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에 실린 나쁜 섹스에 대한 단편 '캣 퍼슨'이 소셜미디어를 뒤흔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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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kina6

2017년인 지금, 우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어떤 것이 바이럴되는지 제법 잘 알고 있다. 신체 긍정 사진과 글. 작디작은 부리토를 먹는 햄스터 영상. 괴상한 착시 현상.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통렬한 비판(틴 보그나 아웃도어 매거진 같이 의외의 매체에 실리면 보너스 포인트). 매력적일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일인칭 수필.

소설? 아니, 소설은 바이럴되지 않는다. 적어도 지난 주말 전까진 그랬다. 뉴요커는 크리스틴 루피니언이 쓴 ‘캣 퍼슨(Cat Person)’을 인터넷에 투하한 뒤, 마치 폭발 장면을 배경으로 걸어가는 액션 스타처럼 유유히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걸까? 왜 ‘캣 퍼슨’이 이토록 주목받았을까? 뉴요커에 실리는 정말 많은 다른 훌륭한 단편들은 이에 비하면 흐지부지 잊혀지는데 말이다.

나는 찾아 읽어보기로 했다. 읽기 전까지는 솔직히 뉴요커가 고양이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과 인간 사이의 과감한 장르 로맨스물을 실어서 소동이 벌어졌을 거라 생각했다. (단편에 딸려있는, 좀 오싹하고 애매한 키스 사진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 알고 보니 ‘캣 퍼슨’이 사람들을 매혹시킨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젊은 여성과 그녀가 최근 만나기 시작한 남성 사이의 애매하고 괴로운 성적 접촉을 불편할 정도로 가차없이 현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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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마고라는 대학생이다.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예술 영화 극장에 자주 오는 로버트라는 남성과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결국 두 사람은 데이트를 한다. 썩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고는 로버트의 집에 같이 간다. 막상 가고 나니 그에 대한 성욕이 사라지기 시작하지만, 마고는 왜 이젠 섹스를 하고 싶지 않은지에 대한 어색하고 복잡한 대화를 하느니 그냥 그와 섹스를 하기로 한다. 그녀는 원치 않는 섹스를 한 다음 로버트의 집에서 나오고, 그뒤로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 (스포일러 주의) 로버트는 거절을 품위있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 소설은 딱 적절한 시기에 등장했다. 지금 미국 사회는 #MeToo 폭로, 성적인 불편함, 범죄, 남녀간의 상호 교류에 대한 우리의 대화가 좋지 않다는 논의로 들끓고 있다.

“이 단편에는 성폭력이나 추행, 직장 내 성폭력과 강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성적으로 서로를 읽어내지 못하는 모습을 살핀다.” 뉴요커 픽션 에디터 데보라 트레이스먼이 12월 11일에 전화로 허프포스트에 설명했다.

타이밍이 적절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몇 주 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시사와 관련된 것이 맞다. 그래서 우리는 적기라고 생각했다. 몇 달씩 묵히고 싶지 않았다.” 트레이스먼의 말이다.

책, 페미니즘, 매체 등의 트위터를 자주 접하는 사람들에겐 어딜 가나 이 단편(과 불편한 그 이미지)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올해 우리가 냈던 픽션들 중 ‘캣 퍼슨’의 온라인 조회수가 단연 최고였다. 올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은 뉴요커 글 중 하나였다.” 뉴요커의 내털리 라비가 허프포스트에 말했다.

시의적절했던 건 사실이지만, 시의적절했던 단편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캣 퍼슨’의 특별한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이 단편은 xoJane과 Jexebel이 올리곤 하는 일인칭 고백 에세이와 아주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형태는 바이럴이 잘된다. 이 단편을 소설이 아닌 기사나 에세이라고 부르는 트위터 유저들이 많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캣 퍼슨’은 예술성을 과시하지 않는 투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뉴욕 타임스 ‘모던 러브’ 컬럼을 읽을 때 구조나 형용사 사용보다는 심리적 폭로에 집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고의 노이로제와 상상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내게 일어났던 일: 나는 거절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져서 별로인 섹스를 했다’의 소설 버젼인 셈이다.

인터넷 시대 초반에 이런 에세이들이 넘쳐났던 데는 웹 매체들의 경제적 사정이 크게 작용했다. 취재도 전문성도 필요없지만, 파충류 시절부터 우리 뇌 속에 있었던 클릭하고 공유하는 부분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뉴요커의 지아 톨렌티노는 올해 초에 이런 글들을 더이상 싣지 않기로 했지만, 우리 주위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사랑을 발견하고, 헤어지고, 버자이너 속에서 고양이 털뭉치를 발견하는(미안하지만 실화다) 이야기에 늘 관심을 가질 것이다.

‘캣 퍼슨’은 xoJane의 개인적 에세이들이 충족시켜 주는 지점, 즉 여성의 현실 경험에 대한 솔직하고 약점까지 드러내는 서술을 분명히 건드린다. 여성의 삶과 신체에 대해 정말 많은 것들이 수치스럽다, 부끄럽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우리는 생리 기간을 숨겨라, 오르가슴을 연기해라, 남성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데이트 신청을 받아들여라 등의 가르침을 받는다. 우리가 서로로부터 숨기던 것들을 공유하고, 다른 여성들이 깨끗하고 친절하고 자상한 모범 사례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큰 해방감을 준다. 그들은 복잡하고, 얄팍하고, 잘못이 있고, 때로는 역겨운 사람들이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내 단편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대화들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고맙게 생각한다. 난 눈 속을 산책하고 개를 끌어안아야 하지만, 내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면 고맙다. 그리고 이걸 소개한다.

‘캣 퍼슨’은 젊은 여성의 의식 속으로 깊이 들어가, 남녀 사이의 실망스럽고 엉망진창인 성적 접촉에 대한 여성측 이야기를 풀어낸다. 많은 독자들에게 이것은 신선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대학생이고, 그녀의 경험은 뉴요커의 주된 독자층인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백인 여성들이 했을 법한 경험이라는 게 타겟 독자층의 아픈 곳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높다.) 남성의 두서없는 성적 행동들에 대한 남성 독자의 단편 소설은 아주 많다. 로리 무어와 메리 개츠킬 등의 여성 작가들이 쓴, 여성의 섹스와 연애에 대한 훌륭한 단편도 많다.

그러나 연애, 섹스, 여성 내면에 대한 여러 훌륭한 단편들과 달리, ‘캣 퍼슨’은 우리 모두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된 순간에 등장했다(뉴요커가 루피니언의 단편을 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MeToo로 인한 시의성과 ‘캣 퍼슨’의 다른 매력들이 합쳐져 연금술과 같은 매력이 생겨났다.

“[이러한 반응은] 섹스와 동의에 대한 지금의 담론과 분명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이슈들이 뉴스에 정말 많이 나오고, 활발히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 헐리우드 프로듀서들의 세계 등에서 조금 떨어져서 이 문제를 바라볼 방법을 이것이 제공했다.” 트레이스먼의 말이다.

그러나 트레이스먼이 지적하듯,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의 경험들에 대해 지금 유독 열띤 대화가 오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마치 우리 모두 남성과 관련된 여성들의 나쁜 성적 경험들에 대한 세미나에 등록했고, 이제 학기 중반이 된 듯한 느낌이다. 기본 참고 도서는 다 읽었고, 이제 우리 모두 비슷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두 의견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 반대다. ‘캣 퍼슨’에 대한 트위터 상의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로버트나 마고에게 좀 더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가, 와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생각들조차 달랐다. 하지만 이 단편이 합의, 커뮤니케이션, 여성의 성적 쾌락에 대해 이야기할 명백한 기회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다. 이 단편이 6개월만 전에 나왔더라도 이 소설이 가진 공명력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정하자니 슬프지만, ‘캣 퍼슨’이 바이럴로 성공을 거둔 큰 이유 중 하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이제껏 단편 소설이 바이럴된 적이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캣 퍼슨’에 대해 온라인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이야기는 메타 논의였다. 단편 소설이 읽힌다니 쿨하지 않아? 왜 이 단편이 읽히고 있지? 다들 단편 소설을 한 번도 안 읽어봐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서 이렇게 신난 거야? 앞으로 바이럴 되는 단편 소설들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캣 퍼슨’ 이후의 어떤 단편 소설도 이토록 참신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단편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에 대해 트레이스먼 역시 다른 사람들 만큼 놀란 것 같다. 그녀는 앞으로 다른 소설을 이렇게 성공시킬 방법을 알지 못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입소문이 퍼져나가는 방식은 아직도 나에겐 낯설다.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비슷한 경험, 이와 비슷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시에 대해서였다. 2013년 여름에 패트리샤 록우드의 ‘강간 농담’(Rape Joke)이 급속도로 퍼졌을 때, 시가 바이럴될 수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란 사람들이 많았다. 이 시 역시 남성과의 교류에 대한 여성의 내적 경험을 생생하고 노골적으로 담아 독자들을 끌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가디언은 이 시가 ‘시에 대한 한 세대의 관심을 무심한 척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그 이후 시의 독자들은 계속 늘어가고 있으며, 특히 온라인 독자가 새로 생기고 있다. 이제 시가 바이럴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 그 사실 자체는 주목 받지도 못한다. 여러 일들에 반응하고 머릿속에서 처리하는데 있어 시는 인터넷 상에서 자주 쓰는 도구가 되었다. 해설 기사나 뉴스 속보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단편 소설이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있을까? ‘메시지’나 ‘정치적 관련성’ 등의 무신경한 것에서부터 문학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고 나서는 예술적 순수주의자들이 있다. 어느 캐릭터가 옳았느냐, 누가 이기적으로 행동했느냐, 이 단편이 로버트의 뚱뚱함을 수치거리로 만들었느냐 등의 논의는 픽션을 논픽션으로 보는 부적절한 행위로 프레임된다. “‘캣 퍼슨’이 시기적절한 이슈를 가져다 교훈을 주려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에세이들이 종종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가상 문학작품은 확실한 도덕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습관에 빠지기가 쉽다.” 슬레이트의 로라 밀러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캣 퍼슨’을 그렇게 읽는데는 이유가 있다. 진짜 같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아주 현실적인 내러티브로 담아내고 있으며, 일이 틀어질 수 있는 여러 방식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얻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다. 루피니언이 ‘캣 퍼슨’을 쓴 것은 #MeToo가 시작되기 훨씬 전이고 #MeToo와 상관없이 읽을 가치가 있지만, 지금 이러한 문화적 순간에 사로잡힌 독자들에게 마치 에세이처럼 안도와 통찰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루피니언과 트레이스먼은 이 단편은 남녀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데 대한 지금의 불만에 호소하는 바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캣 퍼슨’의 정치적 관련성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트레이스먼이 진행한 뉴요커 인터뷰에서 루피니언은 마고가 원하지 않지만 섹스를 한 것은 “여러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많은 여성들은 남들을 화나게 하지 않고, 타인들의 감정을 책임지고, 주위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고 지극한 노력을 한다.” 이번 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는 남성과 사귀는 여성이 느낄 수 있는 외로움, 성적으로 취약하다는 느낌을 지금 사귀는 남성이 이해하지 못해 느끼는 외로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내가 아는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고통을 강하게 느낀다. 온갖 끔찍한 경험들이 공유되고 공론화된 올해에는 특히 그랬다. 여성들은 파트너와 이런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보지만 실패하곤 한다. 두 사람 모두가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

‘캣 퍼슨’이 픽션이라는 것(마고와 루피니언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공들여 만들어 낸 작품으로써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지만, 현실 문제를 들여다 보는 창으로 사용하는 게 왜 잘못인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루피니언 본인이 인터뷰에서 그렇게 했다. 바로 그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고, 오래전부터 그것은 픽션의 힘이었다. 특히 심리적 사실주의가 그렇다.

픽션이 단순한 도덕적 전형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밀러의 지적처럼 ‘캣 퍼슨’은 캐릭터를 쉽게 비판하지 않고, 복잡하고 결점이 있는 두 사람을 보여준다. 그래서 더욱 가치있는 교육 도구가 된다. 현실 역시 엉망진창이고, 사람들은 복잡하고 결점이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곳은 현실이다.

허핑턴포스트US의 Why A New Yorker Short Story About Bad Sex Went Viral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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