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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과 인권은 한 몸이다. 이제는 교권을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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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재원 (성원중 교사/ 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2009년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학생인권'이 교육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의 주인공인 곽노현이 서울시 교육감으로 당선되고, 2012년 서울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이제 전국 4개의 시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학생 인권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학생인권조례가 자리잡고 있는 동안, 보수교육단체에서는 입을 모아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했다. 이들의 주장은 학생인권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교권도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이렇게 조례의 형식으로 인권만 강조하다 보니 교권이 위축되고 실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진보교육단체들은 "교권이 어떻게 인권에 앞설 수 있느냐?"라고 맞섰다.

그러나 교권 침해 사건이 자꾸 늘어나고, 사회적 공분을 사게 되자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에서 '교권보호조례'를 제정하고자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보수교원단체는 환영을 하는 게 아니라 쌍수를 휘두르며 반대했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권리가 그럼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학생인권도 교권도 아니라면?

이들이 교권보호조례에 반대한 이유는 교권 침해 주체로 학생, 학부모 뿐 아니라 교장, 교감 등 관리자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교장, 교감이 교사의 정당한 수업을 방해하거나 간섭하는 행위는 교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교권은 교장이 생각하는 교육을 교사에게 요구하여 학생에게 내려 먹이며, 이 과정에서 학생, 학부모, 교사로부터 어떤 견제나 통제를 받지 않을 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교권은 '교육권'이 아니라 '교장권'이며, 이들이 말하는 학교의 자율성은 교장의 자율성인 셈이다.

이들이 이렇게 교권이라는 용어를 남용한 덕분에 진지하게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조차 교권이라는 말을 꺼내기 난처해졌다. 심지어 진보진영에서 교권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금기어 취급을 받았다. 교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음에도 진보적 교원단체가 교권 보호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행여 교권 침해에 대한 규탄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으로 비칠까 우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교권을 마냥 방치해 두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현재 학교 현장의 상황은 너무 심각하며, 교사들은 교사로서의 교권은커녕 자연인으로서 인권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와 있다. 더 이상 교권이라는 중요한 권리를 일부 수구보수 교육 단체의 전유물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이제는 교권을 말해야 할 때다.

그런데 교권을 말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교권의 권이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권은 권력이 아니라 권리다. 다른 하나는 이 권리가 교사의 권리, 혹은 교장, 교감을 포함한 교원의 권리가 아니라 학생의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교권은 교원의 권력이 아니라 학생의 권리에 속한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교권을 교사의 권력, 즉 교육이라는 목적을 위해 학생에 대해 행사하는 영향력 통제력으로 오해했기 때문에 인권과 충돌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통제력은 학생의 기본권과 부딪칠 수 밖에 없고, 특히 기본권 중 자유권이 국가의 공권력과의 대결 과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 충돌은 첨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권을 교사의 권력이 아니라 학생의 권리로 파악하면 이러한 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된다.

이름이 교권인데 이게 학생의 권리라고 하니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교권의 근거가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교육받을 권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적어도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정당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교육은 교수와 학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둘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교육의 양 측면이기 때문에 가르칠 권리인 교권과 배울 권리인 학습권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을 이룬다. 학습권이 배제된 교권이 있을 수 없고, 교권이 무너진 곳에 학습권이 있을 수 없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인권 담론은 자유권적 기본권에 너무 치우쳐 왔다. 그래서 교육권이 다른 인권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본질적인 인권의 하나라는 점을 간과해왔다. 아직도 학생 인권이라고 하면 두발, 복장의 자유, 체벌 금지 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더 나아가 보는 사람들도 참정권적 기본권에 속하는 학생회 의결기구화 등을 떠올리지, 정당한 학습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 충분한 수준의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포함하여 학생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헌법체계상 교육권은 자유권과 동등한 무게를 가지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더구나 학습권은 시민 중에서도 학생이라는 특수한 신분에게는 본질적인 인권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학습권이 기본권이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 이를 위해 국가는 자격과 능력을 갖춘 교사를 선발하고 배치하며, 이들이 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누구도 이들이 전문성을 발휘하여 학생을 교육하는 일에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못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바로 여기서 교권의 근거가 발생한다. 이렇듯 교권은 교사로부터 비롯된 권리가 아니라 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권리인 것이다. 정부가 교사에게 간섭함으로써 학생의 정당한 학습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헌법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것이며, 교사가 상급기관, 관리자, 기타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받아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학생을 처벌하고 규제하는 권리로서 교권은 어디에서 발생한 것일까? 이 역시 학생의 학습권에서 비롯되었다. 교사가 정당하게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방해하는 행위는 그 주체가 학생이건 학부모건 심지어 동료교사이건 간에 모두 교권 침해이며,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이며, 교사에게는 이를 제지할 정당한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가령 어떤 학생이 교사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하며 버티거나, 혹은 소란 등의 행위로 수업을 방해한다면, 이는 교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의 정당한 학습권을 침해한 것이다. 민주공화국에서 권리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않는 범위까지만 보장된다. 따라서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까지 보장되는 자유권 등은 있을 수 없다. 이를 인권 대 교권의 대립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관점이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인 교육권이다. 교권은 이 교육권의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제는 교권 보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교권은 인권이다.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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