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드'처럼, 따뜻하고 착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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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미국 드라마 굿 닥터

국내 장르드라마에 대한 최상의 호평은 ‘미드 같다’는 찬사다. 2013년 한국방송에서 방영한 메디컬드라마 '굿 닥터'도 같은 찬사를 받았다. 자폐증이 있는 천재 외과의사의 성장을 그려낸 이 작품은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진부한 러브라인에 의존하기보다는 의료계의 현실과 인물 간의 다양한 역학관계를 반영한 흥미로운 스토리로 기존의 국내 메디컬드라마와는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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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닥터'의 미국 리메이크 소식이 들렸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메디컬드라마의 본고장에서 ‘미드 같다’는 호평은 각색의 난이도를 낮추는 강점인 반면 그만큼 평범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 방송사 ABC에서 리메이크한 '굿 닥터'의 매력이 뜻밖에도 ‘한드(한국 드라마) 같은’ 지점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가령 한국 드라마의 상투성에 대한 비평인 동시에 애정 어린 헌사이기도 한 미국 웹시리즈 '드라마 월드'에서 한드의 핵심적 강점으로 지목했던 “드라마 속에선 인생이 즐겁단 말이야. 누구라도 예뻐질 수 있고, 누구라도 진정한 사랑에 빠질 수 있어”라는 따뜻한 감성과 낙관주의가 미국판 '굿 닥터'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국내판의 도입부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 첫 회에서 연출이 가장 힘을 준 하이라이트 대목이 특히 그렇다. 장애가 있는 숀 머피(프레디 하이모어 분)의 병원 채용 여부를 가름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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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을 망설이는 임원들이 머피에게 의사가 되려는 이유를 묻는다. 기본적이고 상투적인 이 질문에 머피는 특유의 화법으로 진심을 담아 답한다. ‘아이스크림 향기가 섞여 있던 비 오는 날’ 토끼가 천국으로 갔던 기억, ‘음식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나던 비 내리는 날’ 동생이 추락사고로 죽어가던 기억, 그들을 구할 수 없어서 슬펐던 머피의 진심이 그전까지 냉기가 감돌던 회의실을 따뜻하게 적시고 반대하던 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소위 ‘오글거릴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 뻔한 ‘생명을 구한다’는 메디컬드라마의 기본정신을 되살리는 머피의 순수함에 무방비로 동화되고 싶어진다. '굿 닥터'는 바로 그 진심에 설득당한 임원들의 시선으로 볼 때 제일 재미있는 드라마다.

이는 '굿 닥터'의 총괄 프로듀서인 한국계 배우 대니얼 김이 일찌감치 강조한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8월 ‘국제방송영상 견본시’ 행사 참석차 내한한 그는 '굿 닥터' 리메이크 방영을 앞두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냉소적인 미국 드라마에 비해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굿 닥터'의 또 다른 제작자인 데이비드 쇼어의 대표작이자 전설적인 메디컬드라마 '하우스'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국판 '굿 닥터'는 파일럿 방영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풀시즌 제작이 확정됐다. 이 독특한 ‘한드 같은 미드’의 행보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