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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드라마, 과장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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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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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드라마 전성시대입니다. 의사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월화드라마 '닥터스'와 '뷰티풀 마인드'가 동시에 방송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신경외과 의사입니다. 닥터스의 김래원은 의사를 마다하고 시골학교 선생님으로 지내다 깡패소녀 박신혜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집니다. 그리고 13년 만에 깡패소녀는 의사가 되어 병원 옥상에서 응급헬기를 타고 날아온 김래원을 만납니다. 뷰티풀 마인드의 장혁은 정서장애가 있는 냉혈한으로 그려집니다. 미국 콜럼비아대에서 수련을 마치고 메이요클리닉 스텝자리를 마다하고 국내 병원 신경외과 조교수로 와 교통순경 박소담과 이런저런 음모에 얽히며 알게 모르게 연정을 쌓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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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의사나 병원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의사나 병원이 국민들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갈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드라마에선 의료현장의 폭력이나 비현실적인 수가, 재벌기업 재단의 경영간섭으로 고민하는 모습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수술 장면도 매우 리얼하게 카메라에 담고 있더군요. 두개골을 떼어내고 뇌수술을 하는 장면이 실감나게 나옵니다. 전문가의 고증을 잘 받은 덕분인지 질병 등 의학 용어에 대한 대사나 자막도 오류 없이 깔끔하며 마치 병원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의학 드라마가 많이 발전했다는 점에서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의사의 신격화라고 할까요? 의사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 포장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드라마를 위해선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설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시청자들도 모두 이해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니까요. 하지만 의학 드라마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어떤 장면을 의사가 시청하고 100명 가운데 100명 모두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재미를 떠나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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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 첫 회를 보면 대통령 후보가 병원 심뇌혈관센터 건립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합니다. 사실 이것도 웃깁니다. 국내 어떤 병원도 센터 하나 짓는데 유력 정치인이 참여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장혁이 정치인을 보고 수십 초만에 쓰러질 것을 예언합니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연설하는 등 아무 문제없었던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쓰러집니다. 병명은 거대 뇌동맥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병원에 처음으로 부임한 신경외과 의사 장혁은 멀찌감치 정치인을 바라만보고도 머릿속에 부풀어 오른 혈관 주머니를 진단해냅니다. 드라마에서 제시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눈부심과 걸음걸이의 불균형, 동공 확장과 눈꺼풀의 처짐으로 알아냈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렇다 치고 동공 확장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것은 의사가 검안경으로 눈을 가까이 진찰해야 알 수 있는 증세입니다. 아래 문제의 부분을 동영상으로 감상해 보시지요.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한 장면

설령 거대 뇌동맥류가 의심된다 해도 불과 몇십초 후 쓰러질 것을 예상한다는 것은 의사라면 누구나 코웃음 치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제아무리 뇌동맥류 대가라 할지라도 신이 아닌 다음에야 절대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2회에서는 장혁이 교수 연구실에 몰래 들어와 수술 동영상 파일을 가져가려는 박소담의 가슴을 수술칼로 찌릅니다. 알고 보니 심장판막으로 새어나온 혈액이 심장을 누르는 초응급상황 '심장눌림(cardiac tamponade)' 때문이었습니다. 대체 아무 증세도 없던 박소담을 보고 혈액이 심장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또 알았다 해도 수술장도 아닌 연구실에서 칼로 가슴을 찌르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요? 100명의 의사 모두에게 물어봐도 현실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응답할 것입니다.

드라마 <닥터스>의 한 장면

닥터스는 의학 이야기가 4회부터 시작됩니다. 이 드라마는 뷰티풀 마인드처럼 과장이 심하진 않았지만 의사 주인공의 신격화는 군데군데 드러납니다. 김래원은 비행기에서 옆 좌석에 앉은 젊은 여자 승객의 손떨림을 봅니다. 그리고 화장실로 걸어 나가던 여자가 갑자기 쓰러집니다. 입의 거품과 함께 경련이 발작적으로 나타납니다. 이른바 간질중첩증(status epilepticus)입니다. 드라마에선 원인을 뇌내출혈로 봅니다. 김래원은 4시간 안에 응급수술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비행기를 돌리고 응급헬기로 자신의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합니다. 그리고 네이게이션 장비로 출혈 부위를 찾는 대신 시간이 없다며 순전히 의사의 감으로 도관을 찔러 뇌 속에 고인 피를 뽑아냅니다. 정말 신의 손을 가진 의사입니다. 그런데 과연 비행기에서 뇌내출혈로 간질중첩증을 보인 응급환자를 헬기로 옮겨 도관삽입만으로 치료하는 게 현실에선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요?

드라마에서 주인공 의사는 참 멋지게 나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특출한 의사라도 혼자서만 신기에 가까운 수술 솜씨를 보여주진 못합니다. 의사도 보통 사람들이며 직업인입니다. 이사장의 검진센터 건립에 반대한다거나 1년차 레지던트가 주임교수에게 의료사고를 시인하라며 대드는 장면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게 있습니다. 임상 스탭들의 연구실이 지나치게 넓고 호화롭습니다. 저는 의학기자하면서 숱하게 많은 병원 교수들을 만났지만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요란한 연구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비좁습니다. 소파는 원장급 정도 되어야 가능합니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시청률이 중요합니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의사를 좀 더 사실에 가깝게 묘사해주길 부탁드려봅니다. 지금은 여전히 과장이 매우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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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