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문건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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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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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군이 시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린 내용을 담은 문건이 발견됐다.

YTN은 이 문건들이 군에서 지난 37년 동안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보관해오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현장 지휘관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을 뿐 상부의 발포 명령은 없었다"는 군의 주장을 뒤집는 내용이다.

YTN은 5·18 당시 진압 과정을 명기한 505보안부대가 1980년 5월21일 저녁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보고서를 입수해 그 내용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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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현장에서 집단 발포가 있었던 5월 21일 저녁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저녁 7시를 기해 호남 고속도로 사남터널 부근 경계병들에게 전남에서 오는 폭도로 확인되면 즉각 발포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발포를 위해 경계병 1인당 실탄 510발과 수류탄 2발을 지급하고 M60 기관총을 거치하도록 했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문건에는 2군 사령부에서 발포 명령을 내렸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당시 2군 사령부는 광주 진압 작전을 총괄했으며, 당시 사령관은 진종채 전 예비역 대장이다.

그는 1998년 사망했다.

YTN은 또 다른 문건에서도 같은 시각 전남에서 오는 폭도는 발포하도록 2군 사령부가 지시하고 병력 100명을 추가 배치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심지어 계엄군에게 반항하는 시민은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문건도 발견됐다.

현장 지휘관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을 뿐 상부 명령에 의한 발포는 없었다는 군의 주장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이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자위권 발동 지시는 시민 50여 명이 사살된 이후 시행됐다.

5월 23일 작전 내용이 담긴 문건을 보면 오전 11시 48분, 폭도 중 반항하는 자는 사살하라는 작전 지침이 내려온다.

'반항' 행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으며, 별도의 보고를 거치라는 단서 조항도 담기지 않았다.

문건에는 장갑차 등 차량을 이용한 강습을 시도할 경우에도 사살하도록 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은 1995년 검찰 수사 당시 진술조서에서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의 발포가 계엄사 자위권 발동에 따른 것이었냐"는 검사의 질문에, 자위권 발동이 아니라고 답한 바 있다.

이씨는 "그 날 발포는 오후 1시였고 자신이 자위권을 천명한 것은 그날 저녁 7시 30분이었기 때문에 계엄사의 자위권 발동에 따른 발포일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9년 국회 청문회 등에 나와 당시 발포에 대해 계엄사 지침에 따른 자위권 행사였다고 주장해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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