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싱당했다는 자유한국당 ‘예산안 드라마' 감초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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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여야 3당 원내대표가 2018년도 예산안 처리 잠정 합의에 이르렀지만 자유한국당 분위기는 흉흉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야합’으로 자유한국당이 ‘패싱’됐다는 불만이 주를 이뤘고 의원총회에서는 정우택 원내대표가 사인한 잠정합의안이 추인되지 못했다. 그래도 민주·국민의당 연대로 2018년 예산안은 비교적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자유한국당은 5일 밤 결속력 있는 ‘집단행동’으로 실력을 과시했다. 소외감을 극복하고 ‘예산안 처리’ 드라마의 ‘신스틸러’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2017년 12월5일, 길고 바빴던 자유한국당의 하루를 정리했다.

#오전 9시30분, 자유한국당 1차 의총…근데 중간에 어딜 가시나요?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소집이 예정된 이날, 자유한국당은 의원총회로 하루를 시작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극단적 좌파, 포퓰리즘, 무차별적 퍼주기로 대한민국이 경제위기, 국가부도 위기로 몰리지 않도록 역할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원내대표는 “예산안 문제는 찬반토론 후에 원내전략에 대해선 비공개 회의 때 충분히 듣고 결론 내겠다. 좋은 의견을 내달라”고 말했고 9시30분 시작된 의총은 10시에 비공개 회의로 전환됐다.

그러나 15분 뒤 김학용, 김재경, 신보라, 문진국, 장석춘, 여상규, 이명수, 장제원, 안상수, 이은재, 이진복, 강석호, 박성중, 이종배, 장제원 이군현, 강길부 의원 등이 의총장을 빠져나왔다. 10시 의원회관에서 열리는 김성태 의원의 원내대표 경선 출마 선언 토크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자유한국당 의총은 계속 이어졌다. 예산안 처리 반대를 위해 무제한 반대토론(필리버스터)을 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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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예산안 및 부수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회에 앞서 함께 논의하고 있다. 이날 오전 본회의는 개회 후 자유한국당의 의원총회와 예산안 실무 처리가 끝날 때까지 정회키로 했다.

#오전 11시, 국회 본회의 소집…자유한국당을 기다리며

예산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 개의 시각은 오전 11시로 잡혔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의총 때문에 본회의는 1시간 뒤인 12시에 열렸다. 본회의에서는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이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잃었다는 보고만 간략하게 진행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의원님들 함께 하셔서 의결 정족수를 초과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예산안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다”며 “현재 참석하신 의원님들과 함께 예산부수법안을 처리할 순 있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게 원내대표들과의 협의 결과다. 모든 것이 완비된 시점에 다시 개의해서 예산안과 부수법안을 처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본회의 정회를 선포했다.

#오후 12시30분, 자유한국당 1차 의총 종료…필리버스터? 리얼?

자유한국당이 3시간 이어진 1차 의원총회를 종료했다. 예산안 처리 본회의에 어떻게 대응할지 오후 의원총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는 게 결론이었다. 예산안 필리버스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국회법에서는 무제한 토론을 하려면 본회의 개의 전까지 국회의장에게 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30분, 바른정당 논평 “욕 먹어도 싸다”

유의동 바른정당 수석대변인이 ‘제1야당 자유한국당에게’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놨다. 논평의 첫 문장은 “미친 놈들”이었다. 지난 4일, 3당 원내대표 합의 직후 자유한국당이 합의를 엎으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내놓은 반응이었다. 유의동 수석대변인은 “평소 보수의 맏형을 자임했지만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보수다움은커녕 존재감 자체가 없었다. 반대만 했지 막아 낸 것은 없다”며 “욕 먹어도 싸다”고 일갈했다. 유 수석대변인은 “미친 놈들”이라는 욕설이 “부실예산을 막기는커녕 불량합의만 남발한 좌충우돌 116석 제1야당에게 어울리는 말”이라며 “집권당 원내대표에게도 먹는 그 욕을 국민들에게 또 먹는다고 해서 큰 노여움을 갖지는 마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저녁 8시23분, 자유한국당 2차 의총…본회의 속개는 다가오는데

정세균 국회의장은 밤 9시에 본회의를 다시 소집하겠다고 자유한국당에 통보했다. 본회의 개의 37분 앞선 시각에 자유한국당은 다시 의총을 열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9시 본회의가 예정돼 있으니 본회의장에서 앞으로 반대 의견을 어떠한 형식으로 개진할 것인지 의미있는 토론을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밤 9시가 지났지만 자유한국당 의총은 계속 됐다. 의총 중간에 나온 정태옥 원내대변인은 “10시에 본회의 들어갈 수도 있고 11시에 들어갈 수도 있고 안 들어갈 수도 있다”고 전했다. 본회의장에 들어가되 표결에는 참석하지 않고 피켓을 들거나 아예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않고 로텐더홀에서 구호만 외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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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밤 국회의장이 예산안을 상정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밤 9시56분, 국회 본회의 속개…성난 자유한국당, ‘우리도 없는데 본회의를?’

정세균 국회의장이 밤 9시56분에 본회의를 속개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177명의 의원이 모였다. 자유한국당은 10시4분에 의총을 끝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참석 안 하기로 했다. 로텐터홀에 가서 성명서 발표하고 구호 외치고 오늘은 그걸로 끝날 것 같다”고 했다. 의원들 표결의 결과라고 했다. 그 사이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법인세 개정안이 통과됐다. 재석 177명 중 찬성 133, 반대 33, 기권 11표였다. 그러자 10시12분께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던 자유한국당 의원 70여명이 밀물처럼 국회 본회의장에 몰려들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정우택 원내대표 등은 “우리가 본회의에 안 들어온다는 말을 안 했는데 왜 본회의를 속개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삿대질을 하며 항의하는 성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정세균 의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응대했다.

“지금 들어오세요. 들어오시라고. 들어오셨으니 앉으세요. 오늘 아침 11시부터 개의했는데 그때도 여러분들이 안 들어오셨고, 그 뒤 의총하실 시간을 아침 11시부터 11시간동안 가진 거잖아요. 명분 없는 얘기예요. 항의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자, 여러분, 자유한국당 의원님 여러분들도 지금 참여하세요. 오전 11시부터 11시간 기다렸지 않았습니까.”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한 김성태·이주영 의원이 무리의 선두에 서서 목소리를 더욱 높였고 국회의장 단상 밑에 몰려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는 끝나지 않았다. 차분하게 응대하던 정세균 의장은 “참 나 기가 막혀. 이게 무슨 짓이에요?”라며 어이없어 했다. 이어 정 의장은 자유한국당의 항의를 뚫고 소득세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의장님, 창피한 줄 아세요”라고 비난했다. 김종민 더불어민주당이 단상으로 나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와글거림을 뚫고 웅변하듯이 제안설명을 마쳤고 소득세법 개정안은 재석 168명 중 찬성 161, 반대 4, 기권 3표로 가결됐다.

정세균 의장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9시에 의사일정이 합의된 거에요. 합의된 의사일정에 따라 하는데 왜 방해하는 거야”라며 자유한국당을 질책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게 국회에요? 독재하는 겁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정세균 국회의장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가 시작됐다. KBS 간판 앵커이자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민경욱 의원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세균 의장, 사퇴하라”를 외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쳤다. 10시26분 정세균 의장은 예산안을 상정한 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렀다. 민경욱 의원은 “김동철, 나가!”라고 소리쳤고 의원들은 “2중대 국민의당 빠져!”, “여당 2중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호응했다. 민주당 의원석 쪽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수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조응천 의원은 “조기총선 합시다”라고 했다. 표창원 의원이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조용히 좀 합시다! 아이들에게 부끄러워요”라고 소리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자유한국당 찍은 국민도 국민입니다. 이렇게 무시합니까?”라고 응수했다. 10시30분, 결국 정 의장은 30분간 정회를 선포했다. 본회의장을 나가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의원직 사퇴하라”고 했고 장제원 의원은 “이렇게 짓밟고”라며 눈을 흘겼다. 누군가가 ”집에 가!”라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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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5일 밤 국회 본회의 의장석에서 3당 교섭단체 대표를 불러 이야기하고 있다.

#밤 10시30분, 자유한국당 3차 의총…“반대토론 역사에 남겨야”

국회 본회의를 멈춘 자유한국당은 곧바로 3차 의총을 열었고 본회의 속개 시각인 11시에 의총은 종결됐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아무리 급해도 제1야당 의원총회 도중에 국회를 속개한다는 것은 제가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본회의에) 최종적으로 안 들어간다는 결정을 안한 상태에서 국회를 속개한 것은 의장이 잘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자유한국당이 저녁 8시에 의총을 한다고 해서 본회의 개의 시각을 늦췄다. 또 10시에 개의하기 전에 의사국에서 당연히 자유한국당에 알렸다”고 반박했다.

자유한국당은 본회의에 참석해 반대토론을 하기로 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우리가 왜 2018년도 정부예산을 반대밖에 할 수 없는가를 역사의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밤 11시3분, 국회 본회의 속개…“미래세대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밤 11시가 되자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의장님, 11시가 다 됐습니다”라며 본회의 속개를 촉구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입장하자 민주당 의원석 쪽에서 “의장님, 파이팅!”이라는 격려가 쏟아졌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원칙대로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리에 앉으며 “1시간 기다리고 하는 게 어딨어”라고 말했다. 의총 중인 자유한국당을 더 기다렸어야 한다는 불만이었다. 예산안에 대한 토론이 시작됐다. 이언주 국민의당 의원이 나와 예산안 반대토론을 했다. 국민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이번 예산안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이언주 의원 등의 반대로 찬성 당론을 정하지는 못했다. 이언주 의원은 공무원 증원을 강하게 비판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잘 했어!”라며 그를 칭찬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이만희·이철규·김광림·김종석·최교일·송석준 의원이 반대토론에 나섰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정부의 예산안으로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유일한 예산결산위원인 윤소하 의원은 “국민을 생각하면서 본회의장의 평화를 빕니다”라며 발언을 시작했고 “4대강 사업에 같은 것에 돈을 펑펑 쓰면서 미래세대를 걱정한다는 거냐”며 자유한국당에 일침을 놨다. 마지막 반대토론자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주사파 논쟁을 벌여 인지도가 높아진 전희경 의원이었다. 민주당 의원 몇몇이 자리를 비우려고 하자 장제원 의원은 “에이스야 에이스. 에이스 기용했어. 나가지 마세요”라며 만류하기도 했다.

그새 날은 바뀌어 있었다. 본회의 차수가 변경됐고 정세균 의장은 0시30분, 토론 종결과 함께 예산안 표결을 선언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사회주의 예산 반대한다”고 소리쳤다. 재적의원은 298명이었지만 찬성 160, 반대 15, 기권 3표로 예산안이 통과됐다. 자유한국당 의원 절대다수는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밀실야합 예산’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0시34분, 자유한국당 정리 집회…”막걸리나 마시러 가자”

예산안이 통과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우르르 본회의장을 빠져나왔다. 한 의원은 “에잇 열여덟. 막걸리나 마시러 가자”고 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손팻말을 들고 로텐더홀에 집결했다. 한국노총 출신 임이자 의원의 선창으로 “뒷거래 통한 야합예산 강력히 반대한다”, “재정파탄 공무원 증원 강력히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그 시각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기금운용안 의결 등 예산안 관련 후속 작업이 계속됐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자 정세균 의장은 “오늘 예산안 가결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 지키지 못했다. 그 누구보다 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할 국회가 모범 되지 못한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오늘의 결과를 타산지석 삼아 대화와 타협의 의회주의가 살아숨쉬는 국회, 새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국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0시50분 상황 종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미 뿔뿔이 흩어진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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