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경험 학생 "초점 안 맞는 안경 낀 것처럼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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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3시11분 경북 포항시 북구 포항역에 도착했다. 대합실 천장은 마치 그곳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듯 삼분의 일쯤 뜯겨 나가 있었다. 시민들은 놀란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외국 지진 보도에서나 보던 재앙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 듯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튼튼하게 지은 역 천장이 이렇게 나가떨어지다니 지진이 무섭긴 무섭네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기자에게 현장 보수를 맡은 포항역 관계자가 다가와 말했다. 그의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천장재가 금방이라도 사람들을 덮칠 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포항시 흥해읍 흥해체육관으로 이동했다. 기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곳 주민들은 여진이 올 때마다 땅의 흔들림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 느끼셨어요? 제가 지금 몸을 흔들고 있나요?” 체육관으로 대피 온 이아무개(66)씨가 갑자기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뒤에서 발만 굴러도 지진인가 싶어 심장이 두근거려요.” 이씨는 자신이 느끼는 ‘지진멀미’를 설명하려 애썼다.

운전 중 지진을 경험했다는 직장인 김아무개(34)씨도 울렁증을 호소했다. “갑자기 1차선, 2차선으로 차가 좌우로 왔다 갔다 했어요. 여진도 자꾸 겪다 보니 아무 일 없을 때도 속이 울렁거려요.”

오후 4시30분께 체육관 근처 흥해중학교로 발길을 옮겼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지진 때 과학실에 전시해 둔 생물 표본이 넘어져 깨지면서 포르말린이 쏟아져 나온 사고였다.

현장 사진을 찍으려 해봤지만 너무 눈이 매워 몇장 못 찍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학교 건물 뒤쪽 외벽이 4층 부근에서부터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게 보였다. 학교 행정실 관계자는 “아직도 충격으로 멍하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를 다니는 이경예(18)양은 “초점이 안 맞는 안경을 낀 것처럼 어지러웠다. 경주 지진 때도 경험해봤지만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익숙해질 수 없는 땅의 흔들림’이 곧 ‘규모 5.4’라는 숫자로는 다 담지 못하는 이들의 공포였다.

17일 오전 10시 포항시 북구 환여동으로 달려갔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한눈에도 무너지기 직전의 3층짜리 낡은 빌라가 들어왔다. 방 곳곳 마루에는 깨진 벽돌들이 널브러져 아수라장이었다. 옥상은 천장이 뻥 뚫려 마치 포클레인으로 내려찍어 철거하는 집처럼 느껴졌다. 언제 또 여진이 올지 몰라 황급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건물 주변에는 대여섯명의 주민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흥해중학교 대피소를 내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데 저희는 아예 집이 무너져서 갈 곳이 없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막막해요.”

그래도 포항 편의점과 마트 어느 곳에서도 사재기는 없었다. 땅이 흔들리고 집이 내려앉아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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