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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제국의 위안부〉를 읽고 1 | '다른 목소리'를 향한 야만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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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위하여.

지난 1월 21일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6.25 ~ 1950.1.21)'이 타계한 날이었다. 오웰이 죽은 지 이제 70여 년이 다 되어 가지만, 놀랍게도 그의 글은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강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오웰의 냉철한 비판은 각 시대마다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했고, 요즘은 유럽 극우정당의 민족주의 부상과 트럼프의 당선으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글을 잊히는 것과 기억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면, "영국의 가장 위대한 전후 작가" 조지 오웰의 글은 명백히 시대를 초월해서 기억되는 글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조지 오웰은 한때 영국 식민지의 제국경찰이었다.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버마(미얀마)에서 식민지 경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으며, 때때로 버마 여자를 돈으로 사기도 했다. 버마는 1824년부터 1885년에 걸쳐 세 차례 영국과 전쟁을 치르며 완전히 영국령 식민지가 됐고, 1948년에야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버마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지 40여 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제국경찰로 약 5년간 근무한 조지 오웰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한반도에서 근무한 일본 순사와 비슷한 위치였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Burmese Days'(1934)를 비롯해 몇 편의 에세이도 남겼는데, 지금도 이 작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출간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조지 오웰과 마찬가지로,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에 와있던 수많은 일본인들도 여러 가지 다양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그 시대를 기억하는 것처럼, 일본인들도 똑같이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과 에세이를 보며 역사적 진실을 엿볼 수 있듯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록 및 기억을 통해서도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이 식민지 제국경찰이었다고 해서 그가 쓴 소설과 에세이가 무가치한 게 아니듯이, 일제 식민지 시절에 관한 일본인의 기록과 기억도 우리는 잘 살펴봐야 한다. 설사, 그것이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닐지라도... 바로 이런 최소한의 합의는, 이제 일종의 '금서'가 되어버린 [제국의 위안부]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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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표지. ⓒ뿌리와 이파리

식민지의 모순

미국 노예시대 지배자인 백인과 피지배자인 흑인의 관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대농장을 경영하는 백인은 소수였고, 거기서 일하는 흑인은 다수였다. 막대한 부의 축적을 목적으로 하는 대농장의 특성상 각 농장의 거리가 먼 경우도 많았고, 백인 입장에서 혹시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다른 백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숫자가 적은 백인들이 많은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며 광대한 농장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농장주들은 일상적인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항상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했던 백인들은 (어떤 불상사를 가져올지도 모를) 흑인들 사이의 대화를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노예로 잡혀오기 전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흑인들은 서로 말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한 처지에서, 야만적인 백인의 총부리 앞에 동물보다도 못한 비참한 노예생활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흑인뿐 아니라 백인의 인간성 파괴도 피할 수 없었고, 이와 같은 모순은 제국주의 식민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조지 오웰의 작품에서도 계속 등장하는 식민지 체제의 모순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한반도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박유하 교수가 쓴 [제국의 위안부]는 바로 이런 식민지의 모순을 직시하는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순에는 가해자인 일본군의 모순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조선인 위안부의 모순도 포함된다. 그래서, 한국인이 보기에는 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낸다면, 분명히 얻는 게 있을 것이다.

풀리지 않던 의문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국 중심 현대 팝의 근간은 '흑인음악'이다. 도대체 흑인음악이란 게 뭘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흑인음악의 출발점을 살펴봐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백인 농장주들은 흑인 노예들 간의 대화를 금지시켰다. 노예들은 힘든 노동을 버텨내고 또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지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고, 결국 이들은 하늘에라도 대고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곧 '필드 홀러(Field Holler)'라는 노예들의 노동요 형태로 나타난다. 필드 홀러는 같은 흑인들과는 거의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원치 않는 가혹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 흑인들의 고통과 답답함·설움을 신께 호소하는 영적인 노래였다.

백인들 입장에서도 힘들게 일하는 흑인들이 노래의 리듬에 맞춰 묵묵히 일하는 것(노동요의 기본적 기능)으로 비춰질 수 있었기에, 대화를 못하게 막는 대신 Field Holler만큼은 완전히 금지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구전된 필드 홀러는 흑인들에게도 전파된 개신교와 만나서 '가스펠(Gospel)'이 되는 한편, 산업의 변화와 흑인들의 도시 이주 등으로 보다 넓은 사회와 접촉하면서 '블루스(Blues)'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가스펠과 블루스가 바로 흑인음악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원래 흑인노예들의 음악이었지만 지금은 백인들도 너무나 사랑하고 자랑해 마지않는 미국 중심 팝의 근간이 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조선인 위안부'를 일본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게 됐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위안부'라는 것 자체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일본군의 성욕 해소를 위해서라고 하기엔 풀리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가스펠과 블루스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아니듯이, 조선인 위안부도 분명히 역사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고 매번 막히는 지점이 많기 때문에, 어쨌든 뭔가 '다른 목소리'가 필요했다. [제국의 위안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여러 의문점들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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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박유하 교수 ⓒ연합뉴스

'다른 목소리'를 향한 야만적 대응

박유하 교수는 25년 전 일본 유학 시절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통역을 한 이후 위안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2004년에 민족주의를 넘어 한일문제를 논의하는 한일지식인 모임을 만들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도 위안부 문제였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과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으며, 2011년에는 일본매체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제국의 위안부]에는 이때 연재한 글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긴 세월 이어진 적극적 활동의 일환으로 2013년 8월에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했고, 책이 나온 이후에도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만남과 심포지엄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데 출간 10개월이 지난 2014년 6월 갑자기 위안부 지원단체가 민형사상 소송과 함께 출판금지 가처분소송을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제국의 위안부]가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로 썼다(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비난하기 시작한다.

2014년 11월에는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이 간행되고, 2015년 6월에는 법원 판결에 따라 34곳이 삭제된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이 출간된다(이렇게 일부가 삭제된 책이 현재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민사 재판 1심 판결은 2016년 1월에 있었지만, 박유하 교수가 즉각 항소한 상태다. 2016년 12월 20일 형사 1심에서 검찰은 박 교수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이상윤 부장판사)는 2017년 1월 25일 오후 3시에 1심 선고를 내린다. 부디, 재판부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를 바란다.

도대체 왜, 위안부 지원단체가 박유하 교수를 공격하는 걸까? 아마 [제국의 위안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읽어보면,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뭔가 대단히 복잡한 내막이 있는 것도 아닌 듯하고, 오히려 (집단주의와 획일성, 이분법과 비이성적인 진영 논리가 만연한) 우리의 대한민국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장담컨대,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와 같은 상황 자체가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보통 한국 사회에서 '다른 목소리'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나.

박유하 교수는 책을 완전히 무료로 공개해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해놨으니, 『제국의 위안부』 삭제판 전문 다운로드 링크를 첨부한다. 물론 나는 무삭제판을 읽었지만(중고서점을 통해 구했다), 삭제판을 읽어도 전체적인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내 언론은 별로 관심이 없겠지만, 오에 겐자부로 · 가라타니 고진 · 우에노 지즈코 같은 일본의 저명한 지식인들도 박유하 교수의 기소를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어차피 이 문제는 길게 이어질 테고, 다음 번에는 세부 내용도 집중적으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나는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첫 번째 글을 반성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너무 무관심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었는데도, 적극적으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검찰의 구형이 있은 다음에야 뒤늦게 책을 구해서 읽어본 걸 나는 반성한다. 그저 책을 썼다고 검찰이 학자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하는 이런 야만적인 일이 다시는 없기를 기원한다.

아서정 블로그 : arthurju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