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감경을 쉽게 폐지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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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풀이된 논란, 주취감형

최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주취감형(술을 먹으면 형벌 감형) 폐지'가 올라왔다. 4일 마감된 이 청원은 21만여 명이 참여했다. 청와대는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30일 이내에 공식 답변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6일인 오늘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형법상 주취감경 조항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감경사항에 관해 함께 규정하고 있어 규정 자체를 삭제하는 것은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아예 음주를 심신장애 범주에서 제외하는 입법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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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에 올라온 주취감형에 해당하는 조항은 형법 제10조 제2항이다. '심신장애인'이라고 제목이 달린 이 조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하고 있다. 이 조항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2008년 12월 경기 안산시에서 8세 여아를 강간, 상해한 조두순 사건.

어린아이를 상대로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크게 분노했다. 여론은 조두순이 적절한 처벌을 받길 원했고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가 술에 취해있었단 이유로 감형을 한다.

"피고인은 술에 취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징역 12년에 처한다." - 조두순 1심 판결

이 사건이 던진 파문은 적지 않았다.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구강, 항문 등 신체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도구를 넣는 행위"에 대해 유사강간으로 처벌하는 조항(제297조의2)을 만들었고 성범죄에 한해 주취자의 감형을 제한하는 특별법 조항(성특법 제20조)도 신설했다.

문제는 신설된 특별법 조항이 주취자에 대한 형 감경을 반드시 배제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심신장애자에 대한 형 감경을 규정하는 형법 제10조는 심신미약이 증명되면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판사의 재량에 따라 적용하고 말고를 결정할 수 없다. 특별법은 이 강행규정을 임의규정으로 완화하는, 일종의 예외조항이었다.

조두순 사건 이후로도 주취를 이유로 형이 감경된 사례는 누적되었다. 2015년 10월 30일 술에 취해 흉기로 아내를 협박하고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재판부는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15년 6월에 옛 직장동료의 여자 친구를 성폭행한 30대 남성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후회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2014년 1월 대전고법 청주 형사1부는 변경된 규정을 근거로 만취 상태에서 미성년인 조카를 강간·살해한 오모 씨의 심신미약 주장을 배척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금도 주취감형 폐지법안은 국회에서 계류중

지난해 6월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은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때에는 형법 제10조 1ㆍ2항 및 제11조(심신장애인 등에 대한 감형 조항)를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부분을 ‘아니한다’로 개정하는 성폭력범죄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재판부에게 재량을 주지 않고 주취자에게는 무조건 감형을 막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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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은 아직도 계류 중이다. 법조계의 반대 때문이다. 이 반대는 법관 개개인의 견해라기보다는 현대 형법이 합의한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형법은 개인에게 형벌을 부과함에 있어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다. 범죄에 책임이 있어야 형벌을 부과할 수 있고 또 형량도 결정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14세 미만의 아동에게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 것(형법 제9조)이나, 19세 미만에게 소년법을 적용하여 형벌의 수위를 달리하는 것도 바로 이 원칙 때문이다.

판례도 이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종업원의 범죄사실에 대해 영업주의 주의의무 위반을 묻지 않고 처벌하는 수산업법 제98조 제2항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아무런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한 바 없는 자에 대해서까지 다른 사람의 범죄행위를 이유로 처벌하는 것으로서 형벌에 관한 책임주의에 반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도 비슷한 의견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기 의지대로 술을 마셨어도 범죄 의도 없이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는 범죄를 예견하면서 술을 마신 사람과는 달리 봐야 한다는 게 책임 원칙의 의미”라며 “주취 감경을 폐지하는 것은 형벌 체계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고 김진숙 변호사도 “조두순은 범죄를 예견하면서 술을 마셨다고 볼 여지가 있어 논란이 됐지만 이 때문에 형벌의 대원칙을 손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의 의견을 정리하자면 주취자에 대한 감형을 막기 위해 형법 제10조를 폐지하는 것은 '국가가 형벌을 부과하는 원칙'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하자는 입장이다. 이는 주취자에 대해 온정적인 처분을 내리자는 의견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책임주의'의 원칙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해서도 안된다는 원칙적 입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주취감형은 제10조 제2항만 있지 않아

주취자에 대한 감형이 잇따르는 문제에 대한 해결이 입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원은 형법 제10조를 통하지 않고도 주취자에 대해 감형할 수 있다. 현행 형법 제53조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작량하여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 재판부의 판단으로 형을 감경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양형에서도 주취를 고려할 수 있다. 판결문에서 '초범'이나 '뉘우침', 혹은 '우발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이유도 재판부의 양형에서 범죄인의 해명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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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형위원회는 주취감형의 문제를 인식해 2012년부터 주취 성범죄에 대하여 '범행의 고의가 없어도 만취상태에 빠지면 타인에게 해악을 미칠 소질(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만취상태를 이유로 감형을 할수 없게' 했고 '범행 후 면책사유로 삼기 위하여 자의로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하여 만취상태에 빠진 경우에는 형을 가중'하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문제는 이같은 양형기준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데에 있다. 양형위원회는 "법관은 양형 과정에서 양형기준을 존중"해야 하지만 "양형기준을 준수하여야만 적정한 양형으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음주, 성범죄에 대한 재판부의 온정주의적 판결 지양해야

재판부의 판결이 '국민 법감정'에 어긋나는 이유는 어쩌면 심신미약자에 대한 감형 조항 자체가 아니라 주취자에 대한 온정주의적 판결에 대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양형위원회의 2009년 분석 자료를 보면 강간상해 및 치상죄의 경우 ‘음주하지 않은 경우’에는 평균 형량이 31개월이지만 ‘만취한 경우’ 26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을 벗어난 성범죄는 전체에 30%에 이르렀다.

황정근 변호사는 재판부의 재량권에 대한 제한이 늘어가는 상황에 대해 "국민의 상식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며 재량권을 잘못 행사한 법조선배들이 자초한 위난이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며 "법조인은 늘 '법조인법'과 '국민정서법' 사이에서 묘수를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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