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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남충이다 2 | 우리는 왜 방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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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image/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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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방관하는가.

첫 번째 글 '내가 한남충이다 -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를 통해 여성과의 관계(사회적 관계망)에서 소외된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봤으니, 이제 두 번째 글에서는 1편의 주인공들보다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조금 더 나은 지위에 있는 남성들의 '방관'에 대해 살펴보겠다. 분노와 방관, 이 두 가지 정서는 여성혐오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남성들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방관과는 달리 분노라는 표현이 정말 딱 맞아떨아진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시사인에서 이미 '분노한 남자들'이라고 했으므로 그냥 동일하게 사용한다).

이걸 한마디로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상대적으로 더 약한 쪽에서는 "내가 직접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나보고 뭐라고 하느냐? 난 여자를 만난 적도 없고, 여성혐오를 할 생각도 없다"라는 심정으로 분노하고 있다면, 그래도 이보다는 좀 더 가진 게 있는 남성들은 "니들이 아무리 떠들어 봐야 난 그냥 이때까지 해온 대로 살 테고, 내 주변에서는 딱히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라는 생각으로 일종의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아마 전자가 비교적 나이가 좀 적은 남성들이 많을 테고, 그나마 인터넷 활동 등을 통해 여성혐오 국면에서 어쨌든 불만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부류일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굳이 이런 일에까지 쓸데없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비교적 나이를 좀 먹은 남성들이 많을 테고, 스마트폰 시대 이전의 생활방식이 아직은 더 편한 부류다. 이들은 여성혐오 국면에서 실제로 잘 보이지 않는다. 별로 관심도 없고, 특별히 뭘 해야 할 필요성도 못 느낄 가능성이 높다. 원래 쉽게 보이는 것보다 잘 안 드러나는 게 더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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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혐오표현과 여성혐오에 대한 인식>, Media Issue(2016.7) 발췌.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전 글에서도 말했다시피, 내가 처음 여성혐오에 관한 글을 블로그에 쓴 날은 2012년 10월 17일이었다. 이때 많은 댓글이 달렸고, 그 댓글 중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하나 그대로 옮겨본다.

"남자로써 걍 이런 생각도 들거든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중산층도 무너지고 남자의 경제력은 점점 쪼그라드는데, 현실에서 결혼시장이건 연애시장이건 이제 강자도 아닌데, 내가 뭐하러 기득권을 내려놓는걸 스스로 해야하나?'란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여성부 폐지하겠다는 정권과 남성기득권 보호하겠다는 정권에 한표 던질 생각인데요.
뭐 그 과정에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키보드 배틀 벌이고 뭐 할 필요없이요."

물론, 이 댓글의 작성자가 정확히 어떤 남성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이런 방관자적 태도를 가진 남성을 우리 주변에서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아마 한국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대체로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딱히 특이하거나 극단적인 의견이 아니라 어느 정도 통용되는 말이라는 뜻이다. 남성들 사이에서 이런 것까지 뭐라 하기 시작하면 너무 피곤해진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내가 뭐하러 기득권 내려놓는 걸 스스로 해야 하나?"와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키보드 배틀 벌이고 뭐 할 필요도 없다"라는 거다. 이 두 문장은 방관하는 남성들의 인식과 행동을 압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으며, 이를 통해 몇 가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부터는 '내가 한남충이다 -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와 마찬가지로, 이들의 입장에 서서 똑같이 서술해 보겠다.

한국 남성들이 방관하는 이유

우리가 방관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1편에서처럼 내 얘기를 먼저 잠깐 해보면, 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30년도 훨씬 전에 경상도에서 태어났고 성장기를 전부 그곳에서 보냈다. 약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거기 살면서 나는 성평등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굳이 비슷한 예를 억지로 찾자면 국민학교(나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나왔다) 때 성교육 시간이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여학생들만 따로 모아서 하고 나는 다른 걸 했던 것 같다.

그 후 남중·남고를 다녔는데, 학과 수업 이외에 다른 걸 배워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이는 중학교 때도 그랬지만, 고등학교 때는 진짜 더 심했다(오죽하면 예체능 시간에 국영수 수업을 할 때도 있었다). 결국 거의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성평등에 대한 관념 자체가 정리되지 않았고, 그게 나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어머니께서 누나들에게 "너는 여자고, 쟤는 남자잖아"라고 말할 때 그게 도대체 어떤 의미이고 누나들에게 어떤 압박으로 작용할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군대를 다녀왔고, 그냥 흔한 복학생이 됐다. 여기서부터는 딱히 나의 경험이라기보다는 그저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 걷는 길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 상사가 남성인 직장을 다니고, 여가 시간엔 걸그룹의 동영상이나 포르노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 주로 남성 동료들과 경쟁해서 승진을 할 테고, 사업을 하더라도 주로 거래처 남성들과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결정을 한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분명히 나타나는데, 지난해 매출액 기준 상위 100대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고작 2.3%에 불과했다(극소수 상위매출 기업일수록 이 비율이 높으므로, 일반적으로는 이보다 더 낮은 비율인 경우가 많다). 평범한 회사에서는 여성임원이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고, 양성이 모두 첫 직장을 가지는 20~30대에는 임금격차가 별로 나타나지 않다가 40~50대로 갈수록 그 격차가 급격히 벌어지며 나중에는 거의 2배까지 차이나는 것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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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 '[팩트체크] 남녀 임금격차 OECD 중 최악? 확인해보니'(2016/03/09) 발췌 ⓒJTBC

한마디로, 우리는 남성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일부 업종에는 고위직에 여성들이 약간 있겠지만 무시해도 될 정도이고, 내가 일하면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남성이다. 명백한 범죄행위나 특별히 주목받는 분야가 아니라면 성평등 따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남성 중심 문화와 제도가 공고한 사회다. 나이를 먹을수록 또 위로 올라갈수록 더 눈치 볼 게 없어질 테고, 내 시야에는 기껏해야 내 지시를 따르는 젊은 여자애들 몇 명밖에 안 보일 것이다.

거창하게 '젠더감수성'이니 뭐니 그런 걸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냥 간단한 예로, 포털사이트 메인페이지만 잠깐 봐도 도대체 거기 어디에 젠더감수성이 있는가? 그냥 젊고 예쁜 여자 사진 올라오면 클릭해서 눈요기하고, 주변 남자 동료들이랑 야한 농담 몇 마디 주고 받으면 그뿐이다. 거래처 사장이 카톡으로 야동 보내주면 신나게 보고, 또 친한 후배에게 공유해주면 된다. 괜히 골치 아프게 그런 걸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키보드 배틀 벌이고 뭐 할 필요도 없다"

위의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혐오표현을 가장 많이 접하는 경로가 인터넷이고, 그런 온라인 경로 중에서도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 SNS가 거의 80%를 차지한다. 이걸 바꿔 말하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사회생활 공간에서는 혐오표현을 그다지 많이 접하지 않는다는 건데, 과연 오프라인 일상공간에서는 정말 혐오표현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럴까?

그보다는 온라인에서 익명성에 기대어 대놓고 혐오표현을 하는 것보다 오프라인에서는 상대적으로 좀 더 조심한다는 의미일 테고, 또 온라인 화면상에서 누군가가 뱉어놓은 혐오표현을 자신이 눈으로 보고 직접 확인할 때와는 달리 오프라인에서는 좀 덜 신경 쓴다는 것일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혐오표현이 고정된 활자로 남겨져 여러 사람이 동시다발적으로 보는 데 비해 오프라인에서는 다양한 수단으로 행해지며 일회성으로 지나가는 각종 표현을 아무래도 좀 덜 예민하게 검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본다면 이런 추론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굳이 이런 온라인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혐오표현을 인지하는 빈도를 줄일 수 있다. 이와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혐오와 관련된 왈가왈부에 휘말리는 일 역시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온라인의 정치적 바람과 오프라인의 선거가 일치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온라인에서보다는 오프라인 관계에서 혐오표현이 이슈가 되는 경우가 적을 테고, 운이 좋다면 평상시에는 그냥 신경 끄고 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처럼 방관하는 남성들은 말 그대로,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키보드 배틀 벌이고 뭐 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오프라인에서는 내가 특별히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여성혐오가 어떻고 저떻고 하며 따질 사람도 없을 뿐더러, 설사 주변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고 한들 괜히 귀찮게 내가 관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남자로서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실수만 안 하고 살면 되고, 대충 주위 남성들 틈에서 튀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게 나는 여성혐오 국면에서 '보이지 않는' 한남충이 될 수 있다.

"내가 뭐하러 기득권 내려놓는 걸 스스로 해야 하나?"

나는 별로 관심도 없는 페미니즘인지 뭔지 가지고 맨날 말싸움이나 벌이는 온라인 활동 같은 건 할 생각이 없다. 그저 내 주위 사람들하고 소소하게 카톡이나 하고 내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인터넷만 쓰면 된다. 요즘 먹고 살기도 힘든데 내가 뭐 특별히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고, 평소에 나는 여자들과 별 문제 없이 잘 지내왔으므로 앞으로도 지금처럼 하면 된다. 내가 돈 벌어먹고 사는 데에 딱히 여성들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니, 그런 건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남들 얘기다.

어떤 친구는 여성부 폐지하고 남성 기득권 보호하겠다는 이에게 표를 줄 거라고 말하지만, 난 솔직히 그런 것도 별로 관심 없다. 괜히 여자들이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지만 않으면 되고,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걸 그대로 할 수 있으면 된다. 어머니와 나는 그런 얘기를 아예 하지 않고, 누나들이 나에게 성평등을 요구한 적도 없다. 얼마 전부터 신문에서는 일베니 메갈리안이니 하며 희한한 소리를 자꾸 늘어놓던데, 세상엔 참 별 이상한 년놈들도 많다.

방관하는 한남충으로서 아쉬운 점

인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 방관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99.9%의 사람들은 언제나 방관해 왔을 테고, 긴 역사의 시간 중 짧은 한 순간만 살 수 있는 인간은 그 방관의 찰나가 바로 그가 경험한 인생일 것이다.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이런 말을 했다.

"종교재판에서 건전한 양식과 건전한 균형을 갖춘 사람들의 의견은 '이단자들을 너무 많이 태워 죽여서는 안된다'는 식이었다. 한편, 그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고 상식 밖이라는 평을 받은 사람들의 의견은 '사람을 태워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 <파랑새>의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종교재판이 횡행하던 시대, 건전한 양식과 건전한 균형을 갖춘 사람들은 종교재판을 방관했다. 단지, 너무 많이 태워 죽이지는 말자고 했다. 어쩌면 여성혐오를 바라보는 한남충의 방관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적이고 관행적인 여성혐오에는 무감각하다가, 어떤 여성이 혐오로 인해 너무 큰 피해를 받았을 때만 관심을 보인다. 그나마 이것도 '여성혐오'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범법행위나 윤리적 일탈의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우리 한남충의 '건전한 양식과 건전한 균형'이 과연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는 물론이고, 법과 제도도 함께 변해야 한다. OECD 국가들 중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심하게 벌어진 게 벌써 10년도 훨씬 더 넘었는데, 왜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는 한국의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최근 있었던 몇몇 사건들과 같이) 일개 기업이나 개인을 공격할 때보다 더 격렬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성별 임금격차 해소가 근원적으로는 훨씬 더 중요한 사안 아닌가?

어떻게 보면, 한국 페미니스트들의 '화력'은 어느 한 개인이나 기업을 악마화해서 단기간에 무력화시키는 데에만 지나치게 특화된 것 같다. 도대체 왜 한국의 페미니즘은 오래 걸리고 복잡하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문제들보다, 오히려 그냥 몇몇 단편적 사건에서 감정적으로 폭발하며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에 더 몰두하는가? 이상하게 요즘 여성운동은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혹시 냄비근성의 페미니즘 버전인가?

이런 식으로는 절대 우리처럼 방관하는 한남충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 그냥 일회성 이벤트처럼 어느 한 대상을 공격하는 데에만 집중한다면, 방관자들은 더욱 더 몸을 숨기고 아예 이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다. 어떤 대상이 여성혐오적인 행태를 보일 때, 이건 그 대상만이 가진 문제가 아니다. 그 뒤에는 언제나 이를 가능하게 만든 문화와 관행,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 방관자들은 여기에 기대서 편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서 공격하고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에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너무 소홀한 듯하다.

그저 한 회사나 유명인을 향해 "불편하니까 사과하고 하차해라"고 하는 데에만 불같이 일어나기보다는, 출산휴가나 생리대 문제를 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되지 않나? 도대체 이게 언제적부터 나온 얘기인데, 아직까지도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만약 성별 임금격차 해소, 동등한 출산휴가 보장, 생리대 무상지원 등과 같이 근원적인 변화를 위해 대한민국 여성들이 총파업을 한다면 나도 적극 지지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라인에서 전혀 모르는 남자들하고만 맨날 싸우지 말고, 평소에 주변 남자들(아버지, 남편, 오빠, 남동생, 친구, 직장동료 등등)과 성평등에 관한 얘기를 좀 자주 하길 바란다.

아서정 블로그 : arthurjung.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