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가 '화유기' 제작 중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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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주부터 말썽이었다. 24일 방송된 '화유기' 2화 방송은 중간에 약 10분 간 두 차례 방송이 지연됐다. 오후 9시 40분이 되자 "60초 후 계속됩니다"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정해진 시간 60초가 지난 후에도 무려 10분이 넘어가도록 남은 방송 분량 대신 자사 프로그램 예고편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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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중단만 문제 된 것도 아니었다. 방송 중 스턴트맨들의 검은색 와이어가 그대로 노출됐으며, 귀신들의 CG 처리는 미흡하게 이뤄졌다. 10시 35분쯤 본방송이 재개됐으나 5분여 지난 후 돌연 "방송사 내부 사정으로 종료합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방송은 그때 종료됐다.

화유기 제작진은 방송 다음 날인 25일 사과했다. "요괴라는 특수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면서,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고자 촬영은 물론 마지막 편집의 디테일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였지만 본의 아니게 방송사고라는 큰 실수로 이어졌다"고 언급했다.

사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방송사고의 원인을 짐작게 할만한 사건이 알려졌다. 지난 23일 새벽 2시, 화유기의 한 스태프가 다음 날 촬영 준비를 하다가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해당 스태프는 크게 다쳤고 현재 입원 치료 중이다.

화유기 제작진 측은 이 사고에 대해서도 다시 사과했다. 첫 번째 사과의 다음 날인 26일, TVN측은 "안타까운 사고로 아픔을 겪고 계신 가족 분들께 가슴 깊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화유기’에 관심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송구한 말씀을 전한다"고 전했다. 이어 "사고 발생 당시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당 스태프 분의 가족 측과 꾸준히 치료 경과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전국언론노동조합은 화유기의 연이은 방송사고와 스태프 사고와 관련해 제작 중지와 사고원인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언론노조는 사고와 관련해 "당사자가 야간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다음날 설치하겠다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설치를 강요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며 "<화유기>의 화면 뒤에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드라마 제작 현장의 악습과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언론노조는 이어 "고용노동부는 즉시 CJ E&M과 JS픽쳐스에 드라마 제작 중지를 명령"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관계당국과 조속히 협의하여 CJ E&M과 JS픽쳐스의 근로환경과 안전대책 수립 현황을 즉시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끝으로 "이번 사건이 결코 드라마 제작에 종사하는 노동자 한 명의 안전사고가 아니"며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시청률과 매출액, 그리고 한류로 포장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언론노조의 입장 전문이다.

배우 이승기의 화려한 복귀로 화제가 됐던 tvN 드라마 <화유기>의 촬영현장에서 세트 작업을 하던 용역업체 노동자가 추락하여 심각한 중상해를 입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3일 새벽 1시 40분경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 동현창호 세트장에서 <화유기> 제작사인 JS픽쳐스의 소도구 제작 용역업체 MBC아트 소속 노동자가 무리한 업무 지시를 이행하다 추락해 허리뼈와 골반뼈가 부서져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철호 JS픽쳐스 미술감독이 사고를 당한 직원에게 요구했던 샹들리에 설치는 MBC 아트와의 용역 계약에 포함되지도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당사자가 야간작업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다음날 설치하겠다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설치를 강요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피해자는 평소 이철호 미술감독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미술팀이 드라마 제작에서 빠지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다 어쩔 수 없이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여진다.

CJ E&M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화유기>의 화면 뒤에는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드라마 제작 현장의 악습과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CJ E&M은 계열사인 JS픽쳐스(대표: 이진석)에게 드라마 외주를 맡겼고, 다시 이 제작사는 자사의 미술팀을 업무 지시자로 삼아 복수의 업체에게 세트 및 미술 작업을 ‘쪼개기’로 할당했다. 이번 사고에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 JS픽쳐스의 이철호 미술 감독과 사고 현장인 세트를 부실 시공한 업체의 대표 뿐 아니라 현장 총감독의 책임을 맡은 박홍균 PD의 사고 직후 대응과 책임이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JS픽쳐스의 이진석 대표 또한 제작진이 새벽 1시에 퇴근할 정도로 무리한 촬영 일정이 진행되어 안전사고의 발생 위험이 높았다는 것을 과연 몰랐는지 의문이다. 이미 최악의 방송사고라는 오명을 쓴 CJ E&M 역시 외주제작을 맡기고 편성을 책임진 사업자로서 이 사건을 인지하고도 무리한 제작 일정, 후반작업 및 본방 강행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 밝혀져야 한다.

특히 CJ E&M은 지난 6월 14일 <혼술남녀>의 조연출 이한빛 PD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방송 제작 인력의 처우 개선을 위해 △적정 근로 시간 및 휴식시간 등 포괄적 원칙 수립 △스탭 인력들에 대한 상해 보험 가입 △내/외부 근무 환경에 대한 부당한 처우/고충 처리를 위한 창구 마련 △외주 스탭 인력 대상 프로그램 책임CP 명함 배포를 통한 핫라인 구축 등을 약속했다. 약속을 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인명사고와 방송사고가 동시에 발생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CJ E&M측이 약속이행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CJ E&M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고 직후 제작 책임자가 응급실 이동과 초기 진료 과정에 함께 하였으며, 지속적으로 상호 연락을 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가 소속된 MBC아트는 “사고 다음날 연출PD 한 명이 찾아 온 것이 전부”라고 반박하고 있다. 직접 업무 지시를 내렸다고 알려진 JS픽쳐스의 이철호 미술감독 또한 피해자가 스스로 업무에 나선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JS픽쳐스가 CJ E&M의 계열사임을 고려할 때,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 규명을 CJ E&M에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번 사고가 드라마 제작현장의 총책임을 맡은 PD와 업무지시를 내린 미술감독만의 책임이 아님을 명확히 하며 다음과 같은 조속한 두 가지 조치를 관계당국에 요구한다.

첫째, 고용노동부는 즉시 CJ E&M과 JS픽쳐스에 드라마 제작 중지를 명령하라. 세트장은 3m 높이였으나 안전장비는 없었고, 피해자가 올라갔던 세트 천장부는 무게가 적고 가격이 저렴한 ‘스프러스’ 소재 나무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에 의하면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작업을 중지시키고 안전 · 보건상의 조치를 한 후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장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그 원인규명 또는 예방 대책 수립을 위하여 근로감독관과 관계 전문가로 하여금 안전 보건 진단이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즉각 작업중지명령을 내리고 긴급 조사를 실시해 이 사건 세트가 적법하게 시공 되었는지, 이철호 미술감독이 세트장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무리하게 업무지시를 한 것은 아닌지, JS픽쳐스는 작업 과정에서 안전 장비와 보강 장치를 제공했는지 여부 등을 파악하고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엄중히 물어야 한다.

둘째, 방송통신위원회는 관계당국과 조속히 협의하여 CJ E&M과 JS픽쳐스의 근로환경과 안전대책 수립 현황을 즉시 조사하라. 방송통신위원회,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5개 부처가 합동으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화유기> 제작 현장의 이번 사고는 대책 발표 직후 벌어진 대표적인 “방송제작인력 안전강화 및 인권보호”와 “근로환경 개선”의 위반 사례다. 방통위 등 관계당국은 대책의 구체적인 시행이 재허가 심사나 관련법 개정 이후에 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대책에는 “드라마 업종의 근로조건 자율 개선”과 “외주제작 실태 및 근로환경에 대한 조사 정례화”가 포함되어 있다. 대책 수립 당시 현장 조사를 담당했던 부처는 이번 사건에 대한 엄정한 현장 및 관계자 조사에 나서야 한다. 행여 이 사건이 관계당국의 업무가 아니라고 한다면, 무수히 많은 조치를 나열한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은 제작 현장에서 어떤 실효성도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번 사건이 결코 드라마 제작에 종사하는 노동자 한 명의 안전사고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시청률과 매출액, 그리고 한류로 포장될 수 없다. 인권과 노동에 대한 존중이 없는 제작 현장은 어떤 성과로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가 즉시 <화유기>의 제작 중단을 명령하고 원인과 책임 규명에 나서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화유기>의 제작 중지는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시청자들이 이런 사고를 잊고 <화유기>에 열광할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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