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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채집하는 '모기 별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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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라기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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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라기 공원〉은 2억 년 전 공룡을 20세기 말에 소환한다. 발상이 기발하다. 해먼드 박사는 화석 속 모기에 주목했다. 모기는 2억 년 전 빨아먹었던 공룡 피를 품고 있다. 이 피를 뽑아 공룡 DNA를 분리해 공룡을 복원해낸다.

황당무계해 보이는 이 프로젝트를 마이크로소프트는 살짝 변주했다. 모기가 빨아들인 피를 이용해 전세계 감염성 질병을 진단·분석하겠다고 한다. 지구촌 모기를 병원균 수집 장치로 쓰겠다는 얘기다. '프리모니션 프로젝트'. 이름대로 질병의 '징후'를 미리 파악하겠다는 연구진의 의지가 엿보인다.

에볼라, 지카, 뎅기열, 웨스트나일열 같은 감염성 질병은 발병하고 나면 다스리기 어렵고 위험하지만, 예측이 어렵다. 최선의 방법은 예방이다. 그러려면 질병 데이터를 빨리 수집·분석해야 한다. 질병의 발원지인 숙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신흥 질병 4종 가운데 3종은 동물에서 발원한다고 추정한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니, 질병 데이터 수집은 더욱 난관에 빠진다.

열쇠는 모기였다. 모기는 알려진 종류만 3600종에 이른다. 이 녀석들은 전세계를 휘저으며 개부터 닭, 소, 뱀, 쥐까지 닥치는 대로 피를 빨아들인다. 이 피엔 해당 동물 유전자뿐 아니라 그 피에 섞인 병원균 정보도 있다. 물린 동물 종류, 모기 피 속 병원균 종류, 모기가 문 동물에 있던 신종 바이러스 등이다.

관건은 지구상에서 최대한 많은 생물종을 표본으로 수집해야 하는데 이 동물의 피를 빤 지역, 여러 종류의 모기를 채집하는 게 먼저다. 채집이 끝나면 모기에 든 방대한 데이터에서 잠재적 병원균을 탐지해야 한다. 말 그대로 '막노동'이다.

연구진은 기술의 힘을 빌렸다. 주요 모기 서식지를 스스로 찾아내는 드론, 수많은 곤충 가운데 모기를 식별해 잡는 채집기, 병원균을 걸러내는 머신러닝 시스템과 클라우드 기반 유전학 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첫 번째 임무는 모기 서식지를 찾아야 한다. 기온이나 습도, 습지나 숲 같은 주변 환경에 따라 모기 서식 개체는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모기 서식지를 찾는 드론을 고안했다. 연구진이 그레나다에서 실험했더니, 드론의 고해상도 카메라는 기존 위성보다 모기 서식지를 정확히 찾아냈다.

이제 모기를 포획할 차례다. 연구 효율을 높이려면 다양한 모기 표본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기존 채집기는 모기와 다른 곤충을 구분하지 못한다. 곤충학자가 일일이 분류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연구진은 '로봇덫'을 만들었다.

로봇덫은 64개 스마트 셀로 구성됐다. 각 셀은 덫 안에 있는 곤충들의 형태와 움직임을 분석해, 모기로 판별되는 곤충이 셀 안에 들어오면 문을 닫는다. 채집 시간과 일조량, 온도와 조도 같은 환경 정보도 기록한다. 로봇덫은 기계학습으로 진화한다. 채집 표본 수가 늘어날수록 영특하게 모기만 걸러낸다.

로봇덫은 지난해 연구진이 미국 텍사스주 해리스카운티 공공보건국과 협력해 제작했다. 덥고 습기 찬 환경에서도 20시간 이상 작동한다. 87차례 실험에서 로봇덫은 모기 2만2천여 마리를 잡아 20GB 분량의 데이터를 뽑아냈다. 마이크로소프트 클라우드 기반 분석 시스템은 이 데이터를 25만 개 넘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 대입한다. 이 과정을 거쳐 모기 종류, 모기가 문 동물과 잠복 병원균 정보를 걸러낸다. 이 정보는 질병 확산을 막고 새로운 질병을 발견하는 데 쓰인다.

프리모니션 프로젝트의 목적은 명확하다. 전염성 질병이 창궐하기 전에 미리 탐지·예방하고 새로운 질병도 감지·연구하는 것이다. 특히 전통 기술로 조기 발견하기 어려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은 신흥 질병을 미리 탐지하는 기술은 효용성이 높다. 모기는 이 막중한 임무를 두 날개에 짊어진 '별동대'다.

이 연구는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 탐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