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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건너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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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조촐한 파티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는 매우 낯설었고, 아주 낯익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의 일부분을 알았다. 조용하고 점잖은 인품과 섬세한 언행으로 많은 이들이 따랐던 사람. 그가 다른 이름으로는 성소수자 활동가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반면 그의 은밀하게 평범한 또다른 삶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나만이 알고 있었다. 내 앞의 남자는 두 사람이었던 셈이다. 누구를 향해 인사말을 건네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감정을 재빠르게 정리하고 나는 새로 만난 사람을 선택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분리된 두 삶. 그건 우리 행성에 국경일만을 공유하는 섞일 수 없는 두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휴대폰 연락처에 기입된 그의 이름 옆에 괄호를 열고 새로 알게 된 이름을 추가해 넣었다.

다른 파티에서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을 만났다. 그녀의 형제마저 가족 앞에서 커밍아웃하기로 결심한 날이었다. "부모님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걱정되네요." 격려의 말이 오갔다. 성소수자 자매에 관한 우스운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 앞에서 기습적으로 커밍아웃한 동생은 그 순간 기약없이 불투명해진 자신의 순서를 걱정하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언니의 표정을 오해했다고 한다. "언니는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을 이해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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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는 지인이 결혼했다. 열살이 된 딸이 있는 여성이었다. 시가 쪽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린 딸은 예식장에 들어올 수 없었다. 일가친척, 신랑 친구들, 신부 친구들....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딸은 예식장 문 바깥에서 어머니의 하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상황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웠기에 하객들이 둘러대는 말은 각자 달랐다. "저 안에는 어른만 들어갈 수 있단다." "너는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사진을 찍게 될 거야!" 하지만 아이가 반응한 질문은 "혹시 너도 들어가서 사진 찍고 싶니?"뿐이었다. 고개를 세차게 저어 거부했다. 산타클로스가 존재한다고 믿니, 라는 질문을 받은 것처럼. 선의의 거짓말이라면 벌써 어른보다 능숙했던 것이다. 눈물을 보인 건 어른들이었다.

왜 우리는 산타클로스처럼 터무니없는 존재를 아이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고 믿을까? 진짜로 존재하는 것들조차 쉽게 부정하는 세상에 살면서 말이다. 허락된 것만이 존재하는 세계의 규칙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날아다니는 할아버지에 대한 상상을 허락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게 된 걸까? 연휴의 마지막 식사는 목사 부부와 함께했다. 유기동물과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허락된 세계 너머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할 말이 많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존경했고, 그들은 나를 존중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이 허락한 것만을 믿고, 나는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성탄절의 전설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예수가 태어난 겨울, 베들레헴의 여관에 빈자리가 없어 그의 부모는 갓난아이를 보자기에 싸서 말구유에 뉘었다. 동방에서 찾아온 점성술사들이 상서로운 별 아래 태어난 아이에게 예물을 바쳤고, 천사에게 소식을 들은 지역의 양치기들이 몰려와 아이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받들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왕으로 책봉된 이방인 헤롯은 군인들을 풀어 베들레헴 인근의 두살 아래 사내아이를 모두 죽여버렸다. 구세주의 존재는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이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