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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스승에게 돌려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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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스승에게 돌려주자

글 | 권재원 (성원중 교사/실천교육 교사모임 고문)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은 교사들의 좌불안석의 날이기도 하다. 그나마 요즘은 학교에서 스승의 날 행사를 거의 하지 않아서 덜 불편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학교에서 스승의 날 행사를 했다. 학생회 주최라고 하나 실상은 교장이 하라고 하니, 학생회 담당 교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학생들을 시켜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교사들은 아무도 그 행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옆구리 찔러 절 받기도 유분수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이벤트가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풍속처럼 남아있지만 학급 단위로 간단한 케이크, 카드, 풍선 등을 이용하여 조회시간에 깜짝 파티를 하는 것이다. 그 밖에 담임교사와 평소 좋아하던 교사에게 꽃이나 간단한 선물을 하기도 했다. 스승의 날 교무실에 가면 담임 교사와 비 담임 교사를 책상을 장식한 꽃다발과 선물 무더기로 금방 구별할 수 있었다.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가 장만한 고가의 선물은 소위 강남3구 이야기고, 보통 지역, 보통 학교에서는 그야말로 코 묻은 돈이 느껴지는 온갖 잡동사니 같은 선물들, 그러나 차마 버릴 수 없는 선물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간혹 학부모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 한 두개 나왔다. 특히 총각 선생님들은 담임이 아니어도 책상에 꽃과 아기자기한 선물들이 가득 찼다.

물론 스승의 날 풍경이 이렇게 훈훈한 것 만은 아니었다. 일부 정신 나간 교사들도 있었다. "바디 용품은 안 받는다", "수표는 취급 하지 않으니, 현금으로 챙겨와라" 등등의 상식 이하의 발언을 하는 교사들까지 있었다.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뉴스거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덕분에 '스승의 날'은 어느새 교사에게 촌지나 선물을 바치는 날처럼 인식되어 버렸고, 촌지와 선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는 학부모와 혹시 학부모가 촌지나 과한 선물을 가져오면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하는 교사 모두에게 서로 불편한 날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서로 불편하다 보니 학교 간의 폭탄 돌리기까지 나왔다. 고등학교에서는 이 날을 "모교 방문의 날" 이라고 정한 다음 학교 문을 닫아버리고, 그럼 중학교는 이날에 수련회나 소풍, 백일장 따위를 끼워서 학교를 비워버리는 것이다.

이 판국에 교육당국은 스승의 날만 다가오면 마치 연례행사처럼 촌지나 뇌물, 향응 등을 엄단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살포하고, 신문과 방송은 하고 많은 날 중 스승의 날을 골라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는 학교, 그 속에서 신음하는 학부모의 고충을 대서특필했다. 또 진부할 정도로 반복되는 레토릭인 "요즘 시대에는 직업인으로서 교사만 있을 뿐 스승이 없다."라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당연히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싫다. 스승의 날 폐지 찬반 투표를 하면 아마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폐지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극단적인 선택 대신 이러한 혼란과 갈등의 근원이 무엇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런 날이 만들어진 취지가 있을 것이고, 그 취지가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다면 살려야 할 것이고, 왜곡되었다면 바로잡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뜻이 왜곡된 것이다. 이 모든 아수라장은 스승과 교사가 동의어가 아닌데, 이유 없이 마치 그런 것처럼 사용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 날은 스승을 찾아 은혜를 되새기고 감사를 표시하는 날이지, 교사들에게 감사와 성의를 표시하는 날이 아닌 것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사전을 찾아보기 바란다. 교사는 "학교에서 국가가 인정한 자격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되어 있고, 스승은 훨씬 폭이 넓어서 "나를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이 둘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교사를 규정하는 기준은 '가르치는 행위'다.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교사가 아니며, 반대로 학생들이 배운 바가 전혀 없더라도, "무능한 교사일지언정 교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승은 '배움과 인도'가 기준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서 배운 바가 있고 인생의 길잡이로 삼았다면, 그 사람이 가르쳤건 가르치지 않았건, 심지어 만났건 만나지 못했건 간에 나의 스승이다. 반면에 아무리 나를 열심히 가르쳤어도 결과적으로 내가 배운 바도 없고, 삶의 방향을 보지도 못했다면 그 사람은 스승이 아니다.

이렇게 교사와 스승의 의미를 따져 보면, 초중고등학교 재학생들이 학교의 교사들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배운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 삶의 길잡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것들이 형성되는데 어떤 분의 도움을 받았는지를 알려면 상당한 수준의 삶의 성찰이 필요한데, 단지 재학 중인 학교에 재직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부르기에는 너무 성급하다. 스승이란 배우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다가 자신의 배움과 삶을 돌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는 존재다. 내 삶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데, 내 삶에 도움을 준 분이 누구인지 알아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스승은 초중고 학생이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꽤 시간이 지난 어른들에게 존재한다.

오욕으로 꼬여버린 스승의 날 해법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스승의 날은 재학생이 아니라 사회에서 한창 활동하고 있는 어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스승이 된 분을 떠올리고 감사를 표시하는 날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물론 교사가 먼 훗날 누군가의 스승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큰 직업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다는 보장은 없으며, 또 적어도 지금 당장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스승은 아니다. 그러니 학부모는 자녀들의 교사 대신 자기 자신의 스승을 찾아 뵙는 것이 어떨까? 그럼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계기도 되고, 또 자녀와 함께 자신의 스승을 찾아 뵙는다면 그 자체로도 훌륭한 자녀 교육이 아닐까?

꼭 그렇게 찾아 뵙는 스승이 모교 교사일 필요는 없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마주친 그 무수히 많은 교사들이 다 스승일 수 없다. 오히려 스승은 인생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곳곳에서 알게 모르게 만난 사람들 중에 있을 수 있다. 초중등학교는 배움을 준비시키는 곳이다. 진짜 배움은 그 이후에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많은 스승을 만났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을 알차게 살았다는 뜻이다. 평생 학습의 시대 아닌가?

스승의 날을 교사에게 감사(感謝)하는 날로도, 교사를 감사(監査)하는 날로도 삼지 말자. 스승의 날은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배움을 통해 도와주고 삶에 좋은 영향을 주는 그런 수많은 스승들을 찾아 존경과 영광을 드리는 그런 날로 삼자. 평소에 선생님 소리 많이 듣는 교사와 교수보다는 평생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많은 가르침을 준 그런 분들을 찾아 우리 사회의 스승으로 삼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 스승의 날을 교사들에게 강제로 독점 시키지 말자. 스승의 날을 스승에게 돌려주자.

※ 본 칼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교육을바꾸는사람들'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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