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출연계약서로 본 ‘슈퍼갑'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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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실력을 좀 키워야겠으니 신경 써주시라.” 케이블방송 엠넷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2’에 소속사 연습생을 출연시켰던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제작진의 말을 듣고 간이 졸아들었다. ‘출연료’도 받지 못하는 마당에 최종 멤버에 뽑히지 못하면 시간만 날리는 셈이 된다. 방송사로부터 영영 실력 없는 아이돌로 찍힐 수도 있다. 기획사 쪽은 연습생에게 따로 트레이너를 붙여 훈련시켰다.

정부가 ‘갑질 근절’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지만 방송연예 산업에서 방송사의 갑질 관행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엠넷을 보유한 씨제이이앤엠(CJ E&M, 이하 씨제이)의 ‘프로듀스 101’이 흥행 대박을 터뜨리자 KBS, JTBC 등 타 방송사들이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 제작에 나서면서 ‘방송사-기획사-연습생’으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갑질 구조가 공고해지고 있다. 노예계약에 가까운 계약서를 무기 삼아 부담은 기획사에 떠넘기고, 수익은 방송사가 거두는 ‘프로듀스 101’ 모델을 따르는 모양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8일 한겨레에 제공한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계약서를 보면, 씨제이는 ‘병’(연습생)에게 “계약기간 동안 ‘갑’(씨제이)의 방송출연 요청 또는 행사 참여 요청 등이 있을 경우 우선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프로그램’ 이외의 방송 및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시즌1 당시엔 출연 중인 연습생이 소속사의 활동을 병행할 수 있었지만 시즌2에 들어서며 다른 방송이나 행사에 출연할 수 없게 ‘갑’의 지위를 강화했다. 출연계약서를 사실상 ‘전속계약서’처럼 악용한 것이다.

반면 별도의 출연료 없이 “음원 수익을 나눠 가진다”는 독소조항은 시즌2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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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이 제작 중인 ‘더 유닛’ 등 후발주자들도 ‘타 방송·행사 출연 금지’ 조항을 두며 경쟁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ㄱ사의 오디션에 출연하게 돼 ㄴ사의 오디션에 나갈 수 없다고 했더니 ㄴ사에서 ‘그럼 우리 회사의 다른 프로그램들에도 모두 출연할 수 없다’고 전해왔다”며 “요새는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작 연예기획사들은 이런 불공정한 계약 내용도 알지 못한 채 촬영에 임한 것도 밝혀졌다.

씨제이는 시즌2를 제작하면서 연습생을 만나 2개월여 회의와 인터뷰를 진행한 뒤에야 계약서를 건넸고, 한국방송은 촬영을 마친 출연자들조차 아직 계약을 맺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제윤경 의원은 “계약 조건도 모르고 촬영을 요구받은 것이니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거래하는 행위를 금지한 공정거래법에 어긋난다”며 “공정위가 적극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씨제이 계열사 또는 씨제이가 투자한 기획사의 연습생이 ‘프로듀스 101’에 참여하는 것도 논란거리다. ‘프로듀스 101 시즌2’의 최종 합격자로 꾸려진 아이돌 그룹 ‘워너원’ 멤버 11명 중 강다니엘 등 2명은 씨제이의 자회사 엠엠오(MMO)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제 의원 쪽은 “나머지 9명이 소속된 기획사 중 일부에도 씨제이가 지분을 적잖이 투자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