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취향 맞추랴 식비 구멍 막으랴...극한직업 ‘밥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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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년 동안 이른바 ‘밥총무’를 맡았던 중견 제약회사 직원 ㄱ(32)씨는 ‘식당 예약 트라우마’가 있다. ㄱ씨가 식당을 예약하면 팀장이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그 식당은 별로다. 다른 곳에 가자”며 어깃장을 놓았기 때문이다. 예약해둔 식당에 이해를 구하는 건 밥총무인 그의 몫이었다.

ㄱ씨는 “‘오늘은 새로운 메뉴를 먹자’는 팀장에게 회사 주변 맛집 다섯 곳을 제안해도 결국엔 자신이 좋아하는 고기를 먹으러 가 허탈했다. 그럴 거면 왜 막내에게 ‘밥총무’를 시켜 식당을 알아보라는 건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검찰이 지난 9월 검찰청 내 ‘밥총무’ 관행을 폐지하기로 하자, 비슷한 문화에 시달려온 일반 기업체 젊은 직장인들이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밥총무’란 같은 부서 직원끼리 식사할 때 인근 식당을 검색해 그날의 식사 메뉴를 정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식당을 예약하고 점심식사 비용을 각출해 정산하는 일까지 맡는데, 막내 사원이 밥총무를 떠맡는 게 보통이다.

한 공기업 직원 ㄴ(35)씨도 5년째 밥총무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구내식당만 가는 상사를 둔 다른 팀 동료가 부럽다”며 “차라리 본인이 원하는 메뉴를 말하면 편한데, ‘밥총무’가 눈치껏 자신의 취향을 맞춰주길 바라니 스트레스”라고 하소연했다.

‘밥총무’ 관행은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문화와 관련이 깊다. 급여나 복지 수준이 높지 않아 팀원들이 별도 비용을 각출해 식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한 원인이다. 조직 구성원 수가 많고 상대적으로 직원 복지비가 넉넉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공기업, 대학교 등에 ‘밥총무’가 많다.

‘밥총무’는 ‘울며 겨자먹기’로 제 돈을 써야 하는 난감한 일을 겪기도 한다.

대학 교직원이었던 ㄷ(28)씨는 ‘밥총무’를 하며 팀원들에게 1인당 월 10만원씩 걷는 식비에 ‘구멍’이 날까 남몰래 속앓이를 해야 했다. 야근이나 팀 회식이 생겨 월말에 돈이 부족해지면 ‘돈을 어떻게 썼길래’라는 선배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ㄷ씨는 “하는 수 없이 급한대로 개인 주머니를 털어 식사비를 결제한 게 여러번”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초임 변호사는 “상사들 말처럼 ‘같은 식구끼리 밥 먹으며 얘기 좀 하자’는 의도 자체는 좋지만 그 일을 막내한테만 몰아서 시키는 데 누가 좋아하겠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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