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좋아하는 상속녀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는 어떻게 과학수사의 어머니가 되었나

게시됨: 업데이트됨:
인쇄

frances glessner lee

1944년 4월 11일, 가정주부 로빈 반스가 자기 집 부엌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반스의 시신은 반쯤 열린 냉장고 앞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의 남편 프레드가 밖에서 일을 보고 돌아와 보니 집의 문과 창문은 전부 안에서 잠겨 있었다. 프레드는 창문을 통해 바닥에서 아내의 시체로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로빈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단 로빈은 고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가 만든 가상의 캐릭터, 인형이라는 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 스미소니언에 의하면 리는 미국 최초의 여성 경찰청장이었으며, 동시대의 탁월한 범죄학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리는 로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로빈은 리가 강력계 형사들에게 범죄 현장 평가를 가르치기 위해 만든 세밀한 디오라마의 소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리는 오늘날 ‘과학수사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다. 과학수사에 대한 리의 공헌은 다양하지만, 특히 가엾은 로빈과 같은 소름끼치는 디오라마 제작에 대한 흥미가 잘 알려져 있다. 리는 평생 굉장히 자세한 가정 범죄 현장 모델을 20개 제작했다. 가로 세로 높이는 약 3~60cm 정도였다. 실제 범죄 현장 사진, 목격자 증언, 그외 금세 사라지는 흔적들에 기반했으며, 지금도 경찰 훈련에 사용된다.

1878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리의 아버지는 성공한 농기계 사업가였다. 어렸을 때부터 살인 미스터리, 특히 셜록 홈즈의 모험이라면 사족을 못 썼지만, 리는 소설을 읽을 때 외에는 조용한 삶을 살았다. 리의 어머니는 일기에 딸이 “나는 인형과 신 말고 친구가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어렸을 때 리 남매는 홈스쿨링을 했으나, 부모는 아들은 하버드에 보낸 반면 리를 19세에 결혼시켰다. 결혼 생활 동안, 세 자녀의 어머니가 되고 나서도 리는 범죄 과학수사라는 이루기 힘들어 보이는 커리어를 꿈꿨다. 일부 친구들에게 이를 털어놓았을 때,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리는 이혼했고, 1930년에 남자형제가 사망하자 당시 52세이던 리는 마침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뛰어들 수 있었다. 리는 전적으로 투신했다.

1931년, 가족의 재산을 물려받은 리는 두둑한 유산을 사용해 과학수사의 세계로 들어갔다. 먼저 하버드에 미국 최초의 법의학과를 만들었다. 3년 뒤에는 이 학과에 책과 원고를 기증했는데, 후에 이는 매그래스 법의학 도서관이 된다. 1936년에는 25만 달러를 더 기증했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 가치로는 440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성장하기 시작하던 과학수사 분야에 들어가는데는 리의 후원도 도움이 되었지만, 정규 훈련이나 대학 학위도 없던 리가 여성 최초로 뉴햄프셔 주 경찰 청장이 된 것은 리의 엄청난 지식과 특이한 기술 때문이었다(이 직함은 가끔 ‘명예직’으로 불리기도 했다). 뉴햄프셔 주에서 리는 경찰청 교육부장직도 맡아 세미나와 훈련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디오라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frances glessner lee

리는 1940년대부터 직접 만든 디오라마를 사용해 강력계 형사들에게 범죄 현장에 들어갔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를 가르쳤다. 이를 ‘원인불명사의 모형 연구(Nutshell Studies of Unexplained Death)’라 불렀으며, 이 목적은 “범인을 기소하고, 죄없는 사람을 풀어주고, 모형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이 모형들은 인형의 집이 아니다.” 볼티모어 수석검시관의 보좌관인 브루스 골드파브가 허프포스트 인터뷰에서 말했다. 골드파브는 1990년대에 언론인으로서 리의 작업들을 취재하며 처음 접했다. 그가 지금 1966년부터 디오라마들을 보관해둔 건물에서 경찰들에게 현장 관찰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는 건 우연의 일치다. 1966년 이전에는 하바드에서 보관했다.

“검시관이 범죄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경찰이 이미 다녀간 뒤라는 게 문제다. 물건들을 옮기고, 피를 밟고 걸어다니고, 시체에 손을 댄 이후다. 증거를 파괴하고 수사를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범죄 현장에 처음 들어가는 경찰들을 제대로 훈련시키자는 게 리의 아이디어였다. 얼룩, 구겨진 시트,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증거가 될 수 있는 물건으로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실제 범죄 현장에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차선책은 작은 범죄 현장을 만드는 것이다.” 페이스북 라이브에서 디오라마들을 보여주며 그는 이들을 “1940년대의 가상 현실”이라 불렀다.

frances glessner lee

오늘날까지도 매년 볼티모어 수석 검시관실이 여는 6일짜리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 살인 수사 세미나’에서 형사들은 리의 디오라마를 사용한다. 형사들을 몇 개 팀으로 나누어 모형 하나씩을 배정해주고, 해당 현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참가자들은 미니어처 세계에 들어간다고 상상하며 그 세계에서 벌어진 일을 파악하려 애쓴다.

로빈의 디오라마를 예로 들어보면, 리는 시각적 단서를 여럿 남겨놓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부엌으로 들어가는 두 문의 틈은 신문으로 막혀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시체만 빼면 전반적으로 깔끔한 주방 안에 좀 헝클어진 것들이 있다. 창가의 식탁보가 한쪽으로 처져있다. 누가 탈출하다가 건드렸을까? 도마가 떨어질락말락 하고 있다. 혹시 도마가 살인무기인가?

각 모형에는 ‘해답지’가 있다. 리가 짠 섬뜩한 시나리오의 단서들을 자세히 설명한 종이다. 해답지가 든 검시관 사무실 서랍은 열쇠로 잠겨있다. 골드파브도, 심지어 수석 검시관도 해답지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 해답은 어떻게 벌어진 사건인지 고전 추리소설처럼 명쾌하게 결론내려주지는 않는다. 디오라마 미스터리의 목적은 해결이 아니다.

frances glessner lee

두 개를 제외한 리의 모형 전부가 현재 스미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의 렌윅 갤러리에서 ‘살인은 그녀의 취미: 프랜시스 글레스너 리와 원인불명사의 모형연구’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이다. 리는 자신이 아티스트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범죄학에 엄청난 기여를 했던 리로선 아직도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정작 모형이라는 사실을 신기해 할 것 같다고 골드파브는 추측한다. 하지만 한 번 보기만 하면 사람들이 리의 작업에 홀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 모형들은 현실적인 시체가 있다는 묘한 점만 빼면 예쁜 가정집 미니어처를 닮았다. 안전하고 따뜻할 것 같은 가정에 들어갔는데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력의 흔적이 남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실제처럼 트라우마를 주지는 않는다. 너무나 현실적인 모형이라 이러한 감각은 더욱 강해진다. 리가 각 모형을 만드는데는 약 삼 개월이 걸렸으며, 비용은 3~6천 달러가 들었다. 현재 가치로는 5만 달러가 넘는다. 모형에는 전기가 통하고 문은 움직인다. 카펫에는 얼룩이 있고, 신문은 그 날의 1면을 정확히 재현했으며 진짜 담뱃잎이 든 담배는 실제로 태운 것이다.

시체는 도기 인형 머리와 신체 부위를 사용하고 세심하게 조작해 진짜 피해자와 닮게 만들었다. (스미소니언 관리 위원 에이리얼 오코너는 애틀랜틱에 “사후경직 인형을 팔지는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시체의 위치는 디오라마의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죽었는지, 살해 후 옮겨졌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목을 맨 시체 인형의 경우 납을 주입해 실제 시체의 처진 모습을 닮게 만들기까지 했다.

frances glessner lee

“리는 피해자의 사회적 지위와 사망 방법을 표현하기 위해, 인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아주 꼼꼼하게 따졌다. 인형이 특정색으로 변색되었다면, 그건 과학적으로 정확한 것이다. 리는 일산화탄소 중독의 영향을 재현한 것이고, 사후경직이 일어났을 때를 감안해 자세를 잡았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 노라 앳킨슨이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정확하고 교육적이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기도 한 3차원 세계를 만든 리의 창의력은 대단했다. 예를 들어 ‘욕실’이란 제목의 모형의 물고기 무늬 벽지는 리의 집의 벽지와 완벽하게 똑같았다. ‘거실’이라는 모형의 벽난로 위에 걸 작디작은 그림을 주문하기도 했다. 리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셜록 홈즈 책의 모형을 놔두기도 했다.

소파와 옷에 쓰인 천의 상당수는 리가 직접 손바느질 한 것이다. 리는 자신이 재현하는 시대의 진짜 빈티지 물건들을 사용했다. 소품으로 사용할 천으로 옷을 만들어 직접 입기도 했다. 사람이 입던 옷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피는 빨간 매니큐어로 표현했다. 범죄 현장에서 정보가 되는 피가 튄 모습, 고인 모습도 정확하게 재현했다.

스미소니언 전시 관람자들에겐 돋보기와 손전등을 지급해 끔찍한 디테일을 낱낱이 살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게 해줄 것이다.

frances glessner lee

리는 1962년에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바드 과학수사 프로그램 자금 지원이 끊겼고, 이 커리큘럼은 곧 사라졌다. 모형들이 어떻게 될지 불확실했으나, 하바드의 러셀 피셔 교수가 메릴랜드 수석 검시관을 맡게 되자, 그는 디오라마들을 가져와 훈련 교재로 활용했다.

그녀는 진정한 범죄학자이자 경찰청장이었지만(골드파브는 그녀의 직함이 ‘명예직’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매체에서는 리를 살인에 관심이 많은 괴짜 할머니로 묘사하곤 했다. 뉴욕 타임스에 실린 리의 부고에서는 “범죄의 권위자가 된 증조할머니”, “현실의 미스터리에 엄청난 관심을 가진 부유한 과부”라는 표현을 썼다.

심지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전시에 ‘살인은 그녀의 취미’라는 제목이 붙었다는 것은 리가 어떻게 희화화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리는 별난 괴짜 과부로 취급된다. 하지만 리는 당대 최고의 범죄학자 중 하나였다. 나이가 50~60세만 아니었더라도 훌륭한 탐정이 되었을 것이다. 리는 그저 괴상한 할머니가 아닌, 최고 수준의 전문가였다.” 골드파브의 말이다.

리의 이야기에 그녀와 남성과의 관계가 따라붙는 것 역시 골드파브는 문제삼는다. 남자 형제 때문에 범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느니, 매사추세츠 주 서포크 카운티의 검시관이던 친구 조지 버제스 매그래스 때문이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이거다: 이 여성이 무언가에 관심이 생겨서 실제로 그 일을 했다. 그런데 늘 더 큰 설명이 따라붙는다. 이야기 속에 꼭 남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게 나는 화난다.”

동시에, 리가 혁명적이긴 했지만 골드파브는 리를 페미니스트로 묘사하는 것은 경계한다. “나는 리가 젠더 정치학에 발을 들였던 적이 있을리라 보지 않는다. 그녀로선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관심사를 따랐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깨닫고 그걸 해결한 것이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발언을 한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리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그런 일들을 했는지에 대해 단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싶은 유혹은 존재한다. 괴상한 상속녀, 섬뜩한 할머니, 몰래 작업하는 아티스트, 교활한 페미니스트. 하지만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넓게 퍼져있다. 리의 디오라마는 형사들에게 관찰 기술을 알려주기도 했고, 넘겨짚으면 위험하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보내기도 한다. 한 모형에서는 나이 든 여성이 목을 맨 채 죽어있고, 옆에는 웨딩 드레스를 입은 장난감과 편지 뭉치가 놓여있다. 노처녀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내렸다고 추리하고 싶어지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른 단서들을 보면 그건 사실이 아니다. 리의 모형은 형사들이 자기 자신의 편견을 이해하고, 자신의 성향이 전체 그림을 보는 시각을 방해할 수 있다는 걸 깨닫도록 훈련시켜준다.

이 교훈은 리의 인생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frances glessner lee

허핑턴포스트US의 How A Doll-Loving Heiress Became The Mother Of Forensic Science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kakao

수정 사항 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