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3일 만에 세월호 곁을 떠나 바람이 된 미수습자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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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미수습자 5명의 운구차 행렬이 세월호 선체를 한 바퀴 돌아 연고지로 떠나고 있다.

“혁규야~. 왜 그렇게 못 나오고 있어. 왜 못 나오냐고” 꼬마 혁규(당시 7)를 큰고모 권길순(71)씨가 애타게 불렀다. 그를 거둬줄 엄마와 아빠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가누기 어려웠다. 안타깝게 그를 부르느라 목이 메었다. 하지만 사진 속의 혁규는 가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끝내 찾지 못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이 18일 초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참사가 발생한 지 1313일 만이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18일 오전 9시50분 목포 신항 청사 2층 강당에서 양승진 남현철 박영인 권재근 권혁규 등 5명의 합동 추모식을 열었다. 애초 세월호가 거치된 부두에서 열릴 예정이던 행사는 때마침 몰아친 강풍 때문에 실내로 옮겨 진행됐다. 또 가족들이 수색 과정에서 나온 교복·가방·지갑 등 유품이나 평소 즐겨 쓰던 손때 묻은 물건들을 입관하면서 오열하는 바람에 계획된 시간보다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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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권재근·혁규 부자의 유가족이 영정사진을 만지고 있다.

추모식에는 미수습자 가족과 희생자 유가족, 진도군민과 목포시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박지원·천정배·심상정·김주영 의원, 박경민 해양경찰청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천주교·원불교·불교·개신교 등 4대 종교의식에 이어 유가족과 추모객의 헌화, 전연순 금비예술단장의 추모시 낭송 순으로 이어졌다. 가족들은 제단에 있는 아들·남편·동생·조카의 영정 앞에 국화꽃을 바치며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사무치는 그리움과 피말리는 기다림의 3년 7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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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인군 어머니 김선화씨는 아들의 영정 앞에 서자 슬픔이 북받쳐 제단을 붙잡고 오열했고, 혁규군의 큰고모 권길순씨는 애타는 목소리로 사진 속의 혁규를 잇따라 불러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목포신항을 찾은 추모객들도 끝내 빈손으로 떠나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기막힌 처지를 아파하며 소리 없이 흐느껴 식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50여분 동안 진행된 추모식이 끝나자 5대의 운구차가 세월호 선체를 한 바퀴 돈 뒤 목포신항 북문을 떠나 안산·서울 등 연고지로 향했다. 4·16가족협의회 유가족들은 이들을 배웅하는 정치인 행렬을 향해 “세월호는 사고가 아니다.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세월호 2기 특조위 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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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을 실은 운구차량이 세월호 앞을 거쳐 목포신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18~20일 사흘장을 치른다.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군, 교사 양승진씨 등 3명은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일반인 승객 권재근·혁규 부자 등 2명은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각각 장례를 진행한다. 안산으로 가는 단원고 교사와 학생 3명의 유품은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한 뒤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안치된다. 서울로 가는 권씨 부자의 유품은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에서 화장해 일반인 승객 추모관에 안치한다.

운구차 행렬이 떠나는 순간 목포신항 울타리에 매달린 수만장의 노란 리본들이 거센 바람 속에 온몸을 떨며 고별 인사를 건넸다. “이제 안녕~. 영원히 잊지 않을게. 양승진님, 남현철님, 박영인님, 권재근님, 권혁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