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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대물림의 무거움,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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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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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존재가 유전자다. 대단히 강력하게 건강을 좌우한다.

2011년 미국 알버트아인슈타인의대의 연구결과를 보자. 이들은 수백년동안 비슷한 유전자를 보유한 유태계 가문 중 95세 이상 장수한 노인 477명과 동시대 태어나 평균 연령대에 숨진 일반인구들을 비교 조사했다.

그런데 결과는 우리 예상과 어긋난다.

먼저 운동을 보자. 일반인구 남성은 57%가 규칙적으로 운동한 반면 장수그룹 남성은 43%만 규칙적으로 운동했다. 술도 마찬가지다. 일반인구 남성은 22%가 매일 술을 마셨지만 장수그룹 남성은 24%로 음주비율이 더욱 높았다. 담배는 어떠할까? 일반인구 여성은 26%가 흡연자였지만 장수그룹 여성은 30%가 흡연자였다. 예상대로 적중된 것은 체중 하나였다. 장수그룹 남성의 4.5%만 비만인 반면 일반인구 남성에선 12%였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강조하는 운동과 금연, 절주 등 금과옥조는 왜 장수 노인들에게 통용되지 않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유전자에 주목했다. 분석결과 HDL 수치를 높여주는 유전자가 핵심역할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혈액 속에 분포하는 HDL(High Density Lipoprotein, 고밀도 지단백)은 혈관벽에 쌓인 기름 덩어리를 간으로 끌고가 분해시키며, 흔히 좋은 콜레스테롤로 불리운다. 수치가 높을수록 좋다. 놀라운 사실은 혈액검사상 이들 95세 이상 고령자의 평균 HDL은 75 mg/dl나 된다는 것. 보통 40 mg/dl이상을 정상으로 보고 있으므로 이들의 HDL 수치는 매우 높은 편이다. HDL은 운동을 해야 올라가지만 이들은 타고난 유전자 덕분에 항상 높은 HDL 수치를 유지한다.

비단 HDL 뿐일까. 유전자가 관여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담배 한모금 피우지 않았는데 폐암에 걸리는가 하면 평생 골초인데 무병장수하는 이도 있다"

"똑같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누구는 수년이내 면역결핍증세로 숨지고 누구는 수십년동안 끄떡없이 생존한다"

"아무리 먹어도 빼빼 마른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스킷 한조각만 먹어도 살이 찌는 사람이 있다"

"누구는 아스피린이 잘 듣는데 누구는 부루펜이 잘 듣는다"

이들 모두 현대의학은 유전자의 장난으로 해석한다. 성격이나 지능, 행동 등 습관도 유전자가 관여한다. 모짜르트냐 살리에르냐도 어쩌면 타고난 청각신경의 유전적 예민함의 차이에서 비롯되는지 모른다. 심지어 진보냐 보수냐의 선택도 유전자가 가늠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인간의 숫자가 '2'라면 하느님의 숫자는 '4'라고 믿는다

알다시피 인간이 창조한 디지탈 문명은 0과 1이란 두가지 숫자의 조합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러나 하느님은 바이러스에서 인간까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아데닌과 구아닌, 시토신, 티민이란 4가지 기호만으로 설계했다. 이들은 유전자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인 DNA의 뼈대를 이루는 4가지 염기를 말한다. 인간의 경우 부모 각각에게 물려받은 30억개의 염기쌍으로 자신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 30억개의 대부분은 동일하지만 1,000개 가운데 1개 꼴로 사람마다 다른 염기가 유전자의 같은 위치에서 발견된다. 이를 전문용어로 SNP(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 단일염기 다형성)라 부른다. 바로 이 0.1%의 차이가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나'란 존재를 만들어낸다. 생김새는 물론 질병에 대한 저항력, 능력과 성격 등 한사람이 지닌 생물학적 특성이 모두 여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이야기가 나오면 의학전문기자인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이고 현재 기술로는 어떤 유전자가 있는지 일부 미리 알 수는 있지만 유전자 자체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건강에 좋다는 비결들을 이러쿵 저러쿵 늘어놓아도 유전자가 잘못 됐다면 소용없는 일 아닌가 하는 푸념도 가능하다.

그러나 유전자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쌍둥이를 대상으로한 연구들을 살펴보자.

알다시피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100% 동일하다. 덴마크나 노르웨이 등에서 수만여명의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쌍둥이간 수명은 평균 10살이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명뿐 아니라 질병도 마찬가지였다. 암 발생률을 조사한 결과 유방암과 대장암, 전립선암을 제외한 나머지 암은 일반인과 구별되는 쌍둥이간 쏠림 현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세 종류의 암도 쌍둥이 한명이 걸리면 다른 쌍둥이가 같은 암에 걸릴 확률이 15% 내외였다. 결코 100%가 아니었다.

100%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쌍둥이 간에도 이처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도 당연하지만 생활습관과 환경 때문이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나도 몸을 함부로 대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반면 유전자가 다소 부실해도 몸을 아끼고 잘 관리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인체게놈사업과 분자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유전자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유전자는 현대의학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 지금도 비용을 내면 몇가지 초보적인 질병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 필자의 경우 치매 유전자는 음성이었지만 폐암 유전자는 양성으로 나왔다. 알다시피 유전자는 부모 양쪽으로부터 물려받는다. 나는 뇌세포에 독성 반점을 형성해 치매를 유발하는 Apo E4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하나도 물려받지 않았다. 반면 담배연기 속 벤조피렌을 폐암 유발물질로 전환하는 CYP1A1 m1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모두 물려받았다. 지금은 끊었지만 과거 수십년동안 담배를 피워왔다는 사실이 그래서 못내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아직도 유전자에 관한한 꿈보다 해몽이 크다. 스토리텔링에 능숙한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 과학자들의 현란한 글솜씨로 유전자의 역할이 과대포장된 면도 있어 보인다. 게다가 특정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는 한두개가 아니다. 고작 한두개의 결과만 갖고 '내가 치매는 안걸리는데 폐암은 걸린다'라고 단정지을 순 없다는 뜻이다.

유전자가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건강을 100으로 볼때 유전자는 기껏해야 30 정도로 보고싶다. 적어도 아직까진 그러하다. 왜냐하면 유전자의 구체적 역할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유전자에 대해선 아무것도 해줄게 없다. 다시 태어날 수도 없고, 부모를 원망할 수도 없다. 게다가 원하지 않는 유전자를 잘라내고 원하는 유전자를 붙이는 기술은 현재 기술로 불가능하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활습관이나 환경이 더욱 소중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전자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예컨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진 줄이 시원치 않다고 줄을 잡지 않을 순 없는 일 아닌가. 첨단의학을 자랑하는 유전자 시대에도 운동과 금연 등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을 실천하는 것이 최선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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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