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뒤 피난민 괴롭히는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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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17일 구마모토 지진 때 일본 경찰들이 구마모토현 미나미아소의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4월 일본 구마모토 지진 때 이곳의 주요 의료기관인 구마모토시민병원은 물탱크가 부서져 환자 400명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일본 정부는 병원들에 지진이 일어나도 진료를 계속할 수 있도록 ‘사업 지속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으나, 지진 당시 구마모토 병원들의 90%는 이 계획을 정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구마모토시민병원도 수도관이 부서지면 물탱크에 저장한 물로 진료를 계속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물탱크 자체가 부서지는 경우까지 상정하지는 못했다. 입원 환자 400명은 멀리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일본 NHK 방송은 구마모토 지진이 발생한 지 1년7개월이 지났지만 지진 이후의 피해에 대한 대책이 여전히 큰 과제라고 최근 지적했다. 집이 부서져서 장기간 자동차에서 피난 생활을 한 이들은 비행기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을 겪는다. 임시주택에서 생활하더라도 피로와 스트레스로 몸이 쇠약해지기 쉽고, 특히 노인과 아이들이 취약하다.

의료 시설 파괴는 가장 큰 문제다. 히가시구마모토병원은 지진 당시 건물이 크게 손상돼 환자 46명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 대부분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고령자들인데 한동안 건물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임시방편으로 소규모 병원 이곳저곳으로 분산시켰지만 의료 인력과 시설 부족으로 다른 병원으로 또 옮겨야 했다.

NHK는 구마모토 지진의 피난생활 스트레스 등으로 숨진 ‘재해 관련사’가 많게 잡으면 192명이라고 전했다. 지진의 직접 피해로 숨진 이들의 4배에 육박하는 숫자다. 이 방송이 조사해 보니, 피난생활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73명, 병원이 부서지는 등의 의료기관 기능 저하 탓이 4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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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진이 잦지만 지진 이후 피해에 관심이 급증한 것은 1995년 고베 대지진 때부터다. ‘재해 관련사’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고베 대지진은 일본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이후 최초로 겪은 대규모 지진이었고, 피난생활 스트레스 등으로 고령자들의 건강 악화가 크게 문제가 됐다.

이후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지진 이후 피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자 일본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하지만 구마모토 지진 전 조사에서 ‘사업 지속 계획’이 실제로 정비된 일본 의료기관 비율은 10%에 그쳤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병원들이 내진 설계 강화에 우선 힘을 쏟으면서 ‘사업 지속 계획’까지 정비할 여력은 없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3월 지역 거점 병원들에는 ‘사업 지속 계획’ 정비를 의무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