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나는 대통령에게 양날의 칼...곁에 두면 편하나 시스템 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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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권에나 대통령의 최측근인 실세가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는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이 있게 만든 사람이다. 단지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좌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 문재인을 ‘기획’했다. 책(<문재인의 운명> 2011년) 쓰기라는 우회적인 경로를 만들어 한사코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끌어낸 뒤, 결국 호랑이 등에 태웠다. 2012년 총선과 대선, 2015년 민주당 당대표 선거, 2017년 대선에 이르기까지 일등 참모이자 “동지”(문 대통령의 표현)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문 대통령 취임 며칠 뒤인 지난해 5월16일 돌연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권력의 곁을 떠났다. 당시 그가 남긴 작별편지엔 문 대통령에게 덧씌워진 ‘친노 프레임’을 벗겨주고 싶은 바람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지금도 8개월째 홀로 뉴질랜드와 일본, 미국 등 외국을 떠돌고 있다. 언론으로는 처음 <한겨레>가 ‘백의종군 양정철’을 지난 연말 도쿄의 아파트에서 직접 만나 1박2일간 이야기를 나눴다.

문재인 정권 출범까지 최고 실세였던 양정철(53)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책을 썼다는 소식을 듣고는 지난달 25일 무조건 일본 도쿄로 갔다.

그의 지인 몇명으로부터 대략 파악한 메구로구의 한적한 주택가에 도착해서 연락을 취했다. 성탄절 연휴를 맞아 한국에서 건너온 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책 얘기나 하자. 만날 때까지 도쿄에 있겠다”고 답했다. 부인이 귀국한 뒤인 이튿날(26일) 오전 “어딨냐”며 그가 연락해 왔다. 그날 오후 그의 집에서 마주 앉았다.

권력으로부터 멀어진 뒤 8개월 만의 첫 심경 토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백의종군을 선언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처음에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사는 작은형 집에 갔다. 거기서 머물다가 두달 전 일본 도쿄로 거처를 옮겼다. “아무리 형제지간이라도 독립된 성인이 같이 오래 생활할 수는 없지 않으냐.” 그는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엔 책을 쓰기 위해 왔다고 했다. 지인에게 부탁해서 구했다는 거처는 한국인이 적은 조용한 주택가에 있었다. 10층짜리 아파트 그의 집은 작은방 두개와 거실이 있는, 일본에서는 꽤 큰 축에 속한다. “가끔 서울의 가족들이 나를 만나러 와서 방 두개짜리를 구했다. 미리 받은 책 계약금 등으로 두달만 빌렸다”고 말했다.

―벌써 외국에서 머문 지 7개월이 넘었다. 여기 계약이 곧 끝나는 것으로 안다. 귀국 안 하나?
“원래는 책을 다 쓰면 12월 말에 귀국하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 가기가 겁난다. 책 쓰기 위해 두달간 계약했던 기한이 곧 끝나 일단 미국에 있는 지인한테 가려고 한다.”

그는 어머니께 인사하러 연말에 잠시 귀국했다가 방학을 맞은 부인(고교 교사)과 함께 4일 미국으로 다시 출국했다.

―귀국이 왜 겁나나?
“오래 정치를 한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가까운 측근이 적은 편이다. 게다가 그분은 측근이나 가신 그룹을 두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나마 오래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 나랑 이호철 선배, 전해철, 김경수 의원,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정도다. 그러다 보니 내 동선이나 움직임이 주목을 받고, 뭘 해도 기사가 되니까 부담스럽고 힘들다. 이것도 팔자라고 여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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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 비행기들을 보고 있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저들은 어디서 왜 오는 걸까,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냐고 말이다.” 지난 12월26일 일본 도쿄 메구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한겨레>와 만난 양정철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기획비서관이 인터뷰 도중 잠시 담배를 피우러 거실 앞 베란다로 나가 하네다 공항 쪽을 바라보고 있다. 도쿄에서 두달간 머물며 책을 집필한 그는 “당분간은 정처없는 유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말했다.

“양비가 먹튀 했다”고 욕먹어

이 대목에서 그는 ‘어차피 언론을 만났으니 자신의 얘기를 먼저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16일 기자들에게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남기고 문재인 대통령 곁을 스스로 떠난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했다.

“지난번에 작별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난 것을 언론이나 국민이 과분하게 평가해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나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12년 대선이 끝나고 문 대통령과 소주 한잔 하면서 다시 대선 도전을 해야 한다, 집권을 위해서는 다 바꿔야 하고 그중에 특히 사람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집권을 하더라도 국정운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래 모셨던 사람들이 곁을 내줘서 새 사람들이 끊임없이 수혈될 수 있는 인적 구조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다.

두번째는 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부터 공격받고 시달렸던 ‘친노 패권’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동안 비선그룹이네 3철(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전해철·이호철·양정철 등 3명을 일컫는 말)이네 하면서 정치 경험이 없는 문 대통령이 핵심 참모에게 휘둘린다느니 어떤 결정을 누가 하는지 모르겠다느니 하는 공격을 받아왔다. 허구의 프레임이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 프레임과 대선 부채로부터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봤다.

또 하나의 이유는 대통령과 가깝고 특별하게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는 내가 비록 덜 중요하고 덜 높은 자리를 맡아도 결국은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부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왕수석이나 왕비서관, 왕차관 등 그런 경우가 얼마나 많았나. 이번만큼은 그것을 차단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백의종군은 오래된 약속이자 대통령을 편하게 해드리려는 결단이었다는 뜻인데, 양 전 비서관의 청와대 입성을 문 대통령이 부담스러워했다는 일부 보도도 있었다.
“그건 웃기는 얘기다. 자세하게 얘기하는 것은 결례여서 말을 하지 못하지만, 문 대통령께서는 나에게 정부와 청와대의 자리 서너군데를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해도 논란의 중심에 있게 되고, 그건 대통령께 부담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간곡하게 사양했다. 문 대통령을 오래 모신 몇사람들이 대선 때 서로 약속한 게 있다. 대통령의 운신 폭을 넓혀드리기 위해 참여정부 청와대에 있었던 사람은 그때 직급 이상으로는 가지 않기로 했다. 나랑 몇사람은 얼씬도 하지 말자고 했다. 7~8명이 얘기했는데, 단 한 명도 이의가 없었다.”

―왜 그런 약속을 했나?
“역대 대통령들이 맞은 집권 후반기의 위기는 대통령 본인의 실책이나 귀책보다는 주로 측근이나 친인척의 실수 때문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의 가족이나 친인척들은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만한 분들이 한 명도 없다. 결국 남는 요인은 측근들이다. 그런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웃음) 농담이고, 성공하는 대통령과 정부로 남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분수와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가깝다고 해서 세도를 부리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대통령이 곤란한 상황을 겪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절박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내가 빠져 있는 것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

―심청의 심정으로 다른 측근들에게 ‘너희들도 꼼짝 마’라고 하고 있는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어쨌든 어떤 분은 양비(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의 약칭)가 먹튀 한 것 아니냐고 한다. 도와달라고 해놓고 자기는 튀어버렸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청구서를 내지 말라는 얘기냐고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양 전 비서관은 백의종군의 뜻을 밝히기 전날인 지난해 5월15일 저녁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김경수 의원만이 함께 자리를 했다. 문 대통령은 양비의 얘기를 듣고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얼마 전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더 모질게 권력과 거리를 둘 것”이라고 했는데 앞으로 계획은 뭔가?
“(한숨) 답이 없고, 답을 안 가지려고 한다. 지금 현재 이렇게 사는 방식을 내가 자청을 한 것이고, 그랬으면 이 상황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지금이든 다음 기회이든 청와대든 내각이든 들어갈 상황이 아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내가 떠날 때 가졌던 원칙은 똑같다. 공직으로 가는 건 꿈꾸거나 계획하거나 기대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 남는 것은 정치를 하는 일인데, 당에서 나를 아끼고 걱정해주는 중진 또는 선배 의원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조차 출마할 생각이 별로 없다. 체질에 안 맞는 것 같다.”

―21대 총선(2020년)에도 안 나간다?
“그렇다. 이번 지방선거도 안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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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외국어대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자민투) 위원장 시절 교내집회에서 두루마기 한복 차림으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비행기 보며 “다음엔 또 어디 가나” 한숨

―정권이 어려워지면 공직은 불려갈 수도 있지 않나?
“그런 특별한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몇개 학교에서 교수 제의가 있었지만,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것 같아서 거절했다. 당분간은 정처없는 유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5년 동안 이렇게 떠돌면서 살 건가?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의 과분한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권력의 정점에서 후회 없이 일해봤다. 그래서인지 청와대나 내각에 가서 어떤 일을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별로 없다. 특히 노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모든 게 싫어지면서 근원적 회의가 오더라. 조로한 느낌이 든다.”

―특별히 죄지은 것도 아닌데 외국에 떠돌 필요는 없지 않나?
“나도 권력과 거리 두는 것은 좋은데 언제까지 외국에서 떠돌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끔 회의도 든다. 자청한 일이지만 이제 힘들어지기도 하고,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어지는 등 외로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 들어가자니 문 대통령 선거를 도왔던 그 많은 사람들이 걸어올 전화와 만남 요청이 두렵다.”

인터뷰 도중 그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거실 앞 베란다로 나갔다. 멀리 하네다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보였다. “여기서 저 비행기들을 보고 있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저들은 어디서 왜 오는 걸까, 나는 또 어디로 가야 하냐고 말이다.”

물을 찾으러 들어간 부엌에서 그의 외로움을 목격했다. 냉장고에는 물병과 먹다 남은 작은 플라스틱 김치통 하나만 달랑 있었다. 옆 선반에는 한국산 라면과 자장면 서너 봉지가 놓여 있었다. 그는 “햇반과 반찬을 그때그때 사다 먹기도 하고, 라면도 끓여 먹는다”며 멋쩍게 웃었다.

―곧 언어 민주주의에 관한 책(출판사 메디치미디어)이 나온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운 것이 많고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썼지만,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자면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썼다. 민주주의의 완성은 정치와 행정, 시스템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의식과 문화가 같이 바뀌어야 이뤄진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가치나 그들의 진면목을 많이 알리는 한편 책임있는 시민으로서 공론의 장에서 적극적인 응원자로 일하고 싶었다.”

―책의 주요 내용이 공존과 배려, 상생 이런 것이라고 들었는데 맞나? 기존의 투사나 싸움꾼 양정철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참여정부 때 언론 주목을 받았던 몇가지 이슈에서 내 역할에 거품이나 안개 같은 부분이 있다. 하여튼 참여정부가 당시 여론이나 정치권으로부터 과도한 공격과 비판을 받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강하게 대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하면 공직자로서 현명한 대응이나 처신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나 야당 의원에게 거친 말과 공격적 언사를 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앞으로도 저는 그런 방식이 우리의 컬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생각이 바뀐 건가?
“청와대에 5년 있으면서 많이 바뀌었다. 청와대 근무하면서 국가와 정부라고 하는 건 너무도 책임이 막중하고 국민 삶에 무겁고 중한 존재이기에 이념과 당파와 진영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걸 절감했다. 본인 지지자들에 의해 대통령이 됐지만 되고 나서는 지지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끌고 가는 국가 지도자가 대통령이다. 따라서 지난 역사에 대해서도 분열하고 대결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서로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보수-진보의 틀에서 이제 빠져나가야 한다. 문 대통령도 지금의 적폐 청산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마무리가 되면 통합의 정치, 미래 지향의 정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여러 선택들을 하시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문 대통령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이면서 실용적 합리주의자다.”

―문 대통령이 선거 때 협치를 강조했지만, 지금은 그런 게 별로 안 보이는 것도 같다.
“인적 협력이든 연대 등 정치 지형상 협력이든 인위적으로 할 때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라온다. 지금은 더구나 부패나 부정을 단호하게 진상 규명하고 사법적 처벌을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드는 게 급선무다. 따라서 지금은 야당과 대화하고 경청하면서 정책적으로 함께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본다. 내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대통령이나 청와대에서 일하는 분들한테 결례되고 민감한 일이라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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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뒤인 2008년 경남 김해 봉하마을 집 앞에서 자신을 찾아온 지지자들에게 모자를 들어 인사하고 있다. 뒤편이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청와대 필독서였던 양비의 보고서

양 전 비서관은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을 있게 한 주역이다. 결코 정치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떠밀어 마침내 호랑이 등에 태운 게 그다. 첫출발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 출간이었다. 이 책은 결국 문재인의 운명을 바꿨다. 2012년 19대 총선 때 부산(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이어 그해 대선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책 쓰라고 권유할 때부터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그랬을 텐데, 어떤 점에서 대선주자로 내세우려 했나?
“나는 어떤 안목을 가지고 이분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했던 그런 킹메이커가 아니다. 그때 책 쓰기를 권유했던 몇사람은 당연히 마음속에 이분이 정치에 한발 들어서면 좋겠고, 나아가 2012년 대선 때 유력한 희망으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김대중 정신과 노무현 정신을 오롯이 안고 있는 분 가운데 국민이 볼 때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문 대통령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분은 정말 나서고 싶어하지 않아서 공적 영역으로 부담 없이 발을 딛는 통로로 책 쓰기를 여러 사람이 권했다.”

―책을 쓴 뒤 정치권 입문은 순조로웠나?
“전혀 아니다. 책을 썼으니 더는 안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상상 이상의 반향이 일었다. 우리는 독자에 대한 예의론을 펴면서 딱 한 곳 서울에서만 북콘서트를 열자고 설득해서 겨우 승낙을 받아냈다.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이후 부산, 광주, 대전 등 결국 전국을 다 돌아야 했다. 그 후에는 시민사회의 야권통합 운동 참여와 자신의 총선 출마를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총선 때는 저분한테 저런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다. 내면의 무서운 절제력에 가려져 있는 정치적 근육과 저력, 집요함을 봤다. 총선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몇몇 가까운 참모들을 불러서 (대선을) 준비하자고 하더라. 그렇게 해서 대장정이 시작됐다.”

―지난해 대선 때는 문 대통령 스스로 호랑이 등에 올라탔던 것 같던데.
“호랑이를 몰고 간 거라고 할 수 있다. 그 준비를 2012년 대선 패배한 몇달 뒤부터 했다. 처절한 고백록이자 뼈아픈 반성문인 <1219 끝이 시작이다>가 그것이다. 2012년에 했던 중요한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태도까지 되돌아보고 성찰했다. 앞으로 문 대통령이 어디로 갈지를 알고 싶다면 그 책을 봐야 한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2002년 노무현 대선 후보의 언론보좌역을 맡으면서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언론노보 기자 시절(1989~94)부터 알고 지냈던 유종필 등 노 후보 참모들의 요청이 있었던데다 그도 마침 쉬고 있을 때였다.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졌을 때라 쉽지 않다고 봤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자기 당 후보를 흔드는 모습을 보고는 정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무조건 돕기로 했다”고 그는 말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때 홍보수석실의 행정관으로 들어간 그는 2003년 12월 39살의 최연소 비서관으로 승진하는 등 5년 동안 실세 비서관으로 일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해 만든 언론 분석 보고서는 대통령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의 필독서였다. 언론 보도를 요약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주요 이슈의 예상되는 흐름 및 대응 방안 등 정무적 판단까지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은 2008년 겨울 그와 윤태영 전 비서관을 봉하마을로 불러 서거 전까지 책 쓰기 등의 작업을 함께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김종인, 김광두, 조응천 등 한때 박근혜를 도왔던 사람들까지 영입했다. 양 전 비서관이 다 기획했다고 하던데?
“큰 방향은 문 대통령 생각이었다. 2012년 대선을 복기해 보니까 응당 우리가 장점으로 선점해야 할 것을 저쪽이 갖도록 방관했거나 빼앗겼더라. 하나는 안보 문제이고, 둘째는 애국이라는 가치, 셋째는 경제에 대한 유능함이었다. 그런 것은 공약을 내놓는다고 사람들이 절대로 안 믿는다. 사람으로 보여줘야 한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의 주문으로 총선 6개월 전부터 영입 1호부터 마지막까지 40명 정도를 영입했다. 40명을 영입하려면 400명을 접촉해야 하고, 최소한 800명의 리스트가 필요하다. 이름 들으면 알 만한 분들은 내가 맡고, 파격적인 인물 발탁은 최재성 전 의원이 맡았다. 그때 폭탄주 수백잔을 마셨다.(웃음)”

―조응천 의원이 야인 시절 운영하던 가게에 먼저 가서 길을 닦기도 했다는데.
“10번도 넘게 갔다. 처음에는 누군지 밝히지 않은 채 손님으로 가서 천천히 얼굴부터 익혔다. 조 의원 본인으로서도 인생의 중요한 결정인데 결단이 쉬웠겠나.”

―지난 대선 때 이른바 광흥창팀(서울 서강대교 인근 광흥창역 주변의 사무실에서 따온 이름)에서 일을 많이 했더라. 그 팀을 이끈 게 본인이었고.
“언론이 붙인 이름이다. 문 대통령이 당대표를 물러나신 뒤 대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워킹그룹이 필요했다. 후보의 일정과 정책, 메시지, 무엇보다 조직을 체계적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하나하나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됐다. 비선이나 언더 그룹이 아니라 일찍 공개되면 벌써부터 대선 준비 하느냐는 견제를 받을까봐 쉬쉬했던 것뿐이다. 실무적으로 중요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원탁회의나 팀은 아니었다. 체계를 갖춘 다음에 임종석 실장이 책임자로 와서 팀을 안정되게 잘 이끌어줬다. 나는 임 실장이 오고 나서 그를 백업하고 거드는 역할을 했다.”

the 문재인 대통령이 야인 시절인 2011년 <문재인의 운명> 책을 낸 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맨 왼쪽)의 사회로 북콘서트를 열고 있다.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왼쪽 둘째)와 시인 안도현(왼쪽 넷째), 배우 문성근(맨 오른쪽)씨의 모습도 보인다.

“임 실장과는 가끔 폭탄주 대화”

그는 1964년 서울에서 출생한 전형적인 586세대(50대의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다. 그러나 동년배들이 대부분 대학에 가서 사회에 눈을 뜬 데 비해 그는 고교(우신고) 때 <전환시대의 논리> 등 사회과학 서적들을 다 읽었다. 국어교사로 있던 김진경(64·참여정부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시인이 이끌던 문예반에서 “의식화됐다”.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국문학과를 원했지만, 부모님의 뜻대로 “밥이 나오는” 법대(한국외국어대)로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학생운동에 투신해, 학보사 편집장과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회장, 외대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자민투) 위원장 등을 맡았다. 1987년 6월 항쟁 시위로 이듬해 구속돼 1년간 옥살이를 했고, 감옥에서 나온 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거쳐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에서 언론노보 기자 생활을 1994년까지 했다. 그 뒤 나산그룹, 한보그룹, 스카이라이프 등 기업에 몸담기도 했다.

―최근 임종석 실장과 갈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임 실장을 중심으로 하는 청와대 신주류와 양 전 비서관을 주축으로 하는 구주류 간의 대립설도 있고.
“전혀 아니다. 나로서는 임 실장이 후배지만 굉장히 고마운 사람이다. 인적 외연을 넓히는 과정에서 임 실장에게 같이하자고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다. 그는 당시 대선캠프에 와서 일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였는데 기꺼이 와서 정말 열심히 해줬다. 다른 청와대 수석이나 실장에 비하면 나이가 어리지만 오랜 정치 경험과 여러번의 아픔을 겪으면서 키운 포용력으로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에서 잘해주고 있다. 나로서는 업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자꾸 왜 그런 얘기가 나오나?
“갈등설이 청와대 안에서 나온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 본인의 정치적 진로나 대가가 성에 차지 않는 사람들이 ‘양비가 가야 나도 풀리는데’라는 생각에서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다. 내가 한국에 한번씩 조용하게 들어가면 다른 이는 안 만나도 임 실장과는 둘이 만나서 폭탄주도 마시면서 서로 속에 품고 있는 얘기를 하는 사이다.”

―문 대통령과 연락은 자주 하나?
“부담을 드릴 수 있으니 직접 통화는 하지 않는다. 간접적으로 가끔 안부를 물어 오신다.”

―문 대통령이 현재 상황에 대해 가장 마음 아파하는 것 아니냐. 옆에 두고 쓰고 싶어하지 않을까?
“양날의 칼 혹은 양면성이 있다고 본다. 만일 내가 옆에 있다면 대통령이 좀 편하시거나 덜 외로울 수는 있겠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면 시스템을 깰 수가 있다. 그런 문제로 대통령을 성가시게 하거나 신경쓰이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양정철 전 비서관의 2선 퇴진이 정상적이지는 않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의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대통령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사람들이 정권 운영을 책임지고 그 결과에 대해 평가받으면 된다. 핵심 인사가 빠져 있는 것은 책임정치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도 “개헌이나 선거구제 등 현안을 놓고 정권의 누구와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실질적인 책임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반에 측근들이 물러난 것이 인재 풀을 넓히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청와대 팀이 총괄적이고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게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지금은 우리 선택이 맞는다고 본다. 그리고 아무리 대통령과 참모들이 열심히 해도 언론이나 국민 눈에는 좀 부족하다 싶은 게 왜 없겠나. 어쨌든 측근들의 퇴진으로 인해, 측근들이 다 해 먹는다거나 코어(핵심) 그룹이 다 결정한다는 프레임이 정권 초에 논란이 되지 않은 것만 해도 성과라고 본다. 지금 국면에서는 그런 기조가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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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철 전 비서관은 인터뷰 도중 대선 비화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나는 숨은 얘기를 팔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이건 내 원칙과 상충된다”며 제동을 걸곤 했다.

“노무현은 장미꽃, 문재인은 안개꽃”

―정권이 계속 순조롭게만 굴러가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문 대통령과 국민을 믿는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다 해서 역사에 인정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다. 이 시대에 당신이 꼭 해야 할 일에 대해 정확한 우선순위를 갖고 또박또박 일을 하는 대단히 지혜로운 분이다. 내가 본 문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신중함과 노무현 대통령의 돌파력, 김대중 대통령의 정석 바둑과 노무현 대통령의 변칙 바둑 근성을 겸비한 분이다.”

―그런가.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하던 시절 결단력이나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부분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제는 정치를 보는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왔다고 본다. 대통령이 수많은 난제를 탁월한 역량으로 다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야말로 거버넌스형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시스템으로 일을 한다. 청와대 참모 구성을 봐라. 최측근이 한명도 없는데 7개월째 대과 없이 국민 여망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할 일을 하고 있지 않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스타일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노 대통령이 뜨거운 불덩어리 같다면 문 대통령은 안에 뜨거운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굉장히 냉정하다. 꽃으로 비유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강렬한 장미꽃이다. 화려하고 향기도 강하면서 가시도 있다. 어떤 상황이든 당신 생각이 확고하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은 안개꽃 같은 분이다. 더불어서 같이 다른 꽃이 빛나게 하지만 사실은 그 꽃이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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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야인 시절인 2016년 6월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함께 찍은 사진.

그는 인터뷰 도중 대선 비화나 문 대통령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나는 숨은 얘기를 팔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이건 내 원칙과 상충된다”며 제동을 걸곤 했다. 적폐 청산이나 개헌 등 현안에 대한 질문에도 “내가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다.

‘정치할 생각도, 공직을 맡을 의사도 없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의 시선과 촉각이 여전히 ‘청와대’에 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인터뷰가 밤늦게 끝나는 바람에 그는 “이 집에서 자는 첫 외부 손님”이라며 기자에게 빈방을 내줬다. 이튿날 오전 기자가 전철역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는 밖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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