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다시 불러낸 조명균·천해성 통일부 장·차관의 화려한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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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은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첫 번째 결실로 꼽을 만 하다.

대북라인이 붕괴되고 냉랭한 기운이 흘렀던 이명박 정부나 '통일대박'이라는 근거없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던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특히 이날 누구보다 감회가 새로웠을 두 사람이 있다. 바로 남측 대표단을 이끈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다.

통일부 정통 관료 출신인 두 사람은 과거 대북 정책 실무를 맡았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지는 동안 '외풍'에 시달렸고 결국 통일부를 떠나야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이 천해성 차관을 임명했을 당시 나온 기사 중 일부다. 조명균 장관은 아직 '야인'이던 시점이다.

전직 통일부 관료 가운데 소위 ‘불운의 선수’로 꼽히는 세 사람이 있다.

천해성·고경빈 전 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교류협력국장을 말한다. 이들은 다양한 남북 회담 경험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통일부를 오가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직접 참여했던 인물들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외풍에 흔들려 통일부를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 전 실장과 조 전 국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서면서 옷을 벗었고, 천 전 실장은 박근혜정부까지 현직을 유지했지만 가시방석이었다. (중앙일보 2017년 6월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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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3년 6월10일, 당시 남북실무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맡은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이 판문점에서 열렸던 당국회담 실무접촉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는 모습.

천해성 차관은 "통일부 최고의 정책통"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는 참여정부 때이던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정책담당관으로 일했고, 통일부로 복귀한 후에는 남북회담본부 회담기획부장, 남북회담본부장, 정책실장 등 요직을 맡았다.

천 차관은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다수의 남북회담에 깊이 관여했다. 특히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폐막식날 북한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왔을 때 남측 대표의 일원으로 이들을 만났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능력을 인정 받았다. 2013년 6월 남북 장관급회담을 위한 판문점 접촉에 '긴급 투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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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9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실무접촉에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한 천해성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의 모습. 왼쪽은 북측 수석대표인 김성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

그러나 2014년 2월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에 내정된 지 일주일도 안 돼 돌연 내정이 취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이 사건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이후 그는 2016년 7월 행정고시 후배가 통일부 차관에 임명되자 통일부를 떠났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화려하게 복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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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균 장관의 복귀는 더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조 장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두루 거치며 현장에서 대북 실무 업무를 집행한 핵심 관료였다.

그는 2001년부터 통일부 교류협력국장,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정책조정부장, 개성공단 사업지원단장 등을 거쳤다. 2002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파견한 임동원 특사(청와대 외교안보통일특보)와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청와대의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대북 정책의 고위급 실무를 도맡았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실제로는 장관인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2007년 10·4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초안을 다듬었으며, 정상회담 당시에는 기록자로 배석해 대화록을 작성했다. 이 회담이 실시되기 전인 8월에는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과 함께 육로로 평양을 방문해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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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4일,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모습. 조명균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이 노무현 대통령 뒤쪽에 앉아 회담 내용을 녹음·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력 때문인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보직을 받지 못하고 '교육대기' 상태로 머물렀다. 결국 그는 2008년 10월 사표를 내고 통일부를 떠난 뒤 외부활동을 하지 않은 채 종교 활동(천주교), 봉사활동 등에 매진하며 9년 동안 '야인' 생활을 했다.

그랬던 그를 다시 불러낸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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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지난해 6월 조 장관 내정을 발표하며 남북회담 및 대북전략에 정통한 관료 출신으로 새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문제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정책기획부터 교류, 협상까지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가진 정책통"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흠 잡을 데 없는 도덕성을 갖췄다'는 여야 의원들의 칭찬을 들으며 무난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제39대 통일부 장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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