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흰색'뿐인 건 경기장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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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ame biney

마메이 바이니(17). 가나 출신의 열일곱살 흑인 소녀는 올해 미국 겨울스포츠 역사에 새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각) 끝난 미국 쇼트트랙 올림픽대표 선발전 여자 500m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하며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스케이트 종목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바이니의 스승은 1994년 릴레함메르와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김윤미 코치다. 바이니가 ‘검은 탄환’ 샤니 데이비스(35)에 이어 미국 스케이팅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두번째 흑인 선수란 사실은 그동안 ‘부자 나라 백인들의 잔치’로 불려온 겨울올림픽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번개’ 우사인 볼트, ‘테니스 여제’ 서리나 윌리엄스 등 흑인 스포츠 스타는 넘치지만, 유독 겨울올림픽에서만큼은 흑인 선수를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 <쿨 러닝>처럼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서 눈과 얼음을 보기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데 필요한 장비, 시설 등을 이용하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국과 유럽 등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에서도 중산층 이상만이 겨울스포츠의 진입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

그 결과 겨울올림픽의 ‘메달 편중’ 현상은 여름올림픽보다 심각하다. 대한체육회의 ‘겨울올림픽 국가별 메달 현황’ 집계를 보면, 1924년 제1회 샤모니 대회부터 2014년 소치 대회까지 겨울올림픽 90년 동안 나온 금메달 958개 중에 절반이 넘는 485개를 독일(136개), 러시아(136개), 노르웨이(117개), 미국(96개) 등 네 나라가 휩쓸었다. 여기에 캐나다(62개), 오스트리아(59개), 스웨덴(50개), 스위스(50개), 핀란드(42개)까지 상위 9개국이 전체 금메달의 80%에 이르는 748개를 가져갔다. 인종과 종교, 빈부를 뛰어넘는 ‘지구촌 대화합’의 올림픽 정신이 무색해진다. 겨울올림픽이 그동안 ‘반쪽 올림픽’이란 지적을 받아온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평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에게 ‘뉴 호라이즌’(새로운 지평)이란 비전을 제시하며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겨울스포츠의 불모지인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겨울올림픽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과 인프라 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강원도는 2004년부터 겨울스포츠를 접하기 어려운 나라의 청소년들을 초청해 2주간 스키·스노보드·쇼트트랙 수업과 함께 문화체험을 하는 ‘드림 프로그램’을 운영해 2017년까지 13년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83개국에서 1919명이 이 프로그램을 거쳐갔다. 이 가운데 24개국 185명은 국제 겨울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이번 평창올림픽은 드림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결실을 선보이는 첫 무대다. 피겨 종목에 출전하는 줄리안 이(20)는 2009년 드림 프로그램 참가자로, 말레이시아 선수 최초로 겨울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2007년과 2009년 두차례에 걸쳐 드림 프로그램에 참여해 올림피언의 꿈을 키웠던 루마니아의 에밀 임레(21) 역시 쇼트트랙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18 평창’을 계기로 겨울올림픽이 진정한 ‘지구촌 축제’로 거듭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이용식 가톨릭관동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는 “겨울스포츠의 불모지였던 한국이 평창올림픽을 유치한 이후 겨울 종목에 수많은 관심과 지원이 쏟아졌듯 아시아·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올림픽 유치가 겨울스포츠 변방 국가의 참여를 늘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평창에 이어 중국 베이징이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것도 아이오시의 이러한 노력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정희준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는 “평창의 겨울올림픽 유치는 겨울스포츠에 대한 관심보다 사실상 지역개발의 논리가 크게 작용했다”며 “‘저개발 국가 선수가 겨울올림픽에 참가한다’는 식의 홍보는 21세기 들어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는 올림픽을 긍정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1980년대 이후 ‘올림픽 위기론’이 제기되며 국가별 경쟁을 지양하자는 논의도 있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며 “대통령이 직접 나선 만큼 평창대회는 이전 소치와 비교해 잘 치러지겠지만,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제3세계의 겨울스포츠 참여가 확산될 것이란 기대는 현실과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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