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남성' 마검사, ‘여성주의'에 눈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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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황진미의 TV 톡톡

'마녀의 법정'(한국방송2)은 여성·아동 범죄를 다루는 법정드라마다. 제목은 역설적이다. 흔히 ‘마녀의 법정’이라면, 무고한 여성들을 마녀로 단죄했던 사법의 흑역사를 떠올린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마녀’는 여성검사 마이듬(정려원)의 별명이다. 마녀가 단죄받는 법정이 아니라, 마녀가 단죄하는 법정이다. 이런 식의 아이러니는 ‘여검사’ 호칭에도 서려 있다. 드라마에서 ‘여검사’는 ‘마(녀)검사’의 파트너인 남성검사 여진욱(윤현민)이다.

드라마는 두 사람의 티격태격 로맨스를 품는다. 둘의 관계가 기존의 버디물과 사뭇 다르다. 여성은 7년 차 검사로 출세지향적인 성격이고, 남성은 신임검사로 피해자 심리에 공감하는 차분한 인물이다.

성역할의 역전은 이뿐이 아니다. 법정에서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여자다. 부장검사도 여자이고, 기자도 여자이고, 심지어 2회에선 강간범도 여자이다. 탄핵 결정 당시 “박근혜도 여자, 최순실도 여자, 탄핵을 심판할 헌재 소장도 여자, 탄핵안을 가결시킨 국회의 제1야당 대표도 여자, 투쟁의 발원지도 이화여대”라는 논평이 떠오른다. 여성에게 보조적인 역할만 주었던 기존 드라마의 구도를 완전히 깬 설정이다.

'마녀의 법정'은 성범죄 사건의 특징을 잘 알려준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회유·협박하고 증거 입증이 어렵다는 이유로 얼마나 쉽게 법망을 빠져나가는지, 피해자들은 자책에 시달리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2차, 3차 피해에 얼마나 쉽게 노출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피해자였던 동성애자는 ‘아우팅’이 두려워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다. 사귀던 남성과의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된 피해 여성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지만, 증거 제출의 엄두가 나지 않아 법적 대응을 포기한다.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은 채 범죄를 반복하고, 어쩌다 기소되더라도 초범이란 이유로 선처된다. 법정 형량이 낮지 않고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 등이 도입되었음에도 성폭력이 줄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드라마는 성범죄가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짚는다. 논문심사 권한을 쥔 여교수는 남자 조교를 강간하려 한다. 여성이 남성을 강간하는 일은 흔치 않지만, 젠더권력을 뛰어넘는 사회적 권력관계가 있을 때 가능하다.

젠더권력이 사회적 권력관계를 넘어설 때도 있다. 디지털성범죄 피의자는 마검사의 취조를 받다가 “초면에 여자에게 반말을 들으니 기분 나쁘다”고 말하며 위협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고는 마검사 집에 불법카메라를 설치하고 샤워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 검사와 피의자라는 권력관계가 확고하지만, 관음의 대상이 되어버린 검사는 공포와 수치심에 몸을 움츠린다.

마검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이 아니다. 권력욕이 많아서, 폼 나는 일을 하는 특수부에 가고 싶어 한다. 일도 무척 잘한다. 피의자를 협박해 자백을 받아내거나 상대 변호인에게 미끼를 던지는 수법으로 잇달아 승소한다.

남성권력이 장악한 검찰조직에서 성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언론플레이도 잘한다. 그는 부장검사의 성추행을 덮기 위해 피해자인 여기자를 회유할 만큼 남성권력에 빌붙어서 출세의 길을 가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부장검사의 성추행을 까발리게 되는데, 이는 도덕적 각성의 결과가 아니다. 남성권력에 빌붙는 것이 승산 없는 게임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공고한 남성연대의 틀을 확인한 마검사는 부장검사가 자신을 키워줄 사람이 아님을 직감한다.

여성·아동 범죄 전담반에 가면서도 그는 출세를 포기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심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는 실제로 피해자가 된 후 비로소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지만,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절감한다.

드라마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를 배려심이 높거나 피해 여성들과 본능적으로 공감하는 인물로 그리지 않는 것은 흥미롭다. 여성 역시 오욕칠정을 지닌 욕망의 주체이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스스로 남성과 동일시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 성공이 난망한 일이며,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도 약자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을 때 여성주의에 눈뜨게 된다.

드라마는 ‘명예 남성’으로 살아가던 마검사가 여성으로 겪는 차별에 눈뜨고, 피해 여성들에게 공감하는 과정을 정색하지 않고 담아낸다. 여검사가 반성을 묻자 마검사는 “사람이 변하던가요?”라고 눙치며 넘기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는 성장할 것이다.

매회 마지막에 “여성가족부 제작 지원”이라는 큼지막한 자막이 눈에 띈다. ‘소라넷’ 폐쇄 등 성과를 이루어낸 ‘넷페미니즘’ 운동에 부응하여, 정부가 내놓은 디지털성범죄 대책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금 티브이엔(tvN)에서는 계급을 달리하는 여성들이 모임을 결성하여 남성적 권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를 응징하는 서사를 그린 '부암동 복수자들이 방송된다. 여성주의의 도도한 물결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티브이에 밀어닥쳤음을 실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