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의 마지막 생명줄, 중증외상센터엔 가난이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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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외상센터에는 가난이 숨쉰다.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센터장은 22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외상환자) 대부분의 분들이 사실 블루칼라 계층”이라며 “한 번은 어떤 언론인 분이 저희 병원에서 한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하시면서 그 환자분들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다. 정말 90% 이상이 대부분 사회 기관을 형성하는 산업, 소위 말해서 산업 현장이나 아니면 적어도 운수계통이나 그런 데서 일을 하시면서 사회를 떠받치시는 분들이었다”고 밝혔다.

치료도 결국은 ‘돈’이다. 이국종 센터장은 “외과의사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선) 경제적으로 크게 베네핏(이익)이 없으면 어떤 일에 있어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서 하지 않는 그런 경향이 있다. 외과의사들이 사실은 큰 수익이나 그런 걸 벌어들일 수가 없다”며 외상외과 치료 분야의 열악함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의료보험에서의 문제라든가 그런 것들이 다 복합적이다. 정부의 한 가지 정책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며 “국가 재정이 한계가 있는데 의료보험의 지원을 무조건 늘릴 수가 없기 때문에 참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이국종 센터장이 언급한 ‘일주일 동안 숙식을 하시면서 그 환자분들을 전수조사한 어떤 언론인 분’은 한겨레 김기태 전 기자다. 한겨레21은 2010년 11월 마지막 주,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 중증외상특성화센터와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에서 밤을 보냈다.

당시 한겨레21에 실린 두 편의 기사 “‘이 사람, 살려만 달라’ 외침에도 가난이 묻었다”, “해마다 9245명 목숨 살릴 수 있었다”를 재구성해 다시 중증외상센터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엉성하고 열악한 응급의료 시스템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기사 안 인물, 표, 인터뷰 내용 등은 모두 2010년 11월23일 기준)

“1300명이 넘는 응급환자를 수술했지만 외제차 탔다는 사람은 딱 한 명 봤다”

환자들 주변에 주렁주렁 달린 링거나 인공신장 등 온갖 의료장비를 보면, 중환자실보다 차라리 공상과학(SF) 영화의 실험실 같았다. 환자들도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 같은 느낌마저 줬다. 그만큼 환자를 둘러싸고 정글처럼 어지럽게 얽힌 장비와 기구가 많았다. 그 사이를 지나 몇 발자국 다가서야 ‘사람’들이 보였다. 비로소 동네 슈퍼마켓 아주머니나 세탁소집 주인 같은 이웃의 얼굴들이 보였다. 환자들 침상 끝에는 사고 내역과 상처 부위에 대한 메모가 있었다.

19살 권욱식 씨는 5층에서 추락했다. 뇌출혈을 비롯해 골반과 양쪽 폐, 콩팥 등 상한 신체 부위가 10곳이 넘었다. 살아 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78살의 최은순 씨는 넘어져서 의자 모서리에 부딪혀 병원을 찾았다. 72살 하영권 씨는 티코를 몰고 가다 덤프트럭과 부딪혀서 실려왔다. 간과 폐가 다 상했다.

대부분 ‘배를 열어’ 손상된 장기를 꿰매고, 장기에 필요한 응급장비에 연결한 뒤, 다시 ‘배를 덮은’ 환자들이었다. 모두 의료장비의 힘을 빌려 간신히 하루씩 삶을 연장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저승에 두 발을 모두 담갔다가, 이곳 중환자실에서 뒷자락이 잡혀 이승으로 힘없이,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는 듯했다. 교통사고, 추락, 자살 등이 사고 원인이었다. 이국종 교수는 “대부분 노동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1300명이 넘는 응급환자를 수술했지만 외제차 탔다는 사람은 딱 한 명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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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 사람, 살려만 달라” 외침에도 가난이 묻었다. 2010년 11월23일 기준.

가난한 사람이 잘 다치고 죽는다

한겨레21이 만난 환자는 사고를 당해 생계가 막막한 여성 가장이거나 사다리 작업을 하던 노동자, 정신질환자, 재중동포 등이었다.

수액이 줄줄이 연결된 딸의 주위를 노모가 맴돌았다. 아무리 서성여도 딸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를 의료진으로 착각한 그는 기자의 소매를 잡고 “어떻게든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환자인) 김씨가 사는 곳은 경기도 성남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라, 마음 좋은 분이 거의 무료로 세를 준 집에서 살고 있다. 2개의 방에는 김씨 모녀와 김씨의 두 딸이 살았다. 고1과 중2였다. 마침 시험 기간이었다. 병원에서 만난 김씨의 직장 동료 강정희(31)씨는 “두 딸에게 시험 잘 보면 어머니도 나을 거라고 말했다”고 낮게 전했다.

김씨는 남편과 10년 전에 이혼했다. 김씨의 벌이로 네 식구가 살았다. 김씨가 다치면서 네 식구의 수입은 끊겼다. 70대 노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딸이 건강하게 살아남기를 바라는 일뿐이었다. 기약하기는 암담했다.

20분 남짓한 면회 시간이 끝나갔다. 중환자실을 가로질러 환자 신우만(53)씨의 부인 함운희(53)씨가 힘없이 지나갔다. 신씨는 10월22일 회사에서 사다리로 작업을 하다가 다쳤다. 사다리가 왼쪽으로 기울어서 그도 함께 땅으로 떨어졌다. 골반과 팔뼈가 모두 부러졌다. 가까운 정형외과로 갔다가, 아주대병원으로 넘어왔다. 의식을 잃은 신씨의 얼굴은 거무스름했다. 언뜻 봐도 60대로 보였다. 병색 때문이라기보다 밖에서 오래 일한 사람 특유의 거친 피부색이었다.

아내는 회사에서 산업재해 처리를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와 상의했는지 물었다. 아직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왜 연락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우선 사람부터 살려야죠”라고 답했다. 유난히 체격이 작은 함씨가 총총히 중환자실을 떠났다. 뒷모습이 불안했다.

중증외상특성화센터 중환자실에서 모두 18명의 환자를 만났다. 이들의 일 가운데 이른바 ‘비싼’ 직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 마트 판매직, 음식점 배달부 등 서비스업 종사자가 4명이었다. 또 일용직 노동자를 포함한 생산직 노동자가 3명이었다. 무직이 2명, 학생이 2명이었고, 사무직 노동자는 1명이었다. 65살 이상 노인이 3명이었고, 나머지 3명은 직업이 확인되지 않았다.

병원 쪽에 물어보니, 18명 가운데 6명이 치료비 지급에 어려움이 있다고 입원 당시 환자 본인 혹은 보호자가 말했다. 상당수 환자는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었다.

18명이 중환자실에 실려온 사연은 달랐다. 교통사고가 많았지만, 자살과 추락, 낙상도 있었다. 대부분 그저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가로등이 없었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하필이면 사용하던 사다리가 넘어졌고, 하필이면 덤프트럭이 차를 받았다. 그저 부주의했고, 운이 없었다. 과연 그럴까? 단정하기 어렵다. 교통사고와 자살, 산재로 생기는 외상은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에게 하필 더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주거환경과 노동환경, 생활여건이 달라지면 사고가 날 확률도 높아진다.

한겨레21이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해서 받은 ‘2009 표본병원 손상유형 및 원인통계’ 자료를 분석해보면, 노동직이 외상을 입을 확률이 사무직보다 약 25% 높았다. 정최경희 이화여대 교수(예방의학)가 2008년 우리나라 사망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해 내놓은 논문에서도, 우리나라 44살 이하 국민 가운데 사망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은 ‘교통사고 등으로 생기는 외상’이었다. 각자의 사회·경제적 위치는 그 사람이 다쳐서 사망에 이르는 확률도 바꿔놓았다. 개개인의 사고를 그저 ‘드센 팔자’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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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응급실에서 2010년 이국종 교수의 모습.

“환자들이 병원장실에 칼을 들고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만 응급실을 유지한다”

아주대병원은 심야에 수술실이 여유가 있는 편이다. 병원 수술실 19개 가운데 심야나 주말에 열 수 있는 수술방이 3~4개다. 서울에서 크다는 대학병원도 심야에 수술실 문을 2개만 여는 곳이 있다. 밤에 병원을 찾는 응급환자, 더구나 수술환자는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 응급환자들은 회전율이 높지 않고, 의료 수가도 높지 않다. 병원들이 응급실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이유다. 쉬운 말로 “돈이 되지 않고, 골치만 아프기 때문에” 모든 병원에서 애물단지다. 취재 도중 만난 한 응급의학과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환자들이 병원장실에 칼을 들고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만 응급실을 유지한다.”

병원을 이미 떠났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18명 환자들이 앞으로 삶의 어느 골목에서 다시는 차에 치이거나, 건물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빌 뿐이다. 정부는 6161억원을 들여 전국에 6개 광역외상센터를 짓고 관련 의료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올해 초 발표했지만, 정작 2011년 예산안에서 이 사업에 책정된 예산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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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수술실.

한국 응급실에선, 베트남 전쟁 전사자의 2배가 죽는다

강중언(34·남·가명)씨는 지난 6월 새벽 3시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 그는 사고가 일어난 지 13분 만에 준종합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다. 정부가 전국 109개 지역응급의료센터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곳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수축기 혈압이 70mmHg에 불과했다. 맥박은 분당 120까지 올라가는 빈맥 증상이 나타났다. 매우 위험한 수준이었다. 복강 또는 골반강 안에서 출혈이 의심됐다. 반혼수상태였다. 일단 환자의 기관지에 튜브를 넣어서 호흡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료의사는 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정한 환자에게는 실시하면 안 되는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나중에 살펴보니, 뇌 촬영 결과 머리에는 미미한 손상만 있었다. CT 뒤에도 환자는 지속적인 저혈압 상태였다. 그러나 출혈 부위를 확인하기 위한 초음파 등의 검사는 없었다. 응급수술을 위한 외과 의료진과의 협진도 없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를 보면, 환자의 골반에도 골절이 있었다. 골반강 출혈이 의심됐다. 그렇지만 혈관조영술 또는 응급수술을 위한 조치가 전혀 없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지 3시간30분이 지난 뒤 수혈이 이뤄졌을 뿐이다. 환자는 아침 7시를 갓 넘어 사망했다.

2008년 정구영 이화여대 교수(응급의학) 등이 내놓은 ‘응급의료체계 성과지표에 관한 연구’ 논문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논문은 위의 강씨의 경우처럼 숨겨진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했다.

연구진은 2006년 8월부터 2007년 7월 사이 전국 20개 대형 응급실의 외상 사망 환자의 의무기록을 펼쳤다. 551건이었다. 이들의 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551명 가운데 179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179명 가운데 살릴 수 있는 확률이 75%가 넘었던 환자는 21명이었고, 25~75%였던 환자는 158명이었다. 두 집단을 합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32.6%였다.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 10명 가운데 3명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그만큼의 환자들을 죽인 것은 엉성한 우리 응급의료 시스템이었다.

이 연구 내용과 우리나라 전국 외상 사망 통계를 함께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한 통계가 나온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가 이를 계산했다. 한겨레21은 그가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지난 3월 제출한 보고서를 최영희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았다.

내용을 보면, 2007년 건강보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61만3392명의 중증 외상환자가 응급실을 찾았고, 그 가운데 사망한 환자는 2만8359명이었다. 여기에 앞서 집계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곱하면 예방 가능한 사망 건수는 무려 9245건으로 추산됐다.

응급실을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1만 명 가까운 환자들이 주검이 되어 나왔다는 말이 된다.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담한 통계였다.

회생 가능 비율이 75%가 넘었던 환자들만 골라내도 그 수는 1113명이었다. 미국 쪽 자료를 보면, 한국군이 지난 1964~73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전사자 수가 4407명이었다. 2000년대 한국 응급실에서, 베트남 전쟁 10년 동안 사망한 수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해마다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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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아주대학교병원 수술실 이국종교수가 2010년 수술 준비를 하고있는 모습.

결국은 돈이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절대 다수의 병원들이 중증 외상환자 유치에 소극적이다. 병원의 수지타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다른 과의 경우 환자들이 의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외상외과는 의료진이 환자들을 기다린다. 수요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정해진 병원 일정에 따라 환자를 받고 수술하고 퇴원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병원들은 외상외과나 응급의료과의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

또 환자가 밀려드는 3차 의료기관은 병상 가동률보다 회전율을 중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중증 외상환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치료가 필요하다. 또 신체 여러 곳이 다쳐서 온 환자들은 외상외과뿐 아니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등과 협진이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의 의료수가 혜택이 많은 것도 아니다. 가장 고된 업무를 하는 외상외과 의사들은 정작 병원에 수익을 안겨주지 못한다. 병원에서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사를 찾아온 다른 환자들과 달리, 병원에 실려온 환자들은 의사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원에서는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만 응급실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외상외과로 오는 의료인력도 드물다. 몇 안 되는 외상외과 전문의들도 갑상선이나 간암 치료 등 ‘돈이 되는’ 분야로 옮겨탔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외상 전문 외과의사로 인정받는 이는 이국종 아주대 교수나 조항주 의정부 성모병원 교수 등 다섯손가락에 꼽힌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외상외과 세부 전문의를 교육하는 병원이 없다. 이를테면 이국종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병원 외상외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외상외과 전문의들이 12년의 정규 과정을 마치고도 2년간 추가로 전문 소생술 교육을 받는다.

피해는 고스란히 중증 외상환자들에게 돌아온다. 이들이 구급차에 실려가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는 힘들다. 중증 외상환자들이 “수술방이 없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이유다. 혹시 입원할 수 있어도 제대로 된 수술을 받을 확률은 떨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