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로힝야족의 위기를 보여주는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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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의 발루칼리 난민 수용소에서 NGO에게 구호 물자를 나눠주는 트럭에 기어올라 울부짖는 로힝야족 난민 소년. 9월 20일.

얀마가 국가 차원에서 지금도 자행하고 있는 폭력적 박해로 인해 2017년 8월말부터 지금까지 미얀마 라카인주에서 피난한 로힝야족은 65만5000명이 넘는다.

8월 말, 로힝야 반군단체가 경찰초소들을 습격하자 미얀마군이 잔혹한 제거 작전을 펼쳤다. 인권 단체들은 미얀마에서 소수에 속하는 무슬림 집단인 로힝야족에 대한 도를 넘는 무차별적 보복에 항의해왔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9월24일까지 사망한 로힝야족은 최소 9000명 이상이다.

수십만 명의 난민이 인종 청소비인도적 범죄를 피해 접경국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불교도가 대다수인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의 인권은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수십 년 동안 정부의 탄압을 받아왔다.

인권단체들의 소름끼치는 보고서에서는 로힝야족의 마을에 대한 체계적 공격과 국가 기관원들에 의한 강간, 방화, 총격, 구타, 고문이 담겨있다.

방글라데시 국경 도시 콕스 바자르의 난민 수용소는 이미 수용 가능 인원을 초과했으나 새로 들어오는 난민 숫자가 계속 늘어나서 필수 자원들이 부족해지고 있다.

미얀마는 이양희 유엔 인권특별보고관 등 국제 기관과 수사관들의 접근을 계속해서 막고 있기 때문에 진행 중인 위기의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수치는 로힝야족에 대한 잔혹 행위를 대단치 않은 것으로 치부하며 본인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

수치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은 대량 학살로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Zeid Ra'ad Al Hussein)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대표가 이번 주에 밝혔다.

로힝야족 가족들이 방글라데시에서 새 삶을 시작하며 생존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모았다.

** 주의 : 일부 독자들이 보기에 불편할 수도 있는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MYANMAR-ROHINGYA/BANGLADESH
    Danish Siddiqui / Reuters
    배로 벵갈 만을 건넌 로힝야족 여성이 탈진 상태로 방글라데시에 도착했다. 로이터 사진가 다니시 시디퀴는 이렇게 말했다.

    “맑은 아침이었고, 미얀마쪽 에서 구름처럼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 몇 군데 보였다. 해변에서 몇 시간 기다렸더니 로힝야족을 태운 어선들이 도착했다. 사진 속 여성의 가족들이 배에서 해변으로 여성을 데려온 직후에 찍은 사진이다. 미얀마에서 길고 위험한 여정을 거쳐 도착한 지친 로힝야족 여성은 해변에 앉아 땅에 손을 얹고 해변을 만져보았다.” 9월11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Damir Sagolj / Reuters
    방글라데시 팔랑 칼리의 국경을 건넌 로힝야족 난민들이 논을 통과하고 있다. 로이터 사진가 다미르 사골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는 로힝야족 난민을 태운 배가 뒤집힌 비극적인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대부분 어린아이들이었다. 한 동료가 차로 두 시간 거리인 북쪽 지역에서 국경에서 기다리던 난민 수천 명이 마침내 방글라데시로 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서둘러 가보았더니 어두워지기 직전에 도착해 비현실적인 광경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소지품을 지닌 수천 명의 사람들이 병자, 부상자, 노인, 어린이들을 도우며 진흙과 논을 뚫고 천천히 비교적 안전한 방글라데시로 가고 있었다. 난 그 날 하루 평생 볼 비극을 다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미얀마에서 도망치는 로힝야족들의 끝없는 이야기 중의 평범한 하루에 불과했다.” 10월9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Damir Sagolj / Reuters
    작은 나무배를 타고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근처 해안에 도착한 로힝야족 난민들이 지쳐서 쓰러졌다. 다음은 로이터 사진가 다미르 사골의 말이다.

    “어두울 때 나프 강을 건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은 샤 포리르 드윕 해변에 한낮에 도착했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부서지기 직전의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로 오기 전까지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나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상륙하고 상당수가 쓰러졌다. 하지만 생존 본능에 이끌린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일어났고, 아이들을 챙기고 가져온 얼마 안되는 소지품들을 챙겨 난민 수용소로 걸어갔다. 수용소는 미얀마의 위험을 피해 돌아온 사람들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다.” 10월1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Damir Sagolj / Reuters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인근 발루칼리 수용소 내의 과부와 고아 수용소에서 아들을 안고 울고 있는 로시드 잔. 잔은 자신의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른다.

    미얀마 군인들이 마을에 불을 질렀다. 잔은 아이 다섯을 데리고 열흘 동안 걸어서 방글라데시로 왔다. 없어진 남편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흘렸다. 잔이 살던 미얀마 라킨주 판시 마을의 종교 지도자는 로힝야 반군 소속이라는 혐의를 받고 11개월 전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그뒤로 그를 본 적도, 소식을 들은 적도 없다.
    현재 잔은 다섯 아이와 함께 로힝야족 과부와 고아 수용소에서 지내고 있다. 수용소 인원은 230명이 넘는다.
    (로이터 사진가 다미르 사골) : “먼지 투성이 계곡 속에 있는 발루칼리 수용소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까지 가려면 언덕을 세 개 넘어야 한다. 빨간 텐트들을 빽빽히 쳐놓은 이 수용소에는 엄청난 비탄과 고통이 숨어있다. 색깔 때문에 ‘빨간 수용소’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길이 때문에 ‘긴 수용소’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때문에 ‘과부 수용소’라는 이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고 이곳의 열성적인 비공식 지도자가 내게 설명했다. 텐트는 50개 정도 있고, 230명 이상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산다. 남성은 없다. 여기에 있는 과부와 고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여기보다 더 큰 슬픔이 있는 곳을 상상하기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이 수용소는 로힝야족의 모든 비극이 농축되어 있는 곳으로 보였다.” 12월5일.
  • Rohingya people fled from oppression in Myanmar
    Zakir Hossain Chowdhury /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콕스 바자르에서 국경을 넘은 뒤 진흙탕을 걸어가고 있는 로힝야족 무슬림들. 9월1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Mohammad Ponir Hossain / Reuters
    방글라데시 테크나프의 샤 포리르 드위프 해안에서 배가 뒤집혀 죽은, 태어난지 40일 된 아들을 들고 울고 있는 로힝야족 난민 여성 하미다.

    로이터 사진가 모하마드 보니르 호사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해변에서 탈진한 난민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오토 릭쇼 기사가 배가 뒤집혔다고 외쳤다. 서둘러 현장에 가보니 사람들이 아이 시체를 둘러싸고 울고 있었다. 나는 자기 아들 압둘 마수드의 창백한 시체를 안고 있는 하미다의 사진을 찍었다. 생존자들이 파도를 헤치고 해변으로 오는 동안 죽은 것 같았다. 하미다의 남편 나시르 아흐메드는 아이를 군중들에게서 떼어놓았다. 이 부부의 다른 아들은 살아남았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미얀마를 탈출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다. 이 사진은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9월14일.
  • Rohingya Refugees Flood Into Bangladesh
    Paula Bronstein via Getty Images
    집을 떠난 로힝야족들의 생활을 장마가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한 남성이 힘겹게 보급품을 나르고 있다. 콕스 바자르 쿠투팔롱, 9월17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Damir Sagolj / Reuters
    나무배를 타고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아리프 울라가 탈진한 아내를 달래고 있다. 미얀마 군인들이 그들이 살던 마을을 불태우고 그들의 친척을 죽였다고 한다.

    로이터 사진가 다미르 사골 : “그 날 오전에 로힝야족 난민들이 곧 부서질듯한 나무배를 타고 벵갈 만을 건너 나프 강 하구에 있는 샤 포리르 드위프 마을로 왔다. 난민들 대부분은 항해에 지쳐 방글라데시 해안에 도착하는 즉시 쓰러졌다. 샤키라는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어서 남편 품에서 10~15분 정도 쉬었다가 일어나서 근처에 있는 구호 센터로 걸어갔다.” 10월1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Cathal McNaughton / Reuters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에서 보급품을 기다리는 로힝야족 난민들을 경찰이 통제하려 하고 있다. 다음은 로이터 사진가 카탈 맥너튼의 말이다.

    “수용소에 찾아갔을 때 처음 며칠 동안은 혼란 상태였다. 매일 도착하는 구호품을 나눠주는 인프라가 없었다. 남성들이 구호품을 놓고 아이들과 싸우곤 했다. 아이들은 할머니들에게서 쌀을 뺏으려 싸웠다. 경찰이 충원되어 질서를 잡으려 했다. 음식을 얻으려 앞다투어 나서다 구타당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경험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9월21일.
  • Rohingya Refugees Flee Into Bangladesh to Escape Ethnic Cleansing
    Kevin Frayer via Getty Images
    미얀마에서 도망쳐온 로힝야족 난민 여성이 탈진한 상태로 방글라데시에 상륙했다. 옆 사람이 도와주고 있다. 10월1일.
  • Rohingya Refugees Flee Into Bangladesh to Escape Ethnic Cleansing
    Kevin Frayer via Getty Images
    한 여성이 로힝야족 난민 아기의 시체를 들고 있다. 9월 29일에 배가 뒤집혀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매장하기 전에 흰 천으로 싸둔 것이 보인다. 콕스 바자르, 방글라데시. 9월29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Hannah Mckay / Reuters
    두 달 전에 미얀마에서 도망쳐온 호스네 아라(4)가 수용소 어린이 센터에서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로이터 사진가 한나 맥케이 : “센터에서 노래하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가 나를 지켜보는 게 느껴져 돌아보았더니 특별한 눈을 가진 이 어린 소녀가 내게 미소짓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자 소녀는 미소를 거두었다. 카메라를 내리자 다시 미소지었다. 우리 둘의 놀이 같이 되었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11월5일.
  • Rohingya Refugees Flood Into Bangladesh
    Dan Kitwood via Getty Images
    배를 타고 방글라데시에 도착해서 다시 만난 로힝야족들이 울고 있다. 9월8일.
  • Rohingya Refugees Flood Into Bangladesh
    Paula Bronstein via Getty Images
    구호물품을 배분하다 혼란이 심해지자 한 남성이 로힝야족 아이들을 때리고 있다. 장맛비가 쏟아져 여러움이 더해졌다. 콕스 바자르, 방글라데시. 10월7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Hannah Mckay / Reuters
    쿨수마 베굼(40)이 방글라데시에서 울고 있다. 로이터 사진가 한나 맥케이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 여성이 우는 이유는 몰랐지만, 그녀의 감정을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이야기를 마친 다음 나는 누군가에게 통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제서야 왜 그토록 슬퍼하는지 알 수 있었다. 딸을 잃었고, 미얀마에서 군인들이 남편과 사위를 죽였다고 한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팠지만, 그녀가 겪은 일을 듣자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쿠투팔롱 난민캠프, 콕스 바자르, 방글라데시.. 10월27일.
  • MYANMAR-ROHINGYA/BANGLADESH
    Mohammad Ponir Hossain / Reuters
    배로 나프 강을 지나 국경을 건너온 로힝야족 난민들이 아기를 들고 물 속을 걷고 있다.

    로이터 사진가 모하마드 포니르 호사인 : “나는 강가로 가려고 한 시간 정도 아주 미끄러운 진흙탕 길을 걸었다. 맹그로브 때문에 그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맹그로브 숲에서 나와서 아이와 노인들을 데리고 소지품을 들고 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썰물이라 배가 뭍까지 가질 못했다. 아이를 데려온 이 로힝야족 부부는 배에서 내려 맹그로브 숲에 들어간 다음 물 속을 걸어 땅까지 가야했다.” 테크나프, 방글라데시. 9월7일.
  • GLOBAL-POY/MYANMAR-ROHINGYA
    Cathal McNaughton / Reuters
    로힝야족 난민들이 구호물자를 기다리는 동안 한 여성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로이터 사진가 카탈 맥너튼 :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은 이 사진이 담아내지 못했다.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 여성은 귀를 찢을 듯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모두 구호팀의 관심을 끌려고 소리를 질렀다.” 콕스 바자르, 방글라데시. 9월21일.
  • Rohingya people fled from oppression in Myanmar
    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미얀마를 탈출한 로힝야족 난민 아이들이 '평화'라는 단어가 적힌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레다 난민캠프, 콕스 바자르, 방글라데시. 10월11일.

* 이 글은 허프포스트US의 2017’s Rohingya Crisis In Photo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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