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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게 고통을 가르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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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연기'란 꼬리표가 붙은 연기자가 있었다. 그에겐 무척이나 가혹한 메타포였을 테다. '연기에 감정이 없다'는 평가 말이다. 로봇은 감정이 없는 물체다. 사람이 로봇에 감정을 이입할 순 있겠지만, 그것이 로봇이 감정을 가졌다는 걸 뜻하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우린 로봇을 이따금 거친 환경에 내몬다. 전쟁터를 누비고, 무너진 건물 더미로 들어가며, 공기가 없는 행성을 탐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상상해보자. 어느 날 로봇이 이렇게 말한다면? "저...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과학자들이 로봇에게 고통을 가르치려 한다. 로봇을 사람처럼 만들려는 게 아니다. 로봇이 치명적 위험으로 손상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 이 연구는 지난 5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미국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주최 '국제 로봇·자동화 콘퍼런스'(ICRA)에서 처음 소개됐다.

로봇에게 고통을 가르치면 뭐가 좋은 걸까. 연구에 참여 중인 과학자 요하네스 퀸은 되묻는다. "인간에게 고통을 가르치면 뭐가 좋은가요?" 질문 안에 답이 있다. 고통은 자각이다. 깨우침은 보호 본능을 일깨운다. 연구진은 로봇도 다를 바 없다고 봤다. 이들은 인간의 감각기관이 고통에 반응한다면, 이를 본떠 만든 로봇의 신경망도 똑같을 거란 가설을 세웠다. 고통을 안다면, 로봇도 자신을 보호할 테다. 그건 곧 인간을 보호하는 일이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위험을 맞닥뜨린 순간 자신을 보호한다면 운전자도 안전할 테니까. 그 씨앗이 '로봇에게 고통을 가르치는 인공신경 시스템'이다.

연구진은 '압력·온도 감지 센서'를 단 인공팔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다음 일정한 간격으로 로봇팔에 충격을 전달하고, 고통을 강·중·약 3단계로 수치화했다. 연구진은 처음엔 손끝으로 로봇팔을 툭 치는 '가벼운 고통'을 줬다. 로봇팔은 살짝 아래로 움츠러들었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번엔 조금 더 강도를 높인 중간 단계의 고통을 줬다. 로봇팔은 처음보다 눈에 띄게 더 움츠러들었고,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시간도 더 걸렸다. 재빨리 움츠러들고, 서서히 돌아오는 식이었다.

반복해서 고통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로봇팔은 겁먹은 강아지처럼 아래로 움츠러들었다. 뜨거운 물을 담은 컵을 올려놓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휴먼로봇 분야의 권위자이자 이번 연구를 진행한 사미 하다딘 교수는 "강한 고통을 주자 로봇팔은 추가 손상을 막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모드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반응형 로봇을 만들려는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2011년, 미국 스탠퍼드대학 연구원 토르스텐 크뢰거는 업무 현장에서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충돌 방지 기능을 내장한 로봇팔 '쿠카'(KUKA)를 선보였다. 사람이 팔을 휘두르거나 손을 가까이 가져다대면 이를 감지해 피하는 로봇팔이다. 쿠카가 움직임을 감지하고 부딪히지 않도록 만든 로봇이라면, 라이프치히대학 연구진은 고통을 감지하도록 인공로봇 신경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엄밀히 말하면, 연구에 쓰인 로봇은 고통을 '느끼는' 게 아니라 센서와 알고리즘에 따라 외부 충격에 '반응'하는 데 가깝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로봇에 판단을 맡기는 건 인간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 반대도 성립된다. 로봇 반응 알고리즘을 조작해 상대방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인간을 위협하는 장면, 익숙지 않은가. 자율신경 로봇은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위협할 것인가. 이는 기술의 문제인가, 윤리의 영역인가. 우리는 다시금 어려운 숙제와 맞닥뜨렸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