이다. 압전센서를 내장해 눈을 깜박이는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들어진다. 눈꺼풀의 움직임을 감지하도록 자이로센서도 내장되며, 전자기 유도 방식으로 전원을 조달한다.

생체와 칩, 센서 기술이 밀접히 결합할수록 정보 흐름은 명민해지고 심리적 저항력은 둔감해진다. 지난 3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대학 연구팀이 피부에 칩을 심어 현관문을 열고, 은행 거래를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기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작고, 똑똑하고, 섬세해지는 기술 앞에 인체는 시나브로 은밀한 영역까지 무장해제당한다. 인체와 기기의 경계는 액세서리 수준을 넘어 화학적 결합 단계로 들어섰다. 마냥 즐겁지는 않다. 안테나와 칩, 배터리까지 내장한 물건을 눈 속에 집어넣는 건 아무래도 마뜩잖은 일이다. 전자장치를 안구에 오랫동안 착용했을 때 생길지 모를 부작용도 염려된다. 기술은 우려를 불식할 만큼 성장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준비가 덜돼 있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