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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흥분제는 흥분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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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
dusanpetkovic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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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그거 하나만 구해줘라."
"뭐 말입니까?"
"그거 있잖아, 돼지흥분제. 너 구할 수 있잖아. 구해줘."

수의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내가 수의대에 다닌다는 사실을 안 군대 선임들은 돼지흥분제에 지독히도 관심을 보였다. 일개 학생일 뿐이라 구할 방법이 없다 해도 막무가내였다. 수의사가 된 후에도 흥분제를 찾는 사람을 종종 만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키우는 강아지에게 먹이려고 한다며 물어보는 동네 아저씨들이 간혹 있었다.

25년 차 수의사인 이종찬 원장(치료멍멍 동물병원)이 들려준, 일명 '돼지흥분제'에 관련된 에피소드다. 그는 시골로 가끔 진료를 나가보면 아직도 은밀히 돼지흥분제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인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다. 이종찬 원장과 함께 이슈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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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돼지흥분제 혹은 돼지발정제라고 불리는 약물 요힘빈(Yohimbine)은 흥분제가 아니다. 오히려 억제제라고 봐야 한다. 예전부터 요힘빈은 성적으로 흥분된 동물들을 '진정시키는 데' 사용됐다. 특히 돼지들을 교배시킬 때, 날뛰는 수퇘지 혹은 예민한 암퇘지를 차분하게 만드는 용도로 사용해왔다. 실제 약물의 기전도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게 아니라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교배할 때 쓰는 약물이니 발정제"라는 착각이 오해로 굳어진 것이다.

동물병원에서 쓰는 발정 유도제는 따로 있다. PGF2-α, GnRH 등이다. 이들 약물은 호르몬제라서 함부로 사용해선 안된다. 사람 호르몬과 동물 호르몬이 다르기 때문에 효과도 없을뿐더러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또, 애초에 처방을 받기도 불가능하지만, 행여 구한다고 해도 먹어봤자 위산에서 분해된다. 근육 주사로 맞는다고 해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일차로 맞고 일주일 뒤에 또 맞으면 이틀 뒤에 효과가 나타나는 식이다. 물론 그 효과 역시 성적 흥분과는 거리가 멀다. 배란을 유도하는 기능만 할 뿐이다. 동물병원에서 구할 수 있는 약물 중 사람이 성흥분제 목적으로 쓸만한 약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비아그라가 있긴 하나, 굳이 동물 병원에 와서 구입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요힘빈을 구하려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요힘빈을 식품 유해물질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절대로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되는 약물로 분류된다. 요즘은 동물에게도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시골 동물병원 등에서는 값이 싸다는 이유로 종종 사용되지만, 동물에게도 세이프티 마진(부작용없이 안전하게 투여할 수 있는 용량의 범위)이 낮은 약물이기 때문에 도심의 동물병원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돼지흥분제를 먹어봤다는 후기 몇 개가 올라와 있다. 경험자들의 반응을 보면 돼지흥분제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글을 제외하면, 흥분되기 시작했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흥분제가 아니니 성적 욕구를 일어나게 하거나 성적 흥분을 고조시키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어지러움, 두통, 메스꺼움 등 부작용에 시달릴 뿐이다.

요힘빈은 자율신경계에 작용해 평활근을 이완시킨다. 이 때문에 간혹 성기 등의 혈관이 팽창해 발기가 잘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이것이 수퇘지라면 몰라도 암퇘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요힘빈으로 엉뚱한 수작을 부리려해선 안된다. 요힘빈은 흥분제가 아니라 억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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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