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적·불가역적' 위안부 합의 문구, 일본에 되치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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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오태규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합의 검토 TF 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외교부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브리핑실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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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

한국과 일본 정부가 2015년 12월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이하 12·28 합의)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 됐던 문구다.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위원장 오태규·이하 티에프)는 27일 “한국 쪽은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했는데, 합의에서는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티에프의 설명을 종합하면, 문제의 표현은 2015년 1월19일 6차 한-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 때부터 우리 쪽이 먼저 사용했다. 티에프는 검토 보고서에서 “한국 쪽은 기존에 밝힌 것보다 진전된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가 있어야 한다면서, 불가역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각 결정을 거친 총리 사죄 표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외교부가 ‘불가역적’이란 표현을 꺼내든 것은, 일본의 사죄가 ‘공식성’을 가져야 한다는 피해자 단체의 의견을 참고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사죄’를 한 뒤에도 이를 뒤집은 사례가 많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2014년 4월 피해자 단체들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요구서’에서 “범죄 사실과 국가적 책임에 대해 번복할 수 없는 명확한 방식의 공식 인정, 사죄 및 피해자에 대한 법적 배상”을 강조한 바 있다.

티에프는 “일본 쪽은 국장급 협의 초기에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만 말했으나, 한국 쪽이 사죄의 불가역성의 필요성을 언급한 직후인 2015년 2월에 열린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야치 쇼타로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간의 제1차 고위급 협의부터 ‘최종적’ 외에 ‘불가역적’ 해결을 함께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어 2015년 4월 제4차 고위급 협의에서 이러한 일본 쪽 요구가 반영된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 ‘되돌릴 수 없는 사죄’가 ‘되돌릴 수 없는 해결’로 뒤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국내 반발 여론 등을 고려해 이 표현의 삭제가 필요하다는 검토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티에프는 밝혔다.

우리 정부는 더욱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 들어 있는 문장 앞에 ‘일본 정부가 재단 관련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는 표현을 넣자고 먼저 제안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의 전제에 대한 논란을 초래하는 중대한 실책을 범했다.

티에프는 “한국 쪽은 위안부 합의 발표 시점에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이행을 확실히 담보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제안했다”며 하지만 “이 구절은 일본 정부가 재단에 예산을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고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한국 쪽은 협의 과정에서 한국 쪽의 의도를 확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표현을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명확히 표현하면서 ‘법적 책임’ 인정은 해석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선의 합의를 한 것으로, 일본은 ‘위안부’ 제도가 일본의 국가 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12·28 합의의 폐해는 공식 발표 불과 두달여 만인 2016년 2월 일본 정부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를 두고 두 나라가 벌인 외교공방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공문서에서는 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일본 쪽 주장에 외교부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모집·이송의 강제성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하자, 일본 정부는 “12·28 합의 정신과 취지를 훼손할 수 있는 언행을 삼가라”고 반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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