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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경을 아십니까? | 영화 '곡성'을 통한 사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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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칸 영화제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고 700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주인공의 딸 소녀 '효진'이 떠오릅니다. "뭣이 중헌디"란 명대사와 함께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도중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효진이 부모가 차 안에서 벌이는 카섹스 장면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들켜서 무안해하는 부모에게 효진은 자주 봐왔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러냐는 듯 쿨하게 넘어갑니다. 초등학생답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정신의학 용어로 어린이가 부모가 섹스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현상을 "원초경(primal scene)"이라 부릅니다. 자녀에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원초경이란 말은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합니다. 1910년 비엔나의 그의 병원에 러시아 부호의 아들이 찾아옵니다.

24세의 청년 세르게이 판케예프입니다. 역사상 프로이트의 가장 유명한 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누나가 자살하고 본인도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프로이트는 그의 꿈을 분석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매일 밤 대여섯 마리의 하얀 늑대들이 나타나 자신을 물어뜯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환자를 "늑대인간"이란 가명으로 치료하고 이를 학계에 발표합니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왜 극심한 우울증과 기괴한 꿈에 시달렸는가 하는 이유인데 프로이트는 이를 원초경으로 해석했습니다. 정신분석 결과 환자가 어렸을 때 부모가 성관계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는데 주로 아버지가 어머니를 후배위(doggy style)로 했다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에겐 이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힘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억누르는 폭압성이 트라우마가 된다는 해석이지요. 그래서 거세에 대한 불안감과 아버지에 대한 오디푸스 컴플렉스 등이 생겨나고 이것이 성장 후 성관계에서 자신감을 잃고 심한 경우 우울증이나 늑대 출현과 같은 악몽으로 연결된다는 해석입니다.

현대 정신의학은 프로이트의 원초경 이론이 조금 과장됐다고 말합니다. 늑대인간처럼 부모의 원초경을 목격했다고 자살이나 우울증 등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부모의 섹스가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는 점엔 대부분 동의합니다.

1998년 미국 UCLA대 심리학과에선 사상최초로 원초경에 대한 추적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0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18년 동안 관찰했습니다. 그랬더니 6세 이전 부모의 원초경을 경험한 어린이들은 확실히 이런저런 좋지 않은 결과들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남자보다 여자에게 심했습니다. 예컨대 성인이 되어 성병에 많이 걸리고 원치 않는 임신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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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캡처

트라우마의 징후는 성별, 연령에 따라 다릅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을 지나치게 싫어하고, 때로 짜증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반면 남자아이들은 아빠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평소 아빠가 엄마한테 보였던 폭력적인 언행과 행동에 대해 엄마를 보호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청소년기 여자 아이들은 이성에 대한 관심을 잃습니다. 남자를 경계하고 부정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트라우마가 성인까지 연결되면 자연스레 애정표현과 스킨십에 거북함을 느끼게 됩니다.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은 나이보다 조숙한 태도를 보입니다. 엄마가 보호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독립 시기가 되면 엄마를 떠나는 것을 극히 불안해 합니다.

원초경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들키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방문만 꼭 잠궈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만일 들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화에선 아빠 종구가 당황하다 못해 아이에게 "저리 가라!"라며 연신 윽박을 질렀습니다만 이는 옳지 못합니다. 아이를 멋쩍게 다그치지 말고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까져서 그런 것쯤은 말 안 해도 다 안다고 넘어가면 안됩니다.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3세 무렵만 되어도 부모의 섹스에 대해 감정적으로 강렬하게 반응합니다. 이 무렵 아이들이 아무리 까져도 무엇을 알겠습니까? 특히 남자보다 여자 어린이에게 트라우마가 크므로 딸을 가진 부모들일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부부관계를 들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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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