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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반은 여자로, 나머지 반은 남자로 살아온 청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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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려서부터 비운의 여주인공 역할만 연기해온 남자 배우가 있다. 무대 위에 선 그는 예쁜 얼굴과 가녀린 목소리로 부드러운 춤사위를 선보인다. 무대에서는 누구보다도 '여성스러운' 여자, 일상에서는 든든한 아들이자 혼기가 찬 '일등 신랑감'으로 살아야 하는 그는 이런 이중 생활에 괴로움을 느끼고 배역 때문에 유지해온 긴 머리를 보통 남자들처럼 짧게 자른다. 단장은 해고하겠다고 불같이 화를 내고, 남자는 스스로 극단을 떠난다.

이제 남자로만 살면 될 것 같았지만, 막상 무대를 떠난 그는 평소에도 여자 옷인 사리를 입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여자처럼 화장을 하고, 긴 치마를 입고 다니는 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대고, 이상한 소문이 퍼지면서 남동생의 혼삿길도 막힌다. 남자는 치마를 벗는 대신 고향을 떠나 다른 배우와 2인조 극단을 만들어 다시 여자 연기를 시작하지만, 새로 정착한 마을에서도 '늙은 남자와 치마 입은 남자가 같이 산다'며 목숨의 위협까지 받는다.

이것은 영화의 줄거리이자 실화다. 그리고 이건 단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6년의 인도가 배경인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남자들만 출연하는 인도의 전통 춤 공연 '약샤가나(yakṣagāna)' 배우다. 우희 역만을 평생 연기하는 '패왕별희'의 데이처럼, 주인공 '하리'도 예쁜 외모와 연기로 인기가 높다. 결혼 압박을 받는 나이가 된 '하리'는 일상과 연기 사이의 괴리를 전보다 크게 느끼게 된다.

"나는 여자를 연기하는 남자일까, 남자를 연기하는 여자일까?"

'배우라면 누구나와 잔다'는 여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좀 나아질까 싶어 찾아가 보지만, “진짜 여자처럼 예쁘다”는 그 여자의 말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 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온다. 보통 남자와 보통 여자, 어느 모습으로도 편안하지 않았던 '하리'의 이야기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 소재로 택한 아난야 까사라발리는 “인도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어느 댄서 이야기(Chronicles of Hari)'를 처음 공개한 까사라발리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 주인공이 몸 담는 '약샤가나'는 어떤 공연인가?

= 남자 배우들만 출연하는 전통 춤 공연이다. 남자 배우들은 5살 무렵에 극단에 캐스팅 돼 그때부터 노래, 춤, 연기 훈련을 받는다. 이 아이들이 10대 초반이 되면 남자 역을 연기할지, 여자 역할을 연기할지 정한다. 성장한 후 남성적인 외모를 갖게 될지, 여성적인 외모를 갖게 될지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한 후에는 한 가지 성의 역할만 연습한다.

약샤가나는 지금도 많이 공연한다. 최근에는 여자 배우들만으로 구성된 약샤가나 극단도 등장했다. 특이하게도 남녀 혼성 극단은 없다.

- 5살에 시작해 언제까지 같은 역할을 연기하나?

= 남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한다. 여자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여성적인 특징이 많이 사라지는 30대 후반에 은퇴한다. 다만 현재 60대의 나이로 여전히 여자 연기를 하는 배우가 한 명 있기는 하다.

- 실화 속 주인공의 실제 이야기를 해 달라.

= 약샤가나 배우들을 취재해서 쓴 단편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었다. 소설의 작가는 영화의 공동 작가로도 참여했다. '하리'의 실제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다. 평생 여자 연기를 한 배우들 중 이런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주인공 한 명의 이야기로 합친 것이다.

- 연기는 남자들만 할 수 있지만, 남녀노소 다 볼 수 있는 공연이다. 이중 다수를 차지하는 성인 여성 관객들이 여자 연기를 하는 주인공을 보며 공감하는 장면이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적인 데가 있다.

= 극 중에서 여자 주인공이 매력을 느끼는 남자는 항상 매우 '남성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여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여성 관객들에게 훨씬 인기가 많다. (*편집자 주: 이들이 남자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들은 남자의 사랑이나 결정을 항상 기다려야만 하는 처지에 대한 토로 등을 담고 있다.) 그들은 남자 연예인으로서도 인기가 많을 뿐 아니라, 여성 관객들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목소리'가 된다.

-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남자들만 무대에 서는 게 허용되는 전통극들이 있다.

= 알고 있다. 남자 배우만 출연하는 것도 그렇고, 무대, 의상 등 스타일도 비슷하다.

chronicles of hari



- 주인공은 무대 위에서는 조금이라도 남성적인 모습을 보이면 크게 혼이 나는데, 반대로 일상에서는 여성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면 바로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고 배척 당한다.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남녀 성 역할을 엄격하게 강조하면서, 무대 위에서의 '여장 남자'는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즐기는 이유가 뭔가?

= 무대 위의 여장 남자는 현실에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지금까지 전통적인 가치관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이 흔들리게 된다.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옛날처럼 성 역할이 2개로 나뉘어 있는 게 편한 것이다. 무대 위의 여장 남자는 내 현실과 동떨어진 쇼일 뿐이지만, 그 사이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린다. 영화 속 주인공을 배척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그것이다. 그런 위선을 지적하고 싶었다.

- 인도 사회에서 남자에게 기대되는 남성성이란 뭔가?

=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거의 전세계적으로 일치하니까. 남자들에게는 (집안이 아니라) 바깥 일을 하는 역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 목적 지향적이고 호전적인 성격 등이 요구된다. 여자들에게 기대되는 덕목은 차분한 성격, 집안을 챙기는 모습, 수동적인 행동 같은 것들이다.

이런 역할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이 기존 사회에 안정성을 준다. 그 안정성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모든 억압이 시작된다.

- 30세의 젊은 여성으로서, 직접 겪었던 성 차별은 어떤 게 있나?

= 인도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고,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옅어졌다. 내 할머니는 여자로서 힘든 삶을 살았다. 할머니가 들려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만 들어도 지금 시대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많이 나아졌는지 알 수 있다. 할머니 시대였다면 여자인 내가 영화를 만드는 것도, 이런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한국에 오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은 여자들에게도 많은 기대를 거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길은 멀다. 내 또래, 내 친구들 역시 그런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순응하기를 요구 받는다.

내가 이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여자니까 아동용 영화를 만들어봐라”라거나 “힘든 거 하지 말고 더 가벼운 소재를 골라라”, 혹은 “'네 영역'에 있는 걸 해라” 라고 말했다. 굉장히 불쾌한 말들이었다. 나는 여자가 맞다. 하지만 나는 아동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난 이 영화가 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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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아난야 까사라발리(Ananya KASARAVALLI)



- 인도의 LGBTQ는 상황이 어떤가?

= 요즘 들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물결이 특히 강해졌다. 인도 정부가 제3의 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게 3년 전인데, 그게 큰 계기가 됐다. 물론 여전히 성소수자 혐오 범죄가 일어나지만, 그 전만큼 사회 전체가 터부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 가족에게 평생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거나,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집에서 쫓겨나는 경우에 대해 종종 듣는다.

= 어떤 종류의 인권 운동이든, 가족 제도 안에까지 침투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은 정부가 제도로 제 3의 성을 인정한 것이 출발점이 된 상황이다. (인식이 바뀌지 않아도) 제도가 먼저 그들을 인정하면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인다.

- 트랜스젠더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크로스드레서들의 경우는?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나?

= 그렇다. 이들의 경우 특히 더 고무적인 일이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이 일반적인 직장에 취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회사 몇 곳에서 정책적으로 제 3의 성을 가진 이들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분위기가 정말 달라졌다. 이번 일이야말로 진짜 변화를 이끌어낼 진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변화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시골의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시골에서는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남성들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날이 하루 있다. 사원에서 하는 대형 축제 날, 마을 남자들은 사리를 입거나 혹은 나아가 여장을 하는 게 허용된다. 1년에 하루 열리는 작은 창 같은 것이다.

- 영화에서 마을 사람들이 '형법 377조'를 가지고 동거하는 두 남자를 협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377조'의 내용은 뭔가?

=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이다. 여전히 존재하지만,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형법 조항 377
india gay

"영국 식민지 시대로부터 내려온 법적 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심지어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비정상적인 행위 - 남자, 여자, 동물을 대상으로 자연의 법칙을 어기는 성적 행위를 하는 이는 종신형 또는 10년 이하의 징역살이와 벌금을 물어야 한다." 2013년 12월 11일 인도 대법원은 동성애 행위를 해금한 델리 고등법원의 2009년 결정을 번복했다. LGBT 운동가들이 10년 이상 벌인 인권 투쟁으로 델리 고등법원은 인도 형법 377조 항을 불법화하면서 동성애가 불법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대법원이 그 결정을 완전히 다시 뒤집어버린 것이다."

관련 기사: 2014년 12월 18일, '동성애 불법'의 사회에서 싸우는 인도 동성애자들의 삶



- 인도 내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 소식이 종종 들린다. 혐오범죄라고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 안타깝게도, 그게 사실이다. 미디어에 보도되는 잔인한 사건들이 실제로 많이 일어난다. 이 영화를 준비하는 몇 년 동안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가깝게 지내며 교류했다. 그래서 이들이 얼마나 여러가지 차원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지 잘 안다. 가족, 주위 사람들, 경찰들, 그리고 사회 일반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 그런 혐오범죄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들은 지금 어떤 도움을 받고 있나?

= 사고 이후의 삶은 너무나 힘들다.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가 없다. 이들은 커뮤니티에 모여 같은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들의 결속력은 상당하다. 내가 느낀 바로는 그렇다.

영화는 '하리'의 실종으로 끝난다. 죽었는지, 살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어떤 결말도 제시되지 않는다. '하리'가 원한 것은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자든, 여자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어떤 옷을 입든 아무도 그걸로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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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핑턴포스트코리아는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이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명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싣습니다. 특히 아시아에서 사회가 강요하는 성 고정관념이 어떻게 개인을 압박하고, 장벽이 되는지 그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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