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에도 대학입시시험이 연기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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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으로 16일로 예정되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됐다. 수능시험이 도입된 지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학력고사를 보던 시절에도 시험이 연기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는 시험지가 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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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수험생들이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시험을 보고 대학에 지원했다. 사건이 발생한 건, 1992년 1월 21일 후기 대입학력고사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보관 중이던 시험지 박스가 뜯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21일 오전 7시 40분께 대학 구내를 순찰 중이던 당직 근무자가 문제지가 보관돼 있던 본관 1층 전산실 출입구 봉인이 뜯어지고 문제지 상자가 파손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사 후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전과목 시험지가 1부씩 도난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서울신학대학은 대학입시 관리규정과 달리 문제지 보관소에 철야경비를 세우지 않았고, 교육부에서 파견된 감독관도 자리를 비웠던 상태”였던 것으로 나왔다.

이 사건의 후폭풍은 컸다. 먼저 후기 대입학력고사 날짜가 연기됐다. 그냥 시험이 연기된 게 아니다. 이번 포항 지진으로 인한 시험 연기는 시험날짜만 연기된 것이지만, 1992년 그 사건은 시험 문제 출제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합숙중이던 출제위원들은 다시 시험 문제를 연구했다. 시험은 약 20일 후인 2월 10일에 치러졌다. 그리고 교육부 장관과 중앙교육평가원장이 해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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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사건 발생 2일 만에 시험지를 훔친 범인이 밝혀졌다. 그는 “사건 당일 본관 경비를 맡았던 경비원 정모씨”였다. 경찰은 진술이 엇갈리는 정씨를 추궁했고, 결국 그는 범행일체를 자백했다. 숙직실에서 잠을 자다가 새벽에 혼자 일어나 전산실로 들어가 문제지를 빼냈다는 것. 이후 훔친 문제지를 주머니에 넣고 근무하다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문제지를 모두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범행 동기에 대해 그는 지인을 위해서였다고 진술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알게된 친구가 있었고, 이 친구의 딸이 당시 서울신학대에 지원했다는 것. 그런데 이 친구의 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친구의 딸이 시험을 잘 봐서 장학금을 받게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단독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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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5일에는 경비원 정씨가 과거 다니던 직장에서 횡령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피해자들의 고소로 범죄사실이 밝혀지면서 도피생활을 해왔다는 것.

경비원 정씨가 자신의 단독범행을 주장한 지 6일 후인 1월 29일에는 당시 서울 신학대의 경비과장이었던 조모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는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조씨는 경찰조사에서 경비원 정씨가 친구의 딸을 위해 입시원서를 대신 접수했었다고 말했고, 이 진술은 정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단서가 되었다.

사건은 경비원 정씨가 진범이 맞는가란 방향으로 흘러갔다. 정씨의 자백에는 신빙성의 문제가 있었다. 그가 진술한 범행동기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검찰은 1월 31일, 일단 정씨의 과거 범죄인 횡령혐의만 가지고 별건 구속 송치했다. 이후 수사를 통해 시험지 절도 부분에 대해 추가 기소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해 3월, 경비원 정씨는 검찰조사에서 새로운 진술을 했다. 자살한 경비과장 조씨가 시험지를 훔쳤다는 것이다. 정씨는 검찰조사에서 “사건이 발생하기 9일 전인 지난 1월 12일, 조씨가 다방으로 나를 불러내 후기대 입시 전날 새벽 시험지가 보관돼 있는 전산실로 누군가 갈테니 잘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으며 “또 사건 당일 조씨가 전산실에 나타나 시험지를 직접 가져갔다”고 진술했다. 또한 “사건 당일 오전에는 조씨의 동생이 다른 40대 남자와 함께 학교롤 찾아와 형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4월, 당시 ‘동아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경비원 정씨로부터 “경비과장 조씨가 훔친 문제지를 자신의 동생에게 건네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또한 이때 정씨는 “조씨로부터 범행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4천만원의 사례를 약속받았고 사건 당일 조씨의 지시에 따라 현관 유리창을 각목으로 깨 외부인의 소행으로 범행을 가장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하지만 정씨와 조씨의 동생은 대질신문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주장했고, 검찰은 범행을 입증할 물증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결국 검찰은 시험지 절도 혐의에 대해 추가 기소를 하지 못했다.

이후 이 사건은 사실상 영구미제가 되었다. 1992년 7월, 법원은 경비원 정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혔다.

“피고인이 시험지도난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나 검찰이 기소하지 않아 횡령부문에 대해서만 판결한다. 피고인의 횡령부문에대해서는 금액이 많지 않고 개인이득을 위한 범행이 아니므로 이같이 선고한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후인 1993년 1월 20일, ‘동아일보’는 시험지 도난 사건 이후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경비원 정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집으로 가지않고 바로 경기도 내 모 기도원으로 가서 한달 동안 은둔생활을 했으며 이후 부천시내의 가구공장에 취직했다고 한다. 자살한 경비과장 조씨의 가족들은 학교 관사를 떠났다. ‘동아일보’는 “당시 담당검사들은 대부분 전출한 상태”였다며 “결정적인 증거물이나 제보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원점에서의 재수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이 사건은 기억속에 묻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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