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스페이시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 '반 아웃팅' 정책이 더 위험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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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SPACEY
U.S. actor Kevin Spacey poses during a media event to promote his latest movie "Margin Call" in the auditorium of the newly opened Niemeyer Centre, a cultural complex designed by Brazilian architect Oscar Niemeyer, in Aviles, northern Spain September 26, 2011. REUTERS/Eloy Alonso (SPAIN - Tags: ENTERTAINMENT) | Eloy Alonso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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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에디터 겸 기자, 컬럼니스트로 활동하던 나는 유명인들의 성적 지향에 대해 보도했다는 이유로 여러 매체와 LGBT 커뮤니티의 비난을 받았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 더 큰 이야기가 따라나올 때였기 때문이었다. 타임스는 이런 것을 ‘아웃팅’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저 보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단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적 지향이 기사와 왜 관련이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기사의 대상이 게이, 혹은 양성애자임을 숨기고 있는, 반 게이 정책을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자일 경우가 있다. 반 엔터테인먼트에서 유명한, 공인이라 해도 좋을 프로듀서나 이사가 LGBT를 주장하는 아티스트나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한편 권력이 있지만 커밍아웃하지는 않은 게이 혹은 양성애자 남성이 자신보다 취약하며 커밍아웃하지 않은 남성 직원을 상대로 성희롱이나 학대를 했을 때, 뉴욕, 헐리우드, 워싱턴의 매체에서는 여전히 그들을 칭송했다.

지금은 없어진 아웃위크 잡지, 에드버킷에서 일하면서 내가 썼던 기사들은 존경받는 주요 뉴스 매체의 에디터와 기자들에게는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로 여겨졌다. 인터넷이 있기 전, 적절하고 용납 가능한 저널리즘이 무엇인지는 그들이 정했다. 그들은 동성애혐오에 따른 이중잣대를 적용했다. 이성애자인 공인의 연애와 성 생활은 받아들여질 수 있고 미화되기까지 했다. 그와 연관된 대단한 이야기가 없을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LGBT 운동이 모든 분야에서 소리높여 평등을 요구할 때, 나는 저널리즘에서의 평등을 원하는 욕구 때문에 행동한 것이었다. 언론 업계는 변화를 꺼릴 때가 많다. 현 상황에 도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불안해 한다.그래서 엄청난 공포와 반발이 매체를 사로잡았다. 90년대 초의 여러 매체들은 ‘반 아웃팅’ 정책을 시행했으며, 자신들의 언론적 기준이 이른바 극단적 게이들에 의해 영향 받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게이 매체들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에드버킷과 아웃 역시 여러 해 동안 전면적으로 ‘반 아웃팅’ 정책을 시행했다.

두 잡지의 편집자였으며 이번 주에 밝혀진 케빈 스페이시의 성폭력과 관하여 이 정책에 대한 글을 쓴 브루스 스틸에 따르면, 이 때문에 스페이시가 14세이던 앤서니 랩에게 행한 성희롱을 2001년에 알았으면서도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틸의 말을 빌면 다음과 같다.

나는 오래 전부터 스페이시가 게이이거나 최소한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친구 앤서니 랩이 자신이 14세였던 1986년에 당시 26세의 스페이시가 성적인 접근을 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랩은 90년대 중반에 내게 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2001년에 에드버킷을 통해 이를 기사화하기까지 했다. 스페이시의 이름은 넣지 않았다… 우리는 아웃팅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시간과 공간을 주기를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정직함을 향한 양측을 위한 더 건강한 길이다.

이렇게 하여 에드버킷과 아웃(그리고 이 정보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를 다른 매체들)은 스페이시가 계속해서 남성들, 소년들을 성희롱할 수 있게 해주었다. 최근 영국 매체들은 스페이시가 런던 극장에 있으면서 여러 남성들을 성추행했다는 제보를 냈다. 당시 17세, 19세인 남성들도 있었다. 더 많은 남성들이 CNN에 제보하여, 스페이시가 ‘유독하며 약탈적’인 환경에서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진들을 성희롱했다는 남성이 8명 나섰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언론의 기준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포장된 매체들의 반 아웃팅 정책은 동성애혐오적이다. 그리고 불공평하게 적용된다. 에드버킷에 자유롭게 기고하던 나는 미 국방부 대변인 피트 윌리엄스의 성적 지향에 대한 글을 썼다. 딕 체니 국방장관의 차관보로였던 윌리엄스는 게이 금지 정책을 옹호했다. 내 기사는 1991년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커버 스토리였다. 에드버킷이 반 아웃팅 정책을 깬 것은 이때만이 아니었고, 당시엔 드문 예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을 상대로 한 아웃팅 기사는 자주 낸 반면, 헐리우드 유명 인사에 대해서는 절대 내지 않았다.

매체들이 ‘반 아웃팅’ 정책의 이유로 내세우는 이유들은 고결하지만, 사실은 장사가 안 될까 봐 지키는, 동성애 혐오에 의한 낡은 자본주의가 이유다.

나는 90년대 중반 아웃에도 글을 썼다. 아웃과 에드버킷의 에디터들은 헐리우드 에이전트와 프로듀서들에게 ‘아웃팅’한다는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워했다고 나는 증언할 수 있다. 성적 지향을 비밀로 지키는 게 대세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아웃팅은 충격을 주었다. 이 매체들이 가장 즐겨다루는 소재인, 에이전트와 프로듀서의 게이 친화적 이성애자 셀러브리티들을 커버에 등장시키지 못할까 봐, 드물게 일어나는 게이 셀러브리티들의 커밍아웃 인터뷰를 싣지 못할까 봐 두려워해서였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전면적 반 아웃팅 정책은 잘못된 생각이며 위험하다. 케빈 스페이시를 생각하며 에드버킷과 아웃을 보면 두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1) 이는 게이라는 것과 미성년자에 대한 성희롱을 동등시했다. ‘아웃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케빈 스페이시가 십대를 성희롱한 것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에드버킷과 아웃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희롱(아동성애 포함)과 성적 지향을 분리하지 않았다. 랩의 이야기를 보도한다고 해서 스페이시의 성적 지향이 밝혀지는 건 아니다. 어린이와 십대를 성희롱하는 남성들 중에는 이성애자, 기혼자들도 많다. 에드버킷은 스페이시의 지향을 언급하지 않고도 성희롱 사건을 보도할 수 있었다. 헐리우드의 비난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게 더 큰 이유였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2) 약탈적이며 피해가 되는 행동이 계속되도록 두었다. 나는 1993년 ‘미국의 퀴어’라는 책에서 이중 잣대에 대해 쓴 바 있다. 정치인 등 공인들의 여성에 대한 성희롱 보도는 주요 신문들에서 심각하게 다뤄진다(물론 우리가 봐왔듯 더욱 심각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남성의 남성에 대한 성희롱은 피해자의 상세한 증언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감안할 때, 에디터들이 그런 이야기를 보도하긴 할지 아직도 분명하지 않다. 내가 쓴 기사들도 그 이유로 무시되곤 했다. “이성 간의 학대일 경우 프라이버시가 중요하지 않으며 엄격한 언론 원칙보다 육감이 더 중요하다고 간주되었다.”라고 나는 책에 썼다. 이 이중 잣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스페이시 관련 보도는 이 관습이 없어지는 기념비적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브루스 스틸은 2001년 당시의 결정과 지금의 폭로에 대해 자신이 당시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게 잘못일 수도 있다고 솔직히 썼다. 에드버킷은 전적인 ‘반 아웃팅’ 정책을 변경했다. 이번 주 에드버킷은 “타인들에 대한 피해를 줄이거나 해당 인물이 가식적으로 LGBT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때”면 공인의 성적 지향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대부분의 주류 매체와는 상당히 다른 입장이다. 여러 매체는 반 아웃팅 정책에 적절한 저널리즘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따른다. 하지만 그것이 불공평하고 차별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성희롱과 학대의 경우, 이 원칙은 위험하고 해로운 행동이 계속되게 할 수도 있다.

허핑턴포스트US의 Protecting Kevin Spacey’s ‘Privacy’ Was Dangerou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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