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웅산 수치를 오해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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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인종청소라는 비판을 받는 '로힝야족 사태'가 이어지면서 국제사회가 아웅산수치를 잘 몰랐던 게 아니냐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31일(현지시각) '국제사회가 아웅산수치를 제대로 몰랐던 걸까?'라는 제목의 해설기사를 통해 미얀마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의 독재성향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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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미얀마 선거에서 수치 정당이 집권했을 때, 그는 미얀마를 민주주의로 인도하면서 엄청난 고난을 감내한 정치적 성자로 그려졌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그를 치켜세웠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공개석상에서 수치를 포옹했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한때 그를 간디와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수치는 미얀마 내 소수민족 로힝야에 대한 군부의 야만적 탄압을 방관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미얀마 군은 지난 8월 25일 이후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 성폭행, 방화를 저질렀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로힝야족 40만명 이상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이웃 방글라데시 등으로 도피했다. 유엔은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NYT는 "그의 추락이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 흔한 얘기"라고 말했다. 서방 지도자들이 독재국가나 불안정한 초기 민주주의 국가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으로 영웅적 희생을 치른 활동가를 옹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 때문에 영웅이 지닌 결점을 간과한다고 NYT는 지적했다. 대니엘 루프턴 콜게이트대 정치학 교수는 "우리는 계속 외국 지도자들을 이상화하거나 악마화한다"며 "정치 심리학에 '확증편향'이라는 게 있다. 결과에 대한 미리 결정된 믿음에 집착하는 것이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무의식적으로 골라 수용하고 어긋나는 정보는 배척하게 된다"고 말했다.

수치는 로힝야족 사태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다. 지난 9월 19일 수도 네피도의 컨벤션센터에서 영어로 한 연설에서 그는 “군은 안보작전을 수행하면서 행동수칙을 엄격히 지켰고,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충분한 조처를 했다”며 군을 감쌌다. 당시 수치는 “모든 인권 침해와 불법적 폭력을 비난한다. 분쟁에 휩쓸린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깊이 느낀다”고 말해 로힝야족만 희생자는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또 “미얀마 내 이슬람교도의 절반 이상은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그는 로힝야라는 단어는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수치의 이런 침묵은 예견됐던 일이라는 평가도 있다. 수치가 이끄는 정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15년 11월 총선에서 상·하원 657석 중 59%인 390석을 차지해 단독정부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상·하원 의석의 25%에 대한 지명권을 가진 군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군부는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버마족과 90%로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들 편에 서서 로힝자 등 무슬림 소수민족을 학살·추방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치에 대한 비난은 거세다. 최근 광주 시민단체인 참여자치21은 “‘인종청소’를 묵인하는 사람에게 광주인권상은 ‘수치’”라며 “5·18기념재단은 아웅산 수치의 광주인권상을 박탈하라”고 주장했다. 아웅산 수치는 2004년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5·18기념재단이 주는 광주인권상을 받았으며, 2013년엔 광주시의 초청으로 광주를 방문해 광주명예시민증도 받았다.

수치 개인의 문제보다 수치를 등에 업은 미얀마 민주화운동 진영 전체의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한겨레는 지난달 '로힝야 사태와 한국의 우파민족주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최근 사태가 불거지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신들 상당수는 민족민주동맹 등 민주화운동 진영에 대한 비판"이라며 "그들이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 인권 개념에 바탕한 민주화운동을 했다기보다는 미얀마의 다수 주민인 버마족의 민족주의에 경도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NYT는 수치가 현재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수준은 아니더라도 독재자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부통치 때 반체제 인사들이 투옥된 것처럼 수치 정부에서도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십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호주 시드니의 로위연구소 연구원인 애런 코넬리는 "그런 조치를 보면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통치 성향이 나타난다"며 "굳이 로힝야족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치라는 인물이 원래 자유민주적인 지도자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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