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인터뷰]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 생각하는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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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 어게인’(원제 : Home Again)은 제목 그대로 집으로 돌아온 여성에게 사랑도 다시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유명한 영화감독과 영화배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앨리스(리즈 위더스푼)는 이혼 후, 아버지의 자취가 남겨진 L.A의 저택으로 이사를 온다. 그녀의 나이는 이제 40세. 생일날 친구들과 파티를 가진 그녀는 이곳에서 할리우드 드림을 품고 L.A에 온 3명의 청년을 만난다. 그리고 이 청년들과 한집에서 살게 된다. 그들 중 일부는 앨리스의 일상을 돕고, 또 일부는 앨리스가 잊고 있던 로맨스를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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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어게인’은 영화감독 찰스 샤이어(‘나를 책임져, 알피’, ‘페어런트 트랩’)의 딸인 헬리 메이어스-샤이어가 연출한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그녀의 아빠보다 엄마 이름이 떠오른다. 바로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 주연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2003)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낸시 마이어스 감독이다. 그녀는 ’왓 위민 원트’와 ‘사랑은 너무 복잡해’, ‘인턴’ 등을 통해 여성의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온 여성 감독이자, 1980년 ‘벤자민 일등병’을 시작으로 ‘베이비 붐’, ‘신부의 아버지’, ‘아이 러브 트러블’ 등 흥행작의 각본을 쓴 사람이며 할리우드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던 이름이기도 하다.(여섯편의 장편영화로 평균 1억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이중 네 편이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핼리 메이어스-샤이어는 분명 자신의 어머니를 롤모델로 삼고 영화란 세계에 진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데뷔작 또한 낸시 마이어스의 영향 아래에 있다.

nancy meyers헬리 메이어스-샤이어(왼쪽)와 낸시 마이어스


통계에 따르면,  2016년의 흥행작 100편 중에 여성 감독의 연출작은 4.2%에 불과했고,
여성 작가의 작품은 12.2%였다. 인종, 성별, 성적지향의 다양성 문제에 있어서 할리우드는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적이 없다. 자신의 영역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성공시켜온 여성 각본가이자, 감독인 낸시 마이어스의 이름이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띄는 이유다. 그는 이제 막 할리우드에 이름을 드러낸 딸에게 엄마이자, 선배로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여성문제에 대해 어느때 보다 관심이 높은 할리우드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서면을 통해 낸시 마이어스에게 물어보았다.


- ‘러브, 어게인’의 구성에서 자연스럽게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설정이 떠올랐다. 사실 ‘사랑은 너무 복잡해’도 그렇고, 넓게 보면 ‘인턴’의 설정도 비슷하다. 여성이 점유하는 공간에 (그리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찾아오고, 그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며 그와 사랑하게 되거나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이다. ‘인턴’에서도 줄스가 처음부터 나이든 인턴사원인 벤 휘태커를 반겼던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이 영화의 각본은 당신의 딸인 핼리 메이어스-샤이어가 각본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 딸이 이 아이템을 가져왔을때, 당신의 첫 반응은 무엇이었나? 혹시 딸은 엄마의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 전혀 생각하지 못한 연결이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다이앤은 자신의 집에서 우연히 잭을 만나게 된 경우이고, ‘러브, 어게인’에서는 리즈 위더스푼이 세 명의 청년들을 초대하는 점이 다르다. 물론 말하는 포인트가 뭔지 알겠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과 ‘러브, 어게인’ 모두 주인공의 집을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여주인공이 그 집에 머무는 게스트들과 사랑에 빠지는 점에서 비슷한 포인트가 있다고 하는 것 같다. 딸이 처음 가져온 ‘러브, 어게인’ 각본을 읽은 후에, 웃기고 따뜻하고 영리하고 또 독창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헬리 마이어스가 자랑스럽다.

- ‘러브, 어게인’ 을 비롯해 당신이 직접 연출한 영화들에서도 눈에 띄게 드러나는 건, 엄마와 딸의 관계다. 당신의 딸은 어렸을 때 부터 당신이 연출하거나, 찰스 샤이어가 연출한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딸이 부모와 같은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했을때, 당신이 영화감독 선배로서 한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리고 엄마로서 딸에게 한 조언이 있다면?

= 촬영 진행 과정에서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헬리 마이어스에게 내 도움을 필요하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헬리가 내게 시나리오를 주면서 충고를 해달라길래, 읽은 뒤 조언을 해줬다. 이후에는 내게 프로듀서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 처음 감독 데뷔를 하게 되면 갖춰야 할 지식이나 노하우가 많아야 하는데 사실 헬리에게는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촬영을 하는 동안 내가 도움을 주기로 했고, 또 그녀가 원하는 대로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단지 내가 한 일은, 그녀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녀의 귀에 내 생각을 슬쩍 말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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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딸이 이제 막 영화감독으로 데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당신이 할리우드에 데뷔하던 때를 많이 떠올렸을 것 같다. 당신은 1980년에 ‘벤자민 일등병’의 각본가로 데뷔했는데, 첫 연출작은 1998년에 만든 ‘페어런트 트랩’이었다. 무려 18년이 걸린 것이다. 연출자로서의 생활을 일부러 미룬 것인가? 아니면 도전했지만 기회가 늦게 찾아온 것인가? 이 상황에서 여성으로서 겪었던 어려움도 있었다면 어떤 거였나?

= 사실 1998년도까지는 연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시나리오 작업과 프로듀서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족을 챙겨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꽉 찬 인생이었다. 그런데 헬리가 10살이 되면서 연출에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내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아줬고, 현장에서 여러모로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그때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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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때와 비교할 때, 지금의 할리우드는 어떻다고 보나? 그때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보는지.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나아졌다고 보는가. 참고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할리우드 흥행작 100편 중에 여성 감독의 연출작은 4.2%에 불과했고, 여성 작가의 작품은 12.2%였다.

= 지금 할리우드는 ‘재미’가 부족한 것 같다. 이 곳에서 일하는 건 늘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반면에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자유인 셈인데 지금은 그런 점들이 안 보인다.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메이저 스튜디오를 포함해) 모두가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급된 여성 감독/작가의 작품과 관련 통계는 참혹하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여성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커뮤니티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저널리스트 역시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루고 있다. 점점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 그동안 당신은 영화에서 주도권을 가진 여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할 때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 그렇다, 나는 주로 강인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제작사로부터 큰 지지를 받으면서 작업을 했다. 또 흥미롭게도, 지난 몇 년간 강한 여성 리더들이 있는 제작사들이랑 같이 일을 했는데, 그들은 나를 믿고 많은 기회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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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직접 연출하는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한국에는 당신의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 많다. (‘인턴’도 상당한 흥행을 기록했다.) 차기작에서는 어떤 인물을 그릴 예정인가?

= 아직 차기작 계획은 없다. ‘인턴’이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사실을 다시 들려줘서 고맙다. 그 영화가 잘 돼서 정말 행복하다. 이제는 내 영화가 쉽게 제작될 거라고 단언하지 못하겠다. (‘인턴’의 벤처럼) 나 역시 은퇴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할리우드의 환경도 많이 바뀌었고, 80년대 이후 꾸준히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 생각한다.

- 패티 젠킨스 감독이 ‘원더우먼’을 연출했고, 크게 성공했다. 여성 영화감독이 슈퍼히어로 영화를 연출한 흔치 않은 사례다. 만약 당신에게 슈퍼히어로 영화를 연출할 기회와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떤 슈퍼히어로를 선택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 이유는?

= 슈퍼히어로 영화를 연출하거나 프로듀싱 하고 싶지는 않다. 내 타입이 아니다. 내게는 ‘인턴’ 에 나오는 로버트 드니로가 슈퍼히어로이다. 실생활에서의 보통 사람들이야말로 더 큰 슈퍼파워를 갖고 있고, 더 흥미롭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현실에서 영감을 받는다.

영화 '러브, 어게인'은 오는 11월 1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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