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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래퍼

폭력으로 점철된 배움이라면 감내할 필요가 없다

ⓒhuffpost

“안녕, 날 소개하지. 이름은 김하온. 직업은 트래블러. (…) 배우며 살아. 비록 학교 뛰쳐나왔어도.”

별 기대 없이 봤다가 푹 빠졌다. <엠넷>(Mnet) ‘고등래퍼2’ 이야기다. 고등학생들의 힙합 서바이벌. 참가자는 교복을 입고 학교 이름이 새겨진 배지를 단다. 금요일마다 팝콘 뜯고 보고 있다. 그런데 교복을 입지 않은 몇몇이 눈에 띈다. 고등학생이 아닌 고등래퍼. 학교를 뛰쳐나온 이들이다. 

왼쪽부터 '고등래퍼2' 이병재, 김하온
왼쪽부터 '고등래퍼2' 이병재, 김하온 ⓒMnet 방송화면 캡처

래퍼 김하온은 자신을 여행가라고 말한다. 취미는 명상, 태극권. 학교를 뛰쳐나왔어도 계속 배우며 산다. 래퍼 이병재는 이렇게 묻는다. “엄마 아들은 자퇴생인데 옆방에 서울대 누나는 나를 보면 어떤 기분이신가요.” 끼니 한 번 때울 때 6000원 넘게 쓰는 일이 그는 두려운데, 돈 걱정 없이 삼시세끼 먹고 싶은 걸 먹는 사람을 볼 때. 자퇴하지 않고 견딘 친구가 전교 몇 등을 했단 얘기를 엄마가 들었을 때. 그는 속으로 묻는다.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시냐고. 읊조리는 듯한 그의 랩을 들으며 휴지를 찾았다. 눈물도 나고 콧물도 나서.

내가 학교를 그만뒀을 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자퇴생 카페 게시판에서 족히 두 달은 죽치고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통달했지만 결심이 어려웠다. 그래서 여름방학식을 계기로 ‘방학한다’ 생각하고 자퇴를 했다. 학교는 배움이 아니라 학습만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통제를, 폭력을 감내해야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자퇴를 결심하는 과정에 조언을 많이 구했다. 어른들은 모두 ‘중도 퇴장’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중도에 학교를 나오거나, 중도에 회사를 나오거나, 중도에 그 어떤 조직을 나오든 마찬가지로 낙오자로 찍힐 수 있다고. 많은 날을, 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등교를 했다.

자퇴생들의 자퇴 이후 삶은 제각각일 것이나, 많이 이야기된 적 없다. 십대 범죄 기사에서 사회 혼란의 원인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모두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래서 학교 밖의 배움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등장이 반갑다. ‘자퇴생’이라고 하면 아직도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그들은 경쟁에서 실패한 낙오자가 아니라 다른 길을 선택한 여행자이다.

여행자처럼 삶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내 경험으로는 우리 사회가 말하는 ‘배움’의 기본값은 폭력이었던 것 같다. 체벌이 당연했던 학교 문화. 신고식, 회식, 운동회 등 ‘동원’을 기본으로 하는 조직 문화. 권위자에게 복종하고 파벌끼리 잘못을 덮어주며 그 끈끈함으로 자원을 동원해 목표를 성취하는 각계의 썩은 문화. 부조리를 참는 많은 이들의 인내심이 이런 시스템을 유지한다. 견디는 사람을 연료로 쓰는 시스템. 그러니 자퇴, 퇴사, 포기 같은 ‘중도 퇴장’을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여기는 게 아닐까.

나는 중도 퇴장을 해본 경험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폭력적인 문화를 견디지 않고 박차고 나오는 경험은 중요하다. 학교뿐만 아니라 어떤 곳이든 그렇다. 폭력으로 점철된 배움을 감내할 필요가 없다. 그런 배움에 빨강 신호등을 켜지 못하면 우리는 여행자로 살아가는 법을 영영 모르게 된다. 자기 감정을 마비시키지 않고, 자신의 삶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읽어내는 사람들, 여행하듯이 배우며 사는 이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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