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남자와 엄청나게 다른 '82년생 김지영 6명의 인생'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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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houette of woman using digital tablet device in city at night, with illuminated and blurry commercial skyscrapers in the background. | d3sign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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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디자이너로 12년간 일해온 이수경(가명·35)씨는 지난달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 직장이 있는 제주도로 이사 갔다. 그는 3년 전 결혼한 뒤 주말부부로 살며 첫아이를 낳았다. 직장을 계속 다니려고 친정엄마와 살림을 합쳐 도움을 받았다. 계획에 없던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6개월간 더 버티다가 결국 이씨는 두 손을 들어버렸다. “회사와 가정, 모두 충실하지 못한 거 같아 자책감에 시달렸어요.”


이씨는 원래 디자이너로 계속 일할 작정이었다. 둘째를 낳기 석달 전부터 3살이 된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냈던 것도 그래서였다. 출산휴가가 끝난 뒤엔 친정엄마가 집에서 둘째를 돌보는 동안 첫째는 이씨가 다니는 직장 어린이집에 맡겼다. 하지만 아이가 아플 때면 일상이 무너져내렸다. “방과후에 언니, 오빠들이랑 놀면서 전염병에 걸려 오는 거예요. 아프면 어린이집을 일주일 이상 못 가는데 친정엄마가 두 아이를 돌볼 수가 없잖아요. 연차를 냈죠.” 끌어모을 연차도 더이상 없을 즈음, 이씨는 회사 동료들의 눈칫밥을 먹다가 사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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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82년생 여성이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겪은 성차별을 그려낸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이씨와 같은 수많은 ‘김지영들’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김지영들’은 성별에 따른 교육기회의 차별이 거의 사라진 시대에 태어나 고학력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두명 중 한명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포기한다.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성취감은 사라지고 자존감은 무너져 우울감에 시달린다. 직장을 계속 다니더라도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며 육아 책임자로서 하루하루 버텨내며 살아간다.

14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낸 ‘82년생 여성의 노동시장 실태분석’ 보고서를 보면, 올해 만 35살인 82년생 김지영들의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통계청의 2016년 하반기(10월 기준) ‘지역별 고용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한겨레>는 82년생 여성 6명을 만나 김지영들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 기혼여성 둘 중 한명은 경제활동 안 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82년생 여성 중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는 24만8천명으로 남성(41만3천명)과 16만5천명이나 차이가 난다. 82년생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93.4%이지만, 여성은 59.8%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특히 결혼한 82년 여성(30만7천명)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1%로 미혼(84.8%)이나 이혼·사별한 여성(83.4%)보다 훨씬 낮았다. 이는 전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52.6%)은 물론 70년생 여성(71%)이나 58년생 여성(57.1%)에 견줘서도 낮은 수준이다.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김지영들(16만7천명)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응답자의 31.6%가 ‘육아’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교육·기술·경험이 부족해서’(20.4%) ‘원하는 임금·근로조건이 맞는 일자리가 없어서’(18.3%) ‘전공이나 경력에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11.3%)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20대 중후반(25~29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5%에 이른다. 결국 김지영들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뚝 떨어진 것은, 여성이 30대에 들어선 이후 결혼·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 현실을 드러낸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의류업체에서 광고·홍보 등 마케팅 업무를 맡아 7년간 일했던 차지현(가명·35)씨는 2012년 결혼 뒤 이직을 시도하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다. “처음 마케팅팀에서 일할 때 팀장도 여성이었고 성차별을 거의 못 느꼈어요. 일도 재밌고 성과도 좋아서 계속 일할 줄 알았죠. 결혼했다는 게 (직장을 옮기는 데) 마이너스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실제로 그는 5곳에 이력서를 냈는데 ‘기혼’이라고 밝힌 3곳은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력서에 ‘기·미혼’을 표시하는 칸이 없었던 2곳은 서류를 통과했지만 출산과 양육이 걸림돌이었다.


“면접에서 한 회사는 마케팅팀에 기혼자가 한명도 없어서 기혼자가 (경력으로) 들어오면 다른 팀원들이 이해해주기 쉽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더라고요. 다른 회사 대표는 곧 아이가 생기지 않느냐, 어떻게 할 거냐고 대놓고 묻고요. 대외적으로는 결혼도 출산도 장려하는 회사였는데 참 아이러니하죠.” 차씨는 재취업을 포기했고 2014년 첫째 아이가, 2016년 둘째 아이가 태어나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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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많고 임금도 낮다

문학치료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 병원의 신경정신과에서 2년간 상담사로 일해온 최순정(가명·35)씨는 2014년 결혼 5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시험관 시술로 힘겹게 아이를 얻었는데 조산 위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임신 8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전업주부의 삶은 힘들었다. “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커요. 아무리 일해도 성취감이 없고 만족스럽지가 않죠. 자존감을 잃어가고 우울한 감정이 밀려와요.”


아이가 3살이 돼 어린이집에 보내고 최씨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상담사를 지원했는데 시간제를 원하다 보니 임금도 낮고 처우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남편이 육아를 돕겠다고 하지만 미덥지가 않아서 전업으로 일하는 게 두렵다고 최씨는 말했다. “그래도 전문직이어서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거예요. 은행 다니던 엄마들은 일자리가 마트 판매원밖에 없다고 해요.”

김지영들은 취업을 하더라도 기간제와 임시일용직 등 비정규직이 남성보다 많았다. 82년생 여성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은 67.4%, 비정규직은 32.6%였다. 반면 같은 나이의 남성은 정규직(78.9%)이 비정규직(20.2%)을 크게 웃돌았다. 근속기간·노동시간 등을 따지지 않고 단순 비교할 경우, 김지영들의 월평균 임금은 219만원으로, 82년생 남성(286만원)보다 67만원 적었다. 남성 임금을 100만원이라 할 때 여성 임금은 76만6천원에 그친다. 정규직은 249만원, 비정규직은 158만원으로 남성보다 각각 54만원, 62만원 적었다. 저임금(중위임금의 3분의 2인 월평균 133만원 미만)을 받는 82년생 여성은 임금노동자 중 19.5%에 이르는 반면 같은 나이의 남성은 저임금 비중이 4.5%에 그쳤다.

■ 성희롱에 차별적 기업문화도 다반사

일터에선 성차별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양수미(가명·35)씨가 첫 직장으로 일했던 출판사에서는 낙하산으로 들어온 이사가 20대 여성 직원들 앞에서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더니) 안경이든 뭐든 여자는 벗으면 다 예쁘지” “책과 여자는 자빠뜨려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식이었다. 양씨는 2년간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사의 발언을 들은 동료 직원들에게 확인서를 받아 사표와 함께 사장에게 제출했다. “김지영도 생각만 하고 말하지 못했잖아요. 나도 그랬어요. 요즘 ‘미투 운동’처럼 그때 용기를 내서 (이사한테 직접) 말할걸 후회스러워요.”

11년간 대기업에서 근무한 박수연(가명·35)씨는 허드렛일은 여성에게, 분석적 업무는 남성에게 주는 기업 문화에 익숙하다. 업무상 성차별이 반복되면 ‘열심히 해봤자 안 된다’는 패배감을 느끼게 된다. 결혼과 출산 이후엔 일과 가정을 양립하느라 하루 종일 동동거린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낮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칼퇴근하면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돌보는 것이다.


“결혼해서 남성은 변화하는 게 없지만 여성은 모든 게 바뀌어요. 나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 머리를 굴리면서 가정과 일을 꾸려가죠. 하지만 남편은 일에만 집중하니까 억울하고 화가 나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정경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양질의 일자리는 남성이 장시간 일하고 여성이 전업주부이거나 육아와 일을 모두 해내는 슈퍼맘을 전제로 하지 않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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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년생 ‘김지영들’의 미래는

82년생 김지영들의 미래는 어떨까. 띠동갑인 70년생, 58년생 여성의 노동을 보며 짐작해봤다. 우선 여성 임금노동자의 5대 직업을 보면, 82년생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경영 관련 사무원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회계 및 경리사무원, 문리·기술 및 예능강사, 행정사무원, 매장판매 종사자로 나타났다. 그러나 70년생의 1위 직업은 매장판매 종사자였다. 회계 및 경리사무원은 여전히 2위였지만, 경영 관련 사무원은 3위로 내려앉았다. 대신 음식서비스 종사자, 제조 관련 단순 종사자가 5대 직업으로 진출했다. 58년생은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이 가장 많았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도 나이가 들수록 커졌다. 70년생 여성(188만원)과 남성(356만원), 58년생 여성(144만원)과 남성(312만원)의 임금 격차는 168만원으로 82년생(67만원)에 견줘 2.5배나 많았다. 그 결과 70년생 여성 노동자의 33.7%, 58년생 여성 노동자의 56.1%가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정경은 연구위원은 “82년생 여성은 70년생이나 58년생에 비해 4년제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가 많은데 앞으로도 여성에게 육아와 가사노동 또는 비정규직 노동을, 남성에게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양성평등적이고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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