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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남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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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DER INEQU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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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요즘 여성혐오 문제로 인해 정의당 탈당사태에 이어, 시사인 절독사태가 벌어지고 있다(시사인의 헤드라인이 바로 '분노한 남자들'이었다). 정의당이든 시사인이든 또 그외 어떤 집단이든, 이들은 직접적인 성평등 관련 단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 논란의 유탄을 피할 수 없었다. 아마 정의당과 시사인 관계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이다.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닌데,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 중에는 이쪽 편이냐 저쪽 편이냐를 따져 물으며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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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467회 표지. ⓒ시사인]

내가 처음 여성혐오에 관한 글을 블로그에 쓴 날은 2012년 10월 17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성혐오 문제가 지금처럼 크게 논란의 중심에 있지 않았고, 나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쓴 첫 글이라 미숙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벌써 이때부터 굉장히 많은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거의 4년이 다 되어 가는 이 글에는 최근까지도 댓글이 올라온다.

그냥 일반 시민의 개인블로그에 올라온 글에도 이 정도로 댓글이 달릴 정도였으니(너무 심한 욕설만 있어서 삭제한 댓글도 있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한 100개 이상 올라왔다), 이 문제는 그동안 계속 현재진행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크게 이슈가 안 됐을 뿐이지 항상 잠재해 있는 문제였고, 어쩌면 정의당이나 시사인 사태도 언제고 한 번은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에서야 각종 논란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지만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셈이다.

아무튼 한국에서 남성이 성평등 관련글을 쓰면, 반응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눠진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일단 같은 남성들로부터 욕을 먹는다. "김치녀들이 문제인데 너는 왜 이런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냐?"는 것인데, 사실 이런 얘기는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기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변화에는 언제나 진통이 따르고, 이 남성들이 딱히 나빠서라기보다는 그냥 원래 해오던 대로 할 뿐이니까.

두 번째로는 여성들로부터도 비판을 받는다. 조심해서 신중하게 글을 썼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성차별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으므로 글에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여성들은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너도 결국 어쩔 수 없는 한남충이다!"라고 말한다. 나름 애쓰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면 반발심도 생기고 야속한 기분도 들지만,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잠깐 이쯤에서 나에 대해 말하자면, 한국에서 태어나 이제까지 계속 이 나라에서 살아온 평범한 30대 남성이다. 흔히 말하는 장손이며, 위로 누나가 둘 있고, 어머니께서는 항상 "너는 누나들과 다르다"고 말씀하셨다. 30년도 훨씬 전에 경상도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전부 경상도에서 보냈으며, 경상도를 벗어나고 1년 뒤에는 곧장 군대를 다녀왔다. 육군으로 현역 만기제대를 했으며, 그 이후로 대부분의 시간은 서울에서 보냈다. 한마디로, 그냥 어딜가나 볼 수 있는 보통의 한남충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물에 콩 나듯 "이런 글을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부족한 게 많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니 그 부분은 그래도 좀 인정해줄 만하다 정도의 의미일 텐데, 욕하는 첫 번째 남성들과 비판하는 두 번째 여성들에 비해 소수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들도 있기에 여성혐오 관련글을 2012년 이후에도 몇 번 써서 각종 매체에 올리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양쪽에서 욕을 먹는 회색분자쯤 되는 것 같다.

젊은 남성들이 분노하는 이유

어떤 사회문제에 관해서건, 한국에서 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어느 대학교수나 연구원 직함을 달고 있는 전문가들, 또 소위 논객이라고 불리는 지식인들, 아니면 흔히 말하는 셀러브리티가 그들이다. 언론의 각종 칼럼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렇고, 이런 유명인들은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시쳇말로 '잘난 사람들'인데, 한국에서는 이들의 목소리가 마치 절대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호도되는 경우도 많다.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는 풍경도 달라진다고,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들의 목소리는 묻히기도 쉬운 셈이다. 이는 여성혐오 논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유명인들은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더 나은 환경과 상황에 있을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각 유명인들 한 명 한 명의 실체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보통 평균 수준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현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어떤 사회든 오로지 잘난 사람들의 목소리만 부각되는 건 충분히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는 좀 더 못한 사람들이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명확히 공유되지 않고, 실제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 99.9%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 전부 다 평범한 사람들인데, 과연 유명인들의 목소리만 들어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이 글을 쓴다. 너무 잘난 사람들의 얘기만 들리는 것 같아서. 나처럼 못난 사람도 있다는 걸 누군가는 말해야 될 것 같아서.

창피하고 부끄럽지만, 젊은 남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나의 진짜 현실을 여기서 실토한다. 내 얘기를 들으면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겠지만, 그래도 분명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니 지나치게 업신여기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나도 내가 얼마나 못난놈인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굳이 직접적으로 상처를 주진 않아도 된다. 혹시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조용히 뒤로가기를 눌러주길..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평범한 30대 남성이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최근 몇 달 간 여자와 단 둘이 만나서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이건 단순히 '썸'이니 '연애'니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아예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냥 편하게 "몇 달"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몇 년일 수도 있고 몇 주일 수도 있다.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살고 있는 한국남자들이 적지 않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인구 구성비로도 분명히 확인되는데(성비불균형),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는 젊은 남성들이 젊은 여성들보다 훨씬 수가 많다(적게는 10%에서 많게는 20%까지 남성이 더 많다). 아무리 저출산 문제가 어떻고 결혼율 감소가 어떻고 해봐야, 근본적으로 남성들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솔로일 수밖에 없는 남성들은 존재한다. 일처다부제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일부 남성들은 끝까지 혼자 살 것이다. 몇 년이든 몇 달이든 몇 주든, 아예 여자를 만나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한 젊은 남성들이 적지 않다는 걸 우선 인정해야 한다. 이게 첫걸음이다.

그 다음엔, 이런 남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좀 살펴봐야 한다. 이들이 태어났을 때, 그 당시는 남아선호사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젊은 여성보다 젊은 남성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게 이들의 책임은 아니다. 이들은 그냥 한국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바로 이즈음부터 성평등 의식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금 젊은 남성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여학생들이 더 뛰어난 경우도 많았다. 학년 대표를 여성이 맡고, 성적 1등도 여성, 대내외 활동이 활발한 것도 여성일 때가 많았다는 말이다.

요즘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난 10~20년 동안 어떤 분야에서건 여성이 1등을 하는 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닌 게 됐다. 그리고 어찌됐든, 지금 중장년층보다는 그래도 젊은 남성들이 단 1%라도 더 성평등 의식이 나은 편일 것이다. 대놓고 성차별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놈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든 물어보면 대부분 평등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물론, 아직도 부족한 게 참 많다).

아무튼 이렇게 살아왔는데, 근래에 여성혐오 이슈가 부각되면서 이들을 다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평소에 여성과 사적인 만남을 아예 가지지도 못하며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여성혐오니 한남충이니 하며 이들을 압박한다. 여성혐오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도 별로 없고, 한남충 짓을 할 생각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네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다. 무신경과 무관심도 잘못이긴 하지만, 그래도 소외된 젊은 남성 입장에서는 좀 섭섭할 만하다.

신체건강한 젊은 남성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여성과 만나서 따뜻한 대화를 좀 나눠보는 게 인생의 작은 소망인데, 내가 직접 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한다. 나는 지금 여성을 만난다면 정말 잘해줄 자신이 있는데, 그런 건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너의 잘못을 사과하란다. 안 그래도 여자친구 있는 녀석들한테 질투가 나는데, 데이트폭력이 어떻고 저떻고 하며 한남충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결국, 이렇게 엉뚱한 대화가 오간다.

"나는 여자 좋아하는데, 내가 왜 여성혐오야?"

"여성혐오는 그런 게 아니라 학문적 개념이야. 넌 그런 것도 모르고 이제까지 편하게 살아왔지?"

"........."

여자친구가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될 놈들이 데이트폭력을 저질러서 나도 화가 나는데, 너도 똑같은 놈이라고 그런다. 이건 여성혐오의 학문적 개념을 설명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차원이고, 이성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부분이다. 물론 이런 평범한 남성들이 무조건 잘못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야 약간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문제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고 어쨌든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여성혐오를 따져 물으며 선택을 강요하는 게 그리 좋은 방법인 것 같지는 않다.

한남충으로서 아쉬운 점

지난 몇 달 간 여자와 단 둘이 만나서 사적인 대화도 한번 나눠보지 못한 내 얘기가 잘난 사람들에게는 그저 비웃음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나같은 젊은 남성들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그들에게는 그저 "여성혐오를 타파하고, 성평등을 이룩해야 한다!"라고 언론의 칼럼이나 방송 매체를 통해 계속해서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 테니까. 단지 일부 못난놈들의 투정일 뿐, 대의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진영에서도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대부분 무슨 교수나 여성단체 대표쯤 되는 사람들이니, 이렇게 찌질한 놈들의 처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을 테니까. 사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의 여성운동은 (다른 시민운동과 마찬가지로) 일부 명망가 중심으로 또 꽤나 현학적이고 이론 중심적으로 발달해 온 측면도 있지 않은가?

매번 "여성혐오는 학문적 개념이다"라고 말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그럼 과연 '낙수이론'은 학문적 개념이 아닌가 라고 묻고 싶다. 학문적 개념이라는 것 자체가 무슨 진리의 표식도 아닌데, 왜 자꾸 여성혐오는 학문적 개념이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대학진학률이 80%를 넘은 지도 상당한 세월이 지난 듯한데, 누가 그런 걸 읽을 줄 몰라서 이렇게 우리 사회의 성평등 문제가 혐오의 악순환에 빠진 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한남충으로서 좀 아쉽다. 무려 2,500여 년 전부터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위태로워지지 않는다'고 그랬는데, 21세기에 한국에서 한남충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별로 알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잘못을 지적할 줄만 알았지, 현재 우리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평소에 여자와 만나서 대화 한마디 나눠볼 기회도 없는 이에게 데이트폭력의 가해자 프레임을 들이댄다. 진정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그 이전에 도대체 이들이 여성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 것 아닐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출산 연령대의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우선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성혐오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연 여성혐오를 갖고 있는 남성들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일단 그러고 나서 사회 전반적인 학습이나 정책도입, 예산지원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현실 파악도 없이 무턱대고 80조 원을 투입해봐야 출산율이 높아질 턱이 없다. 지피지기도 없이 그저 여성혐오를 타파해야 한다고 말로만 떠들어봤자 별로 나아지는 건 없을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도 없이, 그냥 학문적 개념이나 이론을 들이대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나? 여성학을 배워서 알고 있는 것과 사회를 바꾸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여성혐오와 관련해서 각종 매체에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나처럼 못난 사람의 실태에 대해서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도 분명이 나같은 남성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데, 맨날 판에 박힌 얘기만 반복하는 게 과연 여성혐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여자든 남자든 이 세상 그 누구든,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변화는 불가능하다.

- 내가 한남충이다 2 | 우리는 왜 방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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