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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방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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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곽민해 〈보통엄마〉 에디터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의 방이 생겼다. 가족들과 방을 함께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린 내게 '어른이 된다'는 느낌과 비슷한 기쁨이었다. 처음으로 침대란 것도 생겼다. 바닥에서 자던 습관 때문에 한동안은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더 이상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나의 방이 있다는 사실도 더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 차례 이사를 더 하면서도 나는 계속 혼자 방을 썼다. 사춘기가 되면서는 방에 엄마 아빠가 모르는 비밀이 늘어났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방문을 닫았다. 누군가 예고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는 기분이 나빴고,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며 화를 냈다.

머리가 크면서 물건도 늘었다. 책을 많이 샀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로 책장을 채웠다. 서랍에는 영화나 공연 티켓이 쌓였다. 한창 빠져 있던 아이돌 그룹의 음반과 사진, 브로마이드 등도 서랍 하나를 차지했다. 언젠가부터는 내가 없을 때 방 청소를 하는 것도 싫었다. 엄마가 뭔가를 버릴까 불안했다.

대학에 들어온 뒤에는 자취방에서 살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내 공간이 비로소 생긴 셈이었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며 나는 더 많은 물건을 샀다. 같은 방에서 5년을 살자 작은 컵 하나도 더 놓기 망설여질 정도로 포화 상태가 됐다. 욕심도 늘었다. 바닥이 좁아서 늘 침대에서 밥 먹는 게 싫었고, 침실과 주방이 구분되지 않아서 생선이나 고기를 구울 수 없는 게 불만이었다.

이런 애기를 하면 아빠와 엄마의 반응이 사뭇 달랐다. 아빠는 타지에서 혼자 좁은 방에 사는 딸을 불쌍하게 여겼다. 엄마는 좁은 방에 살더라도 나처럼 지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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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ther Delousing her Child's Hair, Known as 'A Mother's Duty'. Pieter de Hooch, 1658-1660.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생각해보니 그렇게 이사를 하면서 엄마의 공간을 만든 적이 없었다. 집을 옮길 때면 동생과 나의 방을 어디로 할 것인지 싸움이 생기곤 했는데, 엄마 방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누구도 해보지 못했다. 안방이 있기는 했지만, 엄연히 말해 엄마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우리 집은 늘 좁았던 지라 필요에 따라 안방이 거실 역할을 하기도 해서 더 그랬다.

무엇보다 엄마가 혼자 있을 틈을 주지를 않았다. 엄마와 아빠 모두 바깥 일을 했지만, 때 맞춰 밥상을 차렸다 치우고, 청소와 빨래를 도맡아 하는 쪽은 늘 엄마였다. 엄마는 자기가 밥을 먹고 싶지 않을 때도 누군가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집에 있었다. 그래서 아빠처럼 쉬는 날 축구를 하러 가거나, 작업실에서 가구를 만드는 취미를 가지지 못했다.

집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에게, 자기 공간 하나가 없었다. 엄마를 뺀 나머지 사람은 거실 외에 자기 공간 하나를 더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것이 비단 나의 엄마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엄마가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묻고 싶다. 아이의 학교나 남편의 직장을 생각하지 않고 집을 구한다면 말이다. 내가 어떤 작가의 책을 사고, 어떤 감독의 포스터를 벽에다 붙일지 고민하는 것처럼 엄마도 그럴까. 너무 오랫동안 누구도 물어보지 않아서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 이 글은 〈보통엄마〉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