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팀이 시차 10시간 원정지에 열흘 전 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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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 Soccer - Russia v South Korea - International Friendly - VEB Arena Stadium - Moscow, Russia - October 7, 2017 - Russia's Konstantin Rausch in action with South Korea's Lee Chung-Yong. REUTERS/Maxim Shemetov | Maxim Shemetov /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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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노벨상 수상한 ‘생체시계’의 비밀

“멀리 해외여행을 떠나면 낮밤이 바뀌는 ‘시차’ 때문에 고생하죠? 그게 바로 우리 몸에 따로 도는 ‘생체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몸은 낮밤에 맞춰 적응하기도 하지만, 밤인데도 낮인 것처럼 돌아가는 생물학적인 시계가 우리 몸에 있지요. 몸 안의 생체시계와 몸 밖의 지구 환경 시계가 엇박자가 될 때 몸은 시차로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생체시계를 연구해온 손기훈 고려대 의대 교수(의과학)는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 업적인 생체시계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면서 몸이 겪는 시차 문제가 곧 생체시계의 존재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몸이 현지의 낮밤에 맞춰 서서히 시차에 적응해가는데, 사람마다 다르지만 생체시계가 대략 하루에 1시간 남짓씩만 점차 재조정되기 때문”이라며 “국가대표팀이 시차가 10시간인 곳에서 원정경기를 한다면 적어도 10일 전쯤 현지에 도착해 적응훈련을 하는 전략이 이런 점에서 적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1980년대에 실험동물 초파리를 통해 생체시계를 작동하는 주요 유전자(단백질)들을 찾아내고서 그 기본 메커니즘을 처음 규명한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 교수 등 미국의 초파리 유전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생체시계 작동하는 유전자 연결망

기초과학연구원(IBS) 식물노화수명연구단의 홍성현 박사(섹션리더)는 식물에서 생체시계와 노화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지구의 밤낮 주기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화적 산물인 생체시계는 박테리아부터 식물, 동물까지 대부분 생명체가 가지고 있다”며 “구성 요소에선 동식물이 각각 다르지만 조절 메커니즘은 매우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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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위원회가 펴낸 설명자료를 보면, 생체시계의 개념은 식물 실험에서 먼저 확인됐다. 18세기 호기심에 가득 찬 프랑스의 한 천문학자가 낮엔 잎을 펼치고 밤엔 시들듯이 처지는 식물 미모사를 계속 캄캄한 어둠 속에 두고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관찰했다. 놀랍게도 어둠 속에서도 미모사는 며칠 동안이나 낮 시간대엔 잎을 펼치고 밤 시간대엔 잎을 닫았다.

뇌 건강과 생체시계의 관계를 연구하는 김경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한국뇌연구원장)는 “낮밤 변화와 무관하게 생물 안에 무언가 자율적인 생체시계가 있음을 보여준 실험”이라며 “이후에 많은 실험이 있었지만 중요하게는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이 잇따라 생체시계 관련 유전자들을 찾아내면서 ‘유전자가 시간에 따라 행동을 조절한다’는 개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기본적인 생체시계의 분자 메커니즘은 ‘피리어드(period) 유전자’의 진동으로 설명된다. 이 유전자가 발현해 단백질(PER)이 만들어지는데, 이 단백질이 계속 만들어져 축적되면 이젠 자신을 만드는 유전자의 활성을 막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이 단백질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점차 분해된다. 이제 다시 피리어드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드는 활성 상태가 된다. 이런 한 바퀴의 순환이 24시간마다 한 번씩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이런 기본 유전자를 제어하고 조절하는 여러 유전자가 규명되었고, 또한 생체시계가 간의 해독 기능, 일주기 호르몬 분비 등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도 많이 연구돼왔다. 손 교수 등 국내 연구진이 부신피질의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에 생체시계가 관여한다는 것을 밝힌 2008년 논문은 이번 노벨상 설명자료에 주요한 연구 중 하나로 꼽혔다.

24시간 주기로 도는 인체의 생리대사

우리 몸의 생체리듬은 이런 생체시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체온, 혈압, 호르몬 분비뿐 아니라 여러 생리대사가 24시간 주기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위 그림 참조) 그 덕분에 ‘시간치료법’이라는 낯선 분야도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김경진 교수는 “혈압이 밤에 떨어졌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20% 정도 상승하기 때문에 심장마비와 뇌졸중이 이때 많이 일어난다. 가려움증이나 천식은 밤과 새벽에 심해진다. 따라서 혈압약과 천식 치료제는 잠자기 전에 먹어야 효과가 있다”며 “질병에 따라 투약 시간을 달리하는 생체리듬치료의 임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당연히 생체리듬이 깨지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실제로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생체시계 교란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야간교대근무를 발암성 추정요인으로 분류한 바 있다. 이후에도 심장질환이나 암이 생체시계 교란과 상관성을 지닌다는 연구결과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손 교수는 “야간근무가 불가피하다면 어떤 식으로 야근교대를 설계해야 생체시계 교란을 줄일 수 있을지도 연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생체시계는 수면 패턴과 매우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수면장애나 우울증, 자폐증, 퇴행성 신경질환 등과 관련해서도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중앙 표준시간과 지방 현지시간 동기화

몸의 모든 세포, 조직에서 국지적인 생체시계가 작동한다. 그런데 이를 조율하는 중추적인 생체시계가 따로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면서 몸 전체에서 시계 동기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관심 대상이 된다.

김경진 교수는 “비유하면 뇌의 시상하부 부위(SCN)에 있는 생체시계가 그리니치 표준시이고, 각 세포, 조직에는 조금씩 어긋날 수 있는 현지 시계들이 있는데, 몸 전체의 생체시계를 일정하게 맞추는 데에 뇌의 중추 생체시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나 빛 정보는 생체시계를 외부 환경 변화에 맞춰 조율하는 데 중요한데, 빛에 민감한 시상하부에서 중추 생체시계를 맞추고서, 빛 정보를 얻지 못하는 간이나 내장 같은 곳의 세포들에다 내부와 외부를 조율하는 시간 정보를 전한다는 것이다.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우리 몸의 건강을 관리하는 데에 24시간 주기가 중시되는 것을 두고 생체시계 연구자들은 ‘시간생물학’이라 부른다. 김경진 교수는 “시간을 중시하는 시간생물학은 지구 생명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한다. 홍성현 박사는 “예컨대 식물에서 광합성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해 뜨기도 전에 생체시계에 의해 활성화해 낮 동안 빛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게 한다”며 “외부 자극 없이도 미래를 예측해 적응하는 생명 현상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