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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번째 안락사 허용국이 된 캐나다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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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가 17일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여기서 안락사란 독물 등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생명을 끊는 것입니다. 단순히 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가 아닙니다. 2002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습니다. 뒤를 이어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가 동참했으며 캐나다는 여섯번째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가 됐습니다. 미국은 1994년 오레건을 시작으로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에 이어 캘리포니아까지 5개 주에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와 주에선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자발적 의지를 갖고 안락사를 원할 경우 독물주사 등 의사의 조력을 거쳐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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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논쟁은 미국의 병리의사 잭 케보키언(Jack Kervokian)으로 불거졌습니다. 그는 130여명의 불치병 환자들의 안락사를 돕고 실제 10여명에게 스스로 고안한 독물주사기계를 통해 안락사를 시행해 살인죄로 9년간 옥살이를 하다 2011년 사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죽음의 의사로 비난했지만 그는 독물주사기계를 자비를 베푸는 기계란 의미의 머시트론(Mercitron)이라 부르며 자신의 행위를 옹호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락사에 대해선 찬반 양론이 존재합니다. 당연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올해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 법안이 겨우 통과됐을 뿐입니다. 2년 후인 2018년부터 불치병 환자들이 산소호흡기를 떼는 등 치료를 중단할 권리만 인정됩니다. 적극적 안락사는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실제 세계 각국의 여론조사를 봐도 안락사를 찬성하는 쪽이 점점 우세해져 가고 있습니다.

안락사는 매우 간단하게 이뤄집니다. 대개 정맥주사를 통해 티오펜탈 등 수면제를 투여합니다. 우리가 수면 내시경을 받을 때와 똑같습니다. 의식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염화칼륨을 투여합니다. 심장을 멈추게 하는 약물입니다. 둘다 몇백원이면 살 수 있는 값싼 화공약품입니다.

소중한 생명을 싸구려 약물로 죽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 소름 끼치는 행동입니다. 종교적, 윤리적 이유로 반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부작용도 예상됩니다. 실제 가난한 사람 등 약자들이 안락사를 빙자해 사회적으로 강요된 죽음을 선택할 지 모릅니다. 아니면 안락사로 둔갑한 자살이 늘 수도 있습니다. 이미 벨기에에선 전체 사망자의 2%가 안락사란 통계도 나와 있습니다. 혼자 남는 게 두려워 동반 안락사를 선택하는 부부도 있고 단지 사는게 싫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질병이 없는 20대 여성이 안락사를 선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사리판단이 어려운 어린이 불치병 환자에게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인정해 부모의 동의를 거쳐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내국인에게만 안락사를 허용합니다. 그러나 스위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안락사도 자국 내에서 허용합니다. 영국에서만 해마다 수백여명이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건너가고 있습니다. 2015년 영국은 안락사 허용법을 부결시켰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안락사 환자 5명중 1명이 영국 사람이란 통계도 있습니다. 프랑스는 2016년 불필요한 치료 중단에 더해 진정제를 투여하는 다소 어정쩡한 형태의 안락사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독물은 아니지만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약물로 마음의 안정을 얻도록 도와주자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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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찬성입니다. 이유는 불치병으로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환자들의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마약으로도 통제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을 왜 감수해야 하는지 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참으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는지 저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안락사는 자살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본인과 가족 등 지인들의 자발적 동의를 거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불행해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축복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1978년 영국에서 사상 최초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을 때 가톨릭을 비롯한 종교계에선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라며 극렬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험관 아기시술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는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반대하는 분들의 견해도 존중합니다. 그래서 논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안락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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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의학전문채널 <비온뒤> 홈페이지(aftertherain.kr)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