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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님, 5분 뒤 졸리시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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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e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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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비퍼'를 착용한 운전자가 졸면 경고음이 울립니다. 운전을 멈추고 커피를 한 잔 마시거나, 안전운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신호죠. 메일로 19.95달러에 주문해보세요. 배송비는 2.5달러입니다."

1983년 6월5일, 미국 플로리다주 지역신문 <게인스빌 선>(Gainesville Sun)에 실린 기사 일부다. 정보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운전자는 졸음과 치열히 교전 중이다. 그 무기가 33년 전에는 귀에 걸치는 어설픈 경보기였다면, 지금은 인공지능(AI)으로 바뀌었다는 게 차이일 뿐. 졸음운전과의 전쟁에 나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을 등에 업고 졸음이 밀려드는 순간을 정확히 집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얼굴은 졸음을 가장 빨리 읽어내는 리트머스지다. 졸음 감지 시스템은 운전자 얼굴을 인식·추적하는 카메라와 이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로 구성된다. 운전석 앞에 달린 카메라는 운전자 얼굴 표정을 모니터링한다. 카메라는 서버에 저장된 방대한 얼굴 표정 데이터베이스에 연동해 운전자 표정을 분석한다. 운전자가 졸음을 느끼거나, 흥분하거나, 주의력이 흐트러졌다고 판단되면 자동차는 경고를 보낸다. 졸음을 쫓아내기 위해 경쾌한 음악을 틀어주고, 상황이 심각하다면 차를 길가에 대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이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분석해 감정을 읽어내는 기술에 기반한다. 애펙티바는 얼굴 표정을 분석해 감정을 읽거나 피로도를 파악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애펙티바는 혁신 기술의 요람인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에서 분사한 스타트업이다. 애펙티바는 졸음이 밀려드는 순간을 감지하는 것도 사고에 대처하기엔 이미 늦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피로나 졸음이 밀려들기 전에 미리 예측해 알려주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사람이 졸기 5분 전 얼굴 표정이나 특징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이를 분석해 졸음이 밀려들기 전에 미리 경고하는 식이다.

애펙티바는 현재 7가지 감정과 15가지 얼굴 표정을 구분해내는 기술을 갖췄다고 한다. 이를 위해 75개국에서 400만 개의 얼굴 표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분석했다. 머잖아 자동차로부터 이런 잔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 "졸기 5분 전입니다. 잠시 정차하고 휴식을 취하세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아이리스는 운전자가 졸 때 나타나는 패턴에 주목했다. 이들은 운전자 동공이 뒤로 말려 올라가거나, 눈꺼풀이 기준치 이상으로 일정 시간 동안 내려오거나, 고개가 특정 각도 이상으로 갑작스레 떨구어지면 이를 졸음 신호로 간주하고 경고한다. 아이리스는 운전 중 운전자의 분노나 흥분 상태도 감지해낸다. 눈을 치켜뜨거나 상대 운전자를 흘겨보는 순간을 잡아내는 식이다.

주요 자동차 제조사도 이 시스템을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연동할 태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월11일, "운전자를 주시하고 신체 상태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자동차 산업이 주력하는 인터넷 기반 엔터테인먼트 자동차 기술의 일부로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GM·도요타·폴크스바겐 같은 자동차 제조사들은 실제로 2017년부터 이러한 시스템이 탑재된 모델을 시판할 예정이다. 아우디도 아이리스의 졸음 감지 기술을 탑재한 자동차를 2017년에 선보인다.

하지만 사람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 기술에는 사생활 보호 문제가 뒤따른다. 자동차에 타는 순간부터 표정이나 감정을 빠짐없이 시스템에 빼앗긴다고 생각해보자. 우리 내면은 고스란히 발가벗겨질 위험에 노출된다. 인간의 감정은 상품으로 치환된다. 보험사는 평소 운전 중 기준치 이상으로 흥분하는 사람을 추려 '운전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자동차 보험료를 5% 올리려 할 게다. 사고 책임을 따질 때도 알고리즘이 해석한 상황에 운전자는 속수무책 수긍할 도리밖에 없다. 시스템이 읽어낸 운전자 상태 때문에 거짓말쟁이로 내몰릴 수도 있겠다. 2016년의 자동차는 졸음운전 사고 위험과 사생활 보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중이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