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명당'은 진짜 존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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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② 핫핸드와 도박사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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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 당첨자를 여러차례 배출한 판매소 앞에 로또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붐비는 이른바 ‘로또 명당’ 효과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사진은 ‘15번 당첨’이라는 문구가 창문에 적혀 있는 서울 노원구의 한 로또 복권 판매 가게 모습.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015년 할리우드 영화 '빅쇼트'에 카메오로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세일러는 2000년대 중반 금융시장을 휩쓸었던 광기의 배후에 ‘핫핸드’(hot hand)라고 하는 고전적인 심리현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오늘 우리의 차트 읽기는 여기에서 시작하려고 합니다.

본래 핫핸드는 농구 경기에서 기원한 용어입니다. 농구 팬들은 한 선수가 슛을 연속해서 성공할수록 그 다음번 슛의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믿고, 이런 현상을 핫핸드라고 부릅니다.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의 토머스 길로비치 교수 팀은 미국 프로농구 데이터를 분석해 이 문제에 도전했습니다(‘농구의 핫핸드: 무작위 연속사건에 대한 잘못된 이해’, '인지심리학'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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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핫핸드가 실제로 존재하는 현상이라면, 어떤 선수가 직전에 골을 실패했을 때 다음 슛을 성공할 확률이 낮고, 또 직전에 연속 성공한 횟수가 많을수록 다음 슛에 성공할 확률이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필라델피아 프로농구 팀의 1980~81년 시즌 기록을 분석한 결과, [♣[그림1]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선수는 직전 슛의 성공 횟수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다음 슛 성공 확률이 낮아졌습니다.

이런 결과는 농구 팬들의 생각과 어긋나는 기록이죠. 핫핸드를 지지하는 분들은 아마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전 성공 횟수가 높아지면 상대 팀이 그 선수에 집중해서 수비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성공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이 통계로 핫핸드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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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길로비치는 이번에는 수비가 아예 없는 상황에서 2회 연속 자유투를 던지는 경우를 검토했습니다. 보스턴 프로농구 팀의 1980년대 두 시즌 기록을 분석했는데, [그림2]에서 보듯이 아홉명 중 네명은 첫번째 슛에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 두번째 슛의 성공 가능성이 높았지만(선수 6~9), 다섯명은 반대였습니다(선수 1~5). 그리고 두 경우 모두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유투를 통해서도 핫핸드를 입증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핫핸드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른바 ‘로또 명당’입니다. 로또 1등 당첨자를 여러차례 배출한 판매소 앞에는 로또를 구입하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만 고유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시카고대와 메릴랜드대 경제학과의 조너선 거리얀과 멀리사 커니 교수의 연구 결과가 증명해줍니다. 두 사람은 2000~2002년 텍사스주 로또 판매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명당에서 도박하기: 주 로또 판매 실증’, '미국경제리뷰' 2008). 참고로, 텍사스에서는 세가지 종류의 로또가 판매되는데, 최고 상금은 모두 달라서 ‘로또 텍사스’가 5120만달러, ‘텍사스 투 스텝’이 160만달러였고, ‘캐시 파이브’는 9만달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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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들의 연구 결과를 살펴볼까요? [그림3]에서 알 수 있듯이 로또 1등을 배출한 판매소는 다음주 판매량이 12%에서 38%까지 크게 늘었는데, 특히 최고 상금이 큰 로또 순으로 증가율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상승효과는 대략 40주 정도 지속되다가 소멸됐다고 합니다.

또 연구팀은 고교 중퇴 이하자, 노인 및 빈곤층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 핫핸드 효과가 더욱 뚜렷하다는 점에서 이들이 ‘명당 효과’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연속적인 사건들과 관련된 오류는 비단 핫핸드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다섯번 연속해서 나왔다면, 그다음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또 나올 확률은 얼마일까요? 2분의 1일까요? 아니면 그보다 더 높을까요, 낮을까요? 이런 경우 많은 분들은 ‘앞면이 다섯번이나 연속해서 나왔는데 설마 또 앞면이 나오겠어? 이제는 뒷면이 나올 게 확실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사회과학자들은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라고 부릅니다.

펜실베이니아대와 네바다대 경영학과 교수인 레이철 크로슨과 제임스 선댈리는 카지노 룰렛 게임을 소재로 이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도박사의 오류와 핫핸드: 카지노 실증 자료’, '위험과 불확실성 저널' 2005).

가장 간단한 형태의 룰렛으로, 똑같은 면적의 녹색과 적색 두 종류의 포켓으로 나뉘어 있는 원판에 구슬을 던져 어느 포켓에 들어가는지를 맞히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네바다주 리노시의 한 대형 카지노의 협조를 얻어 1998년에 139명이 룰렛 게임을 하는 비디오 영상을 분석했습니다. 같은 색이 계속해서 나온 후 도박에 참가한 이들이 그 색에 돈을 거는 성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추적해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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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에서 보면 녹색이 세번 나올 때까지는 녹색과 적색에 대체로 절반 정도 돈을 걸었지만, 같은 색의 반복 횟수가 더 누적되면 그 색을 선택하는 경향이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6회 연속 녹색이 나왔을 경우 그다음에도 녹색을 선택하는 빈도는 겨우 1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도박사의 오류가 말 그대로 도박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프랑스 툴루즈 경제대학의 다니엘 첸 교수 팀은 도박사의 오류가 현실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습니다(‘도박사의 오류에 영향받은 의사결정: 난민 판정관, 대출 심사인, 야구 심판의 사례’, '계간 경제학 저널' 2016).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PITCHf/x’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이용해, 모든 투구를 매우 정밀하게(1㎠) 측정·기록하고 있습니다. 첸 교수팀은 2008~2012년 타자가 스윙을 하지 않아 주심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판정한 150만건의 투구를 대상으로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이 직전 판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물론 볼 카운트와 투구 위치 등 여러 요인들이 분석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잘 조정한 후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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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를 보면, 동일한 조건의 투구에 대해서 심판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릴 확률은 직전에 스트라이크를 판정한 경우가 볼을 판정했을 때에 비해 1.5%포인트 낮았습니다. 직전에 두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판정한 경우에는 2.1%포인트 낮았습니다.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 경계에 가까워서 판정하기 애매한 경우에는 차이가 더 컸습니다. 스트라이크로 판정할 확률이 각각 3.5%포인트(직전 스트라이크), 4.8%포인트(직전 두번 스트라이크) 낮았습니다. 심지어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를 지나는 ‘분명한’ 투구에서조차 스트라이크를 부를 확률은 0.2%포인트, 0.5%포인트 낮아졌습니다. 믿기 어렵다고요?

비슷한 사례는 여럿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정치·종교·인종 등의 사유로 본국에서 위협을 받는 외국인이 법원에 난민 신청을 하면 담당 재판관이 위협에 대한 판단을 거쳐 난민 지위를 부여하거나 거절합니다.

연구팀은 1985~2013년 미국 난민 재판관 357명이 수행한 15만건의 난민 심사 자료를 분석해 난민 판정이 직전 판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도 난민 신청자의 국적 등을 고려해 분석해보니, 유사 사례의 경우 난민 승인을 받을 확률은 동일한 재판관이 직전에 승인을 했을 때 3.3%포인트 하락했고, 특히 직전에 연속해서 두번 승인을 했을 경우에는 5.5%포인트나 낮아졌습니다.

연구팀은 은행의 대출 심사에 대한 모의 실험도 수행했습니다. 인도에서 평균 경력 10년인 현직 은행원 188명을 모집해, 총 9천여건의 소규모 기업대출 심사 자료를 심사하도록 한 것이죠. 이 자료는 과거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 실제 자료이기 때문에, 연구팀은 해당 대출의 승인 여부 및 상환 여부를 알고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모집된 은행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번째 그룹은 심사 건당 일정한 금액을 주는 ‘균일보수제’를, 두번째 그룹은 실제 상환된 건을 승인할 경우에는 보수를 주되 상환되지 않은 건을 승인할 경우에는 보수를 주지 않는 ‘차등보수제’를 시행했고, 마지막 그룹은 상환되지 않은 건을 승인할 경우 벌금을 내게 하는 ‘강한 차등보수제’를 시행해봤습니다.

결과가 궁금하신가요? [그림6]에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우선 균일보수제부터 보시죠. 대출 심사인이 유사한 건에 대해 승인을 할 확률은 그 심사인이 직전에 승인을 했을 경우 무려 22%포인트나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차등보수제나 강한 차등보수제를 채택할 경우에는 4.7%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습니다. 경제적 인센티브에 의해 심사인들이 심사에 보다 집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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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이런 오류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여러분이 집에서 동전을 100번 던져서 결과를 기록해보면, 앞면과 뒷면이 교대할 때도 있지만 한쪽 면이 여러 차례 연속되는 경우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작동하는 확률 세계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식은 앞면과 뒷면이 교대하는 많은 경우는 건성으로 흘리고, 특정 면이 다섯번 여섯번 또는 그 이상 반복되면 거기에 주목해 어떤 신비한 의미를 부여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길로비치 교수가 동전을 던져서 나온 성공과 실패의 기록을 시합에서의 슛 성적이라고 농구 팬들에게 보여줬더니 농구 팬의 60% 이상은 핫핸드가 존재하는 증거로 이 결과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연속 성공을 보고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으면 핫핸드 오류에 빠지는 것이고, 반대로 행운과 불운의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이제는 반대로 갈 것이라고 믿으면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여러 건의 연구를 통해 핫핸드 오류와 도박사의 오류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오류는 저학력자, 빈곤층 등 사회적 취약 계층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견되지만 심지어 판사, 금융인, 프로야구 심판 등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이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도 확인했습니다.

맨 앞에 소개해드린 영화에서 세일러 교수가 던진 메시지는 객관적인 확률을 무시한 채 ‘과거에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카드 게임에서든 금융 투자(또는 투기)에서든 둘 다 심각한 오류로, 인간은 이런 오류에 취약하다는 경고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 신현호. 데이터 분석가. 20년 동안 숫자와 차트를 작성하고 분석하는 일로 살아왔다. 연애시절 차트 이야기에 몰두하다 썰렁한 남자로 몰려 차일 뻔한 후 충격을 받고 “차트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기치하에 아내를 겨우 설득했다. 그렇게 가다듬은 차트 이야기들로 독자와 대화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